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범택시1 리뷰
2021년 <빈센조>와 <마우스>로 이어지는 다크히어로 열풍은 마침내 <모범택시>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복수 대행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장르적 쾌감과 사회 고발을 동시에 보여줬던 <모범택시>는 다크히어로라는 명칭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작품이었다. 하지만 사적 복수와 공적 심판 사이에서 갈등하는 후반부부터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면서, 다크히어로의 결정판 같았던 <모범택시>는 조금씩 흔들린다.
<모범택시>는 원작을 바탕으로 택시 기사의 복수 대행 서비스라는 개성 넘치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소재들을 대한민국을 분노케 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 사회 고발이라는 순기능의 모습도 보여준다. 조두순이나 양진호 같은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삼으면서 그들의 행각을 보여주고, 이에 피해받는 약자들을 대변하고 위로해 준다. 이러한 디테일이 가능했던 건 역시 화제가 되었던 박준우 PD의 이력인데,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Y>의 프로듀서라는 것이다.
사회 고발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복수와 액션이라는 장르적 쾌감도 놓치지 않는다. 드라마에 몰입할수록 악자들의 만행에 분노하게 되며, 무지개 운수의 복수 대행에 감정 이입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레트로 감성과 개성 넘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마치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는 듯한 히어로 감성을 재치 있게 패러디한다. 초반 대역 액션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롱테이크 액션신 등 액션 부분에서도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면서 장르적인 연출에도 많이 고민한 흔적들을 보여준다. 이렇듯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한 액션 활극의 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작품 역시 <빈센조>와 동일하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해결하는 옴니버스식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흐름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유려하다. 시작부터 최종 빌런임을 암시한 대모의 개입 과정이나 안고은의 과거에 대한 떡밥 등 매회마다 다음에 등장할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유추하게 한다. 상당히 인상적인 전개 방식이다.
무엇보다 <모범택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놀라운 빌런쇼이다. 태항호부터 최현욱 그리고 백혁진으로 이어지는 빌런들의 연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백현진은 박양진 회장의 사이코적인 모습을 완벽하고도 리얼리티하게 연기해 낸다. 중반부부터 이런 압도적인 빌런의 등장으로 후반부가 걱정되지만, 차지연과 이호철은 그런 걱정은 가소롭다는 듯이 최강 빌런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차지연의 빌런 포스는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판에 내놓아도 범접하기 힘든 어마 무시한 포스였다.
무지개 운수 주역들의 연기 또한 모두 훌륭했지만 역시 극의 중심이었던 이제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역할 대행의 모습이 조금은 언밸런스 같았지만, 이제훈의 다양한 연기력을 볼 수 있었던 장이었던 건 분명했다. 김도기라는 인물과는 전혀 다른 능글미와 비굴함, 심지어 다양한 개그코드까지 선보이면서 정말로 좋은 배우임을 증명해 낸다. 또한 분노에 가득 찬 눈빛과 액션 연기, 그리고 매력적인 제스처들로 이제훈 특유의 반항아스러운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준다. 그러한 이미지를 잘 캐치한 제작진과 그러한 활용에 멋지게 응수한 이제훈의 연기력이 제대로 상호 작용한 결과이다,
<모범택시>는 후반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전개로 방향을 틀면서 주인공들의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 심판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김도기와 강하나의 모습에서 다크히어로의 본질을 논하려고 하는 대범한 노림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노림수는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드러내는 역효과를 보여주고 만다.
올해 방영한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16부작이 짧게만 느껴졌던 <모범택시>. 그만큼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몰입도가 높았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가능하다면 더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 다루고 이를 복수를 해주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모범택시>는 몇 가지 사건만 다룬 채 바로 '사적 복수'에 대한 본질을 건드리는 대담성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변곡이 작가 교체와 맞물려서 여러 비판을 받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접근에는 어느 정도 찬성한다. 최종 빌런인 대모를 통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라는 역발상의 전개와 이로 인해 주인공들의 위기를 보여준 것도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안타깝게 느낀 건 이러한 전개로 변곡점을 맞이하기에는 전체적인 흐름상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다.
범죄자들이 탈옥하고 주인공들에게 복수하는 전개는 수많은 복수 대행 서비스가 이뤄지고, 가장 마지막에 나와야 할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모범택시>는 무려 11회에 이러한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렇다 보니 앞전에 악인들에게 복수한 몇 안 되는 사건들이 상당히 우스워지는 모양새가 된다. 복수도 얼마 하지 않았는데 뒤이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결국에는 범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보이면서 앞전의 주제와 메시지가 당위성을 잃은 채 표류하고 만다. 심지어 악인의 관점에서 주인공들도 한낮 개인적인 복수의 대상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전반부의 메시지들은 더 모호해져 버린다. 서로 다른 메시지가 너무 이르게 부딪히면서 흔들리고 마는, 너무나 이른 본질 탐구의 역효과였다. 차라리 이러한 내용들을 지금 방영하고 있는 시즌2에 그려 넣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훨씬 더 매력적인 시즌2가 그려졌을텐데 말이다.
김도기는 모범택시 그룹 안에서 상대를 힘으로 무력할 수 있는 싸움꾼의 역할이다. 다양한 역할 대행은 사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극 중에서 선생님이나 IT직원 심지어 조선족까지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마치 특수요원처럼....)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서 조금은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면 리얼리티가 더 살지 않았을까?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역할대행을 선보이면서, 마치 <모범택시>는 판타지 드라마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미와 싸우게 되는 후반부의 김도기와 전반부의 김도기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는 극 전반의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의 괴리감을 좁히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시즌2에 와서 더욱 심각해지고, 개연성마저 붕괴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장르적인 쾌감과 사회 고발이라는 두 가지 강점을 동시에 보여준 <모범택시>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풀어준 작품이었다. 후반부의 변곡점으로 인해 사적 복수와 공적 심판 사이에서 모호해지는 메시지가 이 작품의 발목을 잡았지만, 사실 이러한 본질에 접근한 것만으로도 박수쳐주고 싶다. 그저 아쉬운 건 좀 더 다양한 사회 고발과 복수 대행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지금 방영하는 시즌2에서 이러한 본질을 다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부분이다. 분명한 건 모호했던 메시지보다 통쾌했던 무지개 운수의 복수가 더 많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현실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강도기의 복수 대행을 기다리는 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즌2의 방영은 찬성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