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인 리뷰
<마인>은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그저 흔한 막장 재벌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그 흔한 재벌 드라마와 격을 달리하는 것은 조금은 달랐던 전개와 압도적인 비주얼의 차이에 있다. 기존에 보아왔던 막장 드라마와 다른 선택과 고민을 보여주고, 비주얼에 혼신의 힘을 다한 제작진의 노림수가 더해져 이 작품을 남달라 보이게 만든다.
<마인>은 그동안 보여왔던 수많은 막장 불륜 드라마와는 조금은 다른 전개를 보인다. 불륜 드라마에서 늘 보아왔던 피 튀기는 여성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여성들이 연대하여 힘을 합치는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혈통을 잇는 무능력한 남자가 아니라 여성도 가능하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돼버린 범인 찾기(혹은 사람 찾기)를 불륜과 재벌가 이야기에 집어넣어, 뻔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전개해 나간 부분도 좋았다. 또한 실제 사회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재벌가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듯한 에피소드들과 캐릭터들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상류층들의 화려한 모습. 하지만 <마인>은 그러한 모습과 격을 달리하면서 압도적인 비주얼로 재벌가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비주얼이 가능했던 건 '뮤지엄 산'을 통째로 빌린 제작진의 노림수가 크게 한몫했기 때문이다. 이 압도적인 배경은 마치 현대판 궁궐 같은 느낌을 주면서,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리는 권력 다툼이 자연스럽게 왕의 자리를 노리는 모습처럼 비치게 한다. 물론 이듬해 <아다마스>에서 이 공간이 다시 나오면서 그 메리트는 급격하게 줄었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성격과 분위기를 특정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내면서, 더욱 상징적인 공간으로 비치게 하였다. 특히 극의 중심이었던 메인 계단은 인물들 간의 상하 우위와 다양한 감정들을 교차시키는 장치로 활용하면서, 공간을 그저 배경이 아닌 연출적 장치로 활용하였다. 정말 탁월한 배경 선택과 연출이었다.
물론 이 작품의 화려함은 '뮤지엄 산'이 전부가 아니다. 디테일한 인테리어과 소품, 화려하면서도 대담한 의상, 그리고 이를 더욱 아름답게 보여준 화면 구성과 조명까지! 완벽한 비주얼을 위해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화려하면서 조금은 키치적인 음악과 매 회 세련된 타이틀의 디자인까지 작품 곳곳에서 '리얼 럭셔리'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비주얼을 빼면 두 배우의 연기가 전부일 정도로 작품의 커다란 구심점 역할을 한다. 특히 김서형은 마침내 이러한 경지까지 보여주면서, 