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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본질, 그 파국의 디테일

드라마 <은수 좋은 날> 리뷰

by 투스타우

<은수 좋은 날>은 기대 이상의 작품이다. KBS 드라마라는 프레임 때문에 거부감이 컸었지만(트웰브의 영향도 있고), 막상 시청하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들게 된다. 무너진 가정의 주부에게 떨어진 마약 가방, 그리고 이를 판매하는 딸의 미술 선생님. 이 독특한 시놉시스가 초반부 놀라운 몰입도를 선사한다. 내가 <브레이킹 배드>를 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게 KBS 공영방송에서 저녁 프라임 시간에 방영할 수 있는 드라마인가 싶을 정도로 위험한 수위와 전개를 그려나간다.


은수 좋은 날

방송&스트리밍 : KBS, 웨이브, 쿠팡플레이

연출 : 송현욱 / 극본: 전영신

출연 : 이영애, 김영광, 박용우, 배수빈, 김시아 등

러닝타임 : 12부작




파국을 그리는 디테일

이 작품의 포인트는 좋은 목적을 위한 나쁜 수단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냐는 부분과 평범한 가정이 마약 때문에 어디까지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에 있다. 가정주부가 마약을 파는 이야기가 KBS 공영방송과 어울리지 않기에 당연히 은수에게 좋은 날이 올 수 없음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은수 좋은 날>은 더 노골적으로 마약이 가정과 이웃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붕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디테일하게 그려 나간다. 마약을 판 돈으로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지만 결국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이, 마치 달콤한 쾌락 후 고통을 안겨주는 마약의 특성처럼 보인다. 왜 이런 위험한 이야기를 KBS에서 선택했는지 보면 볼수록 그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20251022142455.png 이 작품의 포인트는 좋은 목적을 위한 나쁜 수단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냐는 부분과~
20251022142210.png 평범한 가정이 마약 때문에 어디까지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에 있다.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마약을 이용하는 두 주인공의 흥미로운 전개가 파국으로 이어지면서, 범죄와 마약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파한다. 각각의 인물의 처한 상황에 몰입된 시청자들에게 옳고 그름의 딜레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 작품의 결말은 그래서 더 큰 임팩트로 다가온다.


12부작을 완벽히 채우는 이야기

엄마를 의심하는 딸과 불륜으로 오해하는 주변인들. 암으로 무너진 남편과 의심하는 경찰, 그리고 후반부 속고 속이는 반전까지. 뻔한 스토리일 거 같지만 12부작을 지루함 없는 이야기로 꽉꽉 채워나간다. 오랜만에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까지 그 결말이 전혀 예상 안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는 연출 과욕이 다소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몇몇 신들은 아주 강인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20251022143750.png 단순한 스토리일 거 같지만 12부작을 지루함 없는 이야기로 꽉꽉 채워나간다.

여기에 오랜만에 선보이는 백치미 가득한 이영애의 주부 연기가 남다른 매력마저 더해준다. 무엇보다 가정주부가 일탈로 변해가는 과정이 이영애의 이미지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몰입도를 더욱 높여준다. 이영애 특유의 발성 때문에 종종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후반부 처절함과 후회 속에 도덕성마저 잃어가는 은수의 디테일을 인상적으로 연기해 낸다. 은수에게서 가족애를 찾으려 했던 이경의 복잡한 감정과 복수심을 제대로 연기한 김영광도 놀라웠고, 박용우와 배수진의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20251022142609.png 가정주부가 일탈로 변해가는 과정이 이영애의 이미지와 묘하게 어우러지며~
20251022143933.png 후반부 처절함과 후회 속에 도덕성마저 잃어가는 은수의 디테일을 인상적으로 연기해 낸다.




차라리 OTT에서 선보였다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이를 쉽게 전달시키지 못한 연출과 어색한 CG, 10년은 퇴보한 듯한 음악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좀먹는다. 특히 회차별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무리한 편집이 이야기를 다소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조금은 친절한 연출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KBS만 놓고 보면 충분히 수위가 높았던 작품이었지만, 차라리 OTT 드라마로 제작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넘을 듯 말 듯 넘지 못하는 그 아쉬운 장벽이 보는 내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20251022142731.png 이야기를 쉽게 전달시키지 못한 연출과 어색한 CG, 올드한 음악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좀먹는다.
20251022152323.png 차라리 OTT 드라마로 제작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20251021091745.png 은수 좋은 날 (KBS.2025)

개인적으로 <은수 좋은 날>은 근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후 최고의 KBS 드라마였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끄집어낸 작품이었으며, 무엇보다 마약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파했기에 그 메시지마저 명확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흥행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뻔하지 않은 결말을 보여준 드라마가 근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KBS도 한다면 한다는 걸 보여준 수작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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