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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선을 넘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리뷰

by 투스타우

<부부의 세계>는 드라마 마니아 입장에서 반드시 봐야만 했던 드라마였고, 누가 뭐라고 하든 2020년 가장 뜨거웠던 드라마였다. 원작을 기반에 둔 드라마였기에 전반부의 완성도는 놀라웠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는 역시 원작을 비틀었던 후반부에 있었다.




선을 넘다!!

<부부의 세계>는 2019년 불륜 드라마의 완결편 같았던 <VIP>와 초반부 비슷한 결을 보여준다. <VIP>는 불륜을 피운 이상윤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장나라의 회의감에 복수도 허무하게 식어버리는 현실과 타협하는 엔딩을 보여준다. <VIP>가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듯한 드라마였다면, <부부의 세계>는 그 반대였다. <부부의 세계>는 그 이성의 벽을 감성과 욕망이라는 무기로 간단히 넘어 버린다. 이 작품은 이태오의 불륜에 어떠한 서사도 넣지 않는다. 전반부 그는 빌런이었고, 나쁜 남자였고 불륜남일뿐이었다. 지선우의 직격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넘을 듯 말 듯 조율했던 이성의 마지막 선도 과감히 넘어버린다. 그것도 빠르고 아주 통쾌하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쾌거는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역대급 복수를 기대했지만 허무하게 식어버린 <VIP>와 달리~
<부부의 세계>는 <VIP>가 하지 못했던 이성의 선을 간단히 넘어버린다.



역대급이었던 전반부

그래서 원작 <닥터 포스터> 시즌1과 동일한 구성과 패턴으로 진행한 전반부는 너무나 완벽했다. 빠르고 직감적인 편집, 통쾌하고 과감한 전개,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파격적인 연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전반부였다.

지선우의 과감하고 폭발적인 복수의 직격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그것도 빠르고 비상식적인 방식을 선택하면서,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해 준다!!!




늘어지는 후반부

하지만 원작부터 논란이 있었던 시즌2를 5회나 늘리면서 비틀었던 후반부는 상당히 아쉬웠다. 우선 전반부의 스피디함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후반부는 마치 전혀 다른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또한 돌아온 이태오와 여다경에게 서사를 넣으면서, 지선우의 복수는 당위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극의 방향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힘이 빠지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지선우는 이태오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지 다시 합치고 싶은 건지, 이태오는 지선우를 원하는 건지 떠나보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들만 반복된다.

후반부 이태오와 여다경의 서사를 집어넣으면서, 지선우의 복수는 서서히 당위성을 잃어가고...
드라마도 힘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물론 이러한 흔들리는 지선우와 이태오의 목적의식은 자연스럽게 문제의 12화 애정신을 연출하기 위한 바탕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원작과 다른 두 사람의 애정신(원작은 복수를 하기 위한 의도적인 접근)을 넣기 위한 서사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기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전개였다.


그럼에도 <부부의 세계>가 시청률을 계속적으로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12회의 애정신이나 선우와 태오의 자살 시도 같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모습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여다경을 복수의 대상자가 아닌 동일한 피해자인 것처럼 그려내고, 이태오에게는 용서 아닌 용서로 마무리를 짓는 현실과 타협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이는 이성의 선을 넘었던 전반부의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물론 이러한 후반부의 문제는 이미 원작에서 부터 완성도가 떨어졌던 <닥터 포스터 시즌2>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저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으로만 후반부를 이끌어나가며~
현실과 타협하며 마무리되는 엔딩까지... 전반부에 비하면 굉장히 힘 빠지는 부분이다.



논란의 12화 애정신

앞서 말한 12화의 애정신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다. 이태오와의 애정신은 지선우의 복수에 대한 당위성뿐만 아니라, 전반부에 쌓아놓았던 복수에 대한 감정들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역효과마저 주고 만다. 물론 현실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배우들의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흔들리는 지선우와 이태오의 서사 때문인지 나 역시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했다. 나 자신의 숨은 욕망이 이 둘의 애정신을 응원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큰 문제신으로 남을 두 부부의 애증을 재확인하는 명장면!!!!
이 장면으로 인해 지선우는 복수의 당위성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감정들을 무너뜨리고 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둘의 애정신을 응원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지선우는 그저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 같은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아들의 이야기대로 '엄마 아빠는 뭐가 그렇게 쉬워? 사과한다고 용서가 돼?'란 물음과 여다경이 계속해서 말하는 '미친 여자'라는 시선은 마치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단지 우리가 지선우의 서사와 김희애의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크게 다가오지 못할 뿐이다.



