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스쿨 리뷰
<로스쿨>의 극본은 탄탄하면서도 완벽한 구성력을 보여주면서 기대치를 훨씬 웃돈다. '로스쿨'이란 캠퍼스 이야기를 범정 미스터리 안에 녹여내면서, 지루하고 식상할 것 같은 법학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나간다. 부족하거나 과함 없이 16부작을 완벽히 소비해 나가면서, <괴물>과 함께 2021년에 나온 작품 중에 가장 탄탄한 극본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의 놀라웠던 극본에 비해 연출이 쫓아가지 못하는 인상을 준다.
<로스쿨>의 극본은 회를 거듭할수록 그 구성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법 고시가 폐지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벌한 학교가 된 로스쿨의 모습을 그저 캠퍼스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살인사건을 통해서 흥미롭게 구성하고 펼쳐나간다. 이 살벌한 학교 안에서 예비 법조인이라 부르는 학생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과 고민, 그들의 생존기를 그저 옴니버스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인사건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흥미진진하게 구성해 간다. 이러한 구성력은 캠퍼스 드라마와 미스터리 드라마 사이에서 기막힌 줄타기를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후반부까지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단 하나의 살인 사건으로 16부작을 꾸려나가는 구성이 가능했던 건, 범인으로 지목된 여러 학생들의 사연들로 '로스쿨'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의 살인사건은 현대판 음서제 논란과 논문 표절 등 다양한 '로스쿨'의 민낯을 소개하는 구심점이 된다. 이러한 패턴에 익숙해지는 중반부부터는 '정당방위' 같은 주요 법적 논란과 살인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면서, 더 긴장감 넘치는 후반부를 보여주게 된다.
인간의 생명과 의사의 본질에 대해 다뤘던 다양한 의학 드라마처럼, 최초의 로스쿨 드라마인 이 작품 역시 법의 형평성과 이를 다루는 법조인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무엇보다 그 당시 조국 사건으로 민감할 수 있는 '피의사 사실 공표죄' 같은 소재를 정치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형평성과 타당성을 논하는 모습은 상당히 감탄스러웠다. 또한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법학을 논하며 그 딜레마에서 해어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은 법의 관점에서 좀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파고들지만, 몇몇 이야기들을 통해 법보다 보편타당한 감성적 사고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동안 보아왔던 법 관련 드라마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면서, '로스쿨'이라는 드라마 제목에 부끄럽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김명민의 연기는 항상 과하고 뜨겁다. 그래서 가끔 어떤 배역에서는 어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선도하는 역할을 맡을 때, 그는 대한민국에서 한석규와 함께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의 전 작품들, <하얀 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에서 그는 정말로 눈부셨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온갖 시선의 중심이 되는 법정과 교수라는 배역이 그에게 최고의 백그라운드가 되어준다. 마치 작가가 판을 깔아주고 '놀아보세요'하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명 나게 노는 느낌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무대 위에서 놀아나는 김명민의 연기력은 가히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정말로 어마 무시한 경지이다.
<로스쿨>은 뛰어난 극본으로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했지만, 사실 그러한 몰입도는 중반부 이후부터 본격화된다. 초반부터 엇박자를 보여준 연출과 편집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을 보이며, 탄탄했던 극본에 그저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로스쿨>은 미스터리 추리극을 가장한 법학 드라마이자 캠퍼스 드라마에 가까웠다. 초반에는 미스터리 추리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중반부부터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작가의 극본에 여러 가지 장르적 성향들이 섞이면서 연출의 방향도 다양해졌지만, 이를 연출에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인상을 주고 만다. 예를 들어 캠퍼스 드라마의 결에서 스릴러 감성을 살린다든지, 스릴러 특유의 반전신 같은 부분을 밋밋하게 연출하는 등의 엇박자스러운 모습을 종종 보이고 만다. 심지어 초반부 미스터리 스릴러 느낌에 잘 어울렸던 김태성의 놀라웠던 음악마저 후반부로 갈수록 캠퍼스 드라마의 결과 부딪치면서 어색한 느낌을 주고 만다.
결과적으로 연출이 극본 의도와 핵심을 정확히 꽤지 못하고 다소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극적인 부분에서 더 임팩트 있게 연출이 가능했을 것 같았는데 <로스쿨>의 연출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을 찾아갔고 전반적으로도 무난한 연출이었지만, 김석윤PD의 전작 <눈이 부시게>와 이듬해 작품인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려보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로스쿨>을 보면 90년대 말 캠퍼스 드라마의 절정을 보여줬던 <카이스트>가 떠오른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가장했지만, 젊은이들의 뜨거운 도전과 경쟁 그리고 성장을 다루면서 좋은 캠퍼스 드라마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벌한 '로스쿨'이라는 배경과 예비 법조인이라는 설정에 사회적 다양한 문제들을 투영시키면서 이 작품이 남다른 캠퍼스 드라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시즌2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자 가능성의 이유였다. 이 좋은 캐릭터들과 설정들, 무엇보다 멋진 배우들과 작가가 있었지만 이 작품은 기어코 캠퍼스 드라마로서의 시즌2를 배제시켰다. <로스쿨>은 20년대 대표하는 캠퍼스 드라마이자 법학 드라마로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너무나 재밌게 봤기에 사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