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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굴레에서 우리가 함께하는 경로 이탈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리뷰

by 투스타우

올해 넷플릭스 드라마는 여성 연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애마>부터 <은중과 상연> 그리고 <당신이 죽였다>에 다음 달 공개되어 있는 <자백의 대가>까지. 특히 우정과 질투 그리고 화해로 이뤄졌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당신이 죽였다>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서로의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여성 연대를 힘있게 그려나간다. <은중과 상연>과 함께 올해 최고의 여성 연대 작품이자, 올해의 드라마에 또 하나의 이름을 올릴 수작 <당신이 죽였다>이다.


당신이 죽였다(2025)

방송&스트리밍 : 넷플릭스

연출 : 이정림 / 극본 : 김효정

출연 : 전소니, 이유미, 장승조, 이무생 등

러닝타임 : 8부작




은수와 희수, 우리의 경로 이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희수와 단짝 친구인 은수가 남편을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이루려 하는 <당신이 죽였다>의 메인 스토리는 사실 그리 흥미로운 시놉시스는 아니다. 이 작품은 이런 단순한 시놉시스보다 두 여성이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전반부 힘을 쏟는다. 어린 시절 침묵과 방관으로 엄마의 가정폭력을 모른척했던 은수, 그런 은수를 어린 시절 도와줬지만 남편의 폭력 앞에서 삶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는 희수. 이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해 주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면서, 너와 내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구원의 서사를 밀도 있게 그려나간다. 이 두 여성의 연대가 폭력의 굴레에서 어떻게 경로 이탈을 하는지를,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는지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중심이 된다. <은중과 상연>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의 제목은 아마 일본 원작처럼 '은수와 희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251103151035.png?type=w773 은수와 희수,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해 주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그려내면서~
20251103150014.png?type=w773 폭력의 굴레에서 어떻게 경로 이탈을 하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나간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그저 남성의 폭력성만을 꼬집으면서 여성 중심의 드라마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남편의 여동생은 경찰이면서도 새언니의 가정폭력에 침묵하고, 그의 엄마는 여성의 행복한 삶을 강조하는 인기 강사임에도 며느리의 고통을 방관한다. 여성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도 될 수 있음을 드라마는 영리하게 그려낸다.

44.JPG?type=w773 여성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도 될 수 있음을 이 드라마는 영리하게 그려낸다.


완전범죄의 허점을 파고드는 스릴러

전반부가 남편을 살해하는 이유와 과정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완전범죄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개로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구현한다. 돌아온 장강, 형사 여동생의 승진과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완전범죄가 무너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폭력에서의 해방은 이뤄내지만 범죄에서의 해방은 될 수 없음을 그리면서, 불안한 은수와 희수의 심정을 스릴러로서의 재미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킨다. 당연히 이러한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결말의 순간까지 힘있게 그려내면서 매력적인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낸다. 진사장이라는 치트키가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여성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서로의 믿음과 의지가 어떻게 이들을 폭력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지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그려낸다.

51.JPG?type=w773 완전범죄가 무너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후반부!!
20251103150113.png?type=w773 폭력에서의 해방은 이뤄내지만 범죄에서의 해방은 될 수 없음을 그리면서~
20251103150903.png?type=w773 불안한 은수와 희수의 심정을 스릴러로서의 재미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킨다.




기억해야 할 이름, 이정림

벌써 6년 전이던가. 이정림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VIP>를 그토록 칭찬하면서, 불륜 드라마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었던 그 흥미로운 연출에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악귀>가 김태리와 김은희 작가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졌지만 아직도 그 엔딩신의 연출은 잊은 적이 없다.(개인적으로 드라마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엔딩신중 하나). 그런 이정림 감독 역시 넷플릭스라는 자유로운 플랫폼을 만나 확실한 연출의 꽃을 피운다. 신과 신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교차편집. 단순한 시놉시스를 흥미롭게 구현하는 구성력. 미장센은 기본이고 프라이머리의 독특한 음향을 제대로 활용하는 연출부터 의미를 하나하나씩 부여하는 신들까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프닝 타이틀을 분리시켜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는 시퀀스는 정말 일품이었다.

20251103145120.png?type=w773 미장센은 기본이고, 신과 신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교차편집.
20251103151023.png?type=w773 폭력을 그리는 디테일과 프라이머리의 독특한 음악을 제대로 활용하는 연출.
20251103150658.png?type=w773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수많은 신들까지, 이정림 감독의 연출은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각색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개연성이 어느 정도 설득이 되는 캐릭터들의 직업 변경, 그런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주짓수 이야기나 시계 이야기로 간접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방식마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활용하면서 가정 폭력에 대한 모두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그려나간 구성마저 흥미로웠다.

20251103151155.png?type=w773 모든 캐릭터들을 활용하면서 가정 폭력에 대한 모두의 손길을 그려나간 구성마저 흥미로웠다.




전소니와 이유미

배우의 외모부터 이미지까지 그 합이 예고편부터 너무나 이상적이 있던 전소니와 이유미. 이 두 사람의 은수와 희수 연기는 캐릭터의 해석부터 외모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내면서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한다. 정의감 넘치면서도 한때는 비겁한, 그 안에 미친년을 숨겨놓은 듯한 똑 부러진 은수를 찰떡같이 소화한 전소니는 영화 <소울메이트>이후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폭력의 굴레에서 힘있게 벗어나는 자기 주도적 여성상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이 작품의 중심을 힘있게 끌고 나간다. 특히 희수의 고통과 감정을 함께 담아내는 연기가 너무 좋아 이유미까지 빛나게 해 준다. 이 좋은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니 드라마가 이렇게 빛이 난다.

20251103150805.png?type=w773 정의감 넘치면서도 한때는 비겁한, 그 안에 미친년을 숨겨놓은 듯한 똑 부러진 은수를 찰떡같이 소화한 전소니.

팔색조 배우인 이유미는 나약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한 발짝씩 전진하는 희수를 비주얼 그대로 리얼리티 하게 연기해 낸다. 숨통이 조여지는 고통을 그리는 연기, 분노와 해방감 그리고 두려움을 표현하는 그 모든 연기에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낸다. 폭력에 시달리는 병약한 비주얼마저 완벽해서 리얼리티마저 배가 된다. 캐릭터 자체의 완성도마저 높아서 내년 백상에서 후보를 기대해도 좋을듯싶다.

20251103150444.png?type=w773 살아남기 위해 한 발짝씩 전진하는 희수를 비주얼 그대로 리얼리티 하게 연기해 낸 이유미!
20251103152042.png?type=w773 숨통이 조여지는 고통, 분노와 해방감 그리고 두려움을 표현하는 그 모든 연기에서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낸다.


그리고 장승조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건 역시 장승조다. 집착과 폭력에 몰두한 노진표부터 밑바닥부터 무섭게 살아온 조선족 장강까지 두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해 낸다. 확연히 느껴지는 두 빌런의 차이, 무엇보다 폭력성과 집착의 목적에서 드러나는 희열의 차이를 다르게 드러내는 디테일에서 여러 번 감탄하게 된다. <돈꽃> 때부터 빌런으로서 가능성 있는 배우로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좋은 연기를 선보일 줄은 몰랐다. 조연으로 분류된다면 내년 백상 후보에서 새로운 다크호스가 될만하다.

20251103150542.png?type=w773 노진표와 장강, 두 빌런을 실감 나게 연기한 장승조!!
20251103151811.png?type=w773 폭력성과 집착의 목적에서 드러나는 희열의 차이를 다르게 드러내는 디테일에서 여러 번 감탄하게 된다.




20251103152025.png?type=w773 당신이 죽였다 (NETFLIX. 2025)

<당신이 죽였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연대와 자기 주도적 여성의 이야기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조금씩 개연성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진사장이라는 놀라운 치트키가 있음에도 이를 보조 역할로 만 활용하는 부분에서 의도는 이해가 되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조금은 답답하게 진행되는 전개와 부족한 사이다도 오락적 재미에서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좀먹을 만큼 거슬리진 않는다. 그만큼 <당신이 죽였다>는 연출과 극본 그리고 배우들의 합에서 인상적인 완성도를 선보인다. 폭력에 대한 침묵이라는 이야기의 메시지만큼이나 오랜만에 결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매력적인 스릴러 작품이었다.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로 이탈, 침묵과 방관에서 벗어나 서로를 구원하는 여성 연대의 이야기는 울림만큼이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죽였다'라는 제목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가정 폭력에 방관하고 침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폭력의 책임이 있음을 이 작품은 묻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할 때 벗어날 수 있는 폭력임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성별과 직업, 부의 유무를 떠나 우리 주변에 구원의 손길이 얼마든지 있음을 이야기한다. 폭력에서의 해방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해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그려낸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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