국내 정서와 개연성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문제

이 드라마가 선을 넘은 건 단순히 이성적인 상황과 행동뿐만이 아니다. 해외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몇몇 상황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남편과 잠자리를 한 지선우와 다시 친구가 된 고예림이나, 자신의 전 부인과 잠자리를 갖은 손제혁과 술잔을 기울이는 이태오의 모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외국의 정서 때문이라는 변명 속에 이런 장면들이 나오고, '원작이 저런가 보다' 하면서 수긍해 버리기에는 이 장면들은 막장의 선을 넘어버린 '판타지의 세계'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남편과 잔 여자를 남편과 함께 같이 걱정해 주는 이런 장면들....

또한 사건 사고가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고산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모습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앞선 장면들과 이런 전개들은 개연성이나 공감이란 단어와 결부시켜 지적하기에도 뭔가 합당치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개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곧이어 나온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드라마들이 성공하는데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다.

<부부의 세계>는 결국 <펜트하우스> 같은 작품이 성공하는데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다.




놀라운 배우들의 연기!

박해준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아직도 박해준을 <미생>의 천과장 시절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아저씨>에서 그 따스한 목소리의 겸덕과 <아스달 연대기>에서 중립적 포스를 보여준 무백. 영화 <독전>에서의 사이코패스 연기와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보여준 느끼한 허세남까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보면 이러한 스포트라이트는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가끔은 사투리 같은 특유의 뭉퉁거리는 발음과 목소리가 비겁하면서도 허세 가득한 이태오에 완벽히 부합하면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준다. 비열하면서도 겁이 많은, 한없이 부족하지만 또 한없이 든든해 보이는척하는 한국의 남자의 표본 같은 이태오를 완벽히 연기하면서 이 배역에 다른 어떤 배우도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비겁하면서 허세 가득한 이태오를 완벽히 그려낸 박해준!!

한소희는 이전 <돈꽃>과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를 소화하지만, 그 차가운 눈빛과 제스처로 여다경역에 이상적인 캐스팅이었음을 증명한다. <나의 아저씨>의 도준영과는 또 다른 느낌의 불륜남을 연기한 김영민의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박선영이나 채국희, 김선경 등 중년의 배우들도 탁월한 캐스팅이었다. 박인규 역을 소름 끼치게 연기한 이주학이나 그의 대척점에서 연기한 민현서 역의 심은우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무생은 <봄밤>에서의 보였던 이미지하고는 전혀 다른 젠틀하고도 따뜻한 남성미를 뽐내면서 또 다른 매력을 각인시켜 준다.

차가운 눈빛과 특유의 몸짓으로 여다경 역에 딱 어울리는 이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한소희!



그리고 김.희.애.

이 드라마를 보기 전 영화 <윤희에게>를 보면서 김희애의 잔잔하면서도 요동치는 감정의 연기에 큰 감탄을 받았었다. 김희애는 이번 작품에서도 왜 김희애인지를 증명하면서 놀랍도록 경이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지선우가 겪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극과 극의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이 배우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지선우의 서사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며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감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이로운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김희애!!

무엇보다 논란의 12회의 애정신에서 오직 연기력으로 승화시키면서 시청자를 설득시키는 장면은 정말로 인상 깊었다. 박해준의 연기도 좋았지만 절대 꺼내어선 안 되는 숨은 욕망의 감정과 분노, 미련, 후회 등 다양한 감정들을 뒤섞여 보여주는 그녀의 제스처, 그녀의 눈빛 연기는 몇 번을 극찬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오직 김희애의 연기력 하나로 설득시킨 12회의 애정신!!

물론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오버스러운 감정 연기가 다소 거슬리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의 결 자체가 그러한 부분을 요구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연기의 스펙트럼이 이토록 넓은 김희애에게 <부부의 세계>와 같은 비슷한 배역들의 캐스팅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윤희에게>처럼 좀 더 다양한 연기와 배역을 맡아봤으면 하는 바람인데, 중년의 여배우에게 대한민국 드라마는 이런 소재 말고는 타이틀을 주기 어려운 것도 참으로 애석한 부분이다.




부부의 세계 (2020. JTBC)

마치며

<부부의 세계>는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타이틀을 떠나 분명 잘 만든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이토록 파격적인 극의 전개와 사이코 같은 캐릭터에 짓눌리지 않고 연기한 김희애와 박해준에게 찬사를 보내며, 국내 드라마에서는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던 그 이성의 선을 과감히 뛰어넘은 것에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전반부와 달리 힘없이 늘어지고 개연성은 찾아볼 수 없는 후반부는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재미라는 기본적인 목적에 100% 충실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분명한 건 이 드라마는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과 달리 부부의 본질을 비상식적으로 다루면서 어떠한 주제의식도 명쾌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이혼하면 자식이 망가진다 정도?) 눈부신 두 배우의 연기와 선을 넘은 파격적인 불륜 드라마로 지금도 기억될 뿐이다. 여전히 깨지지 않은 비공중파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흥행 성적과 함께 말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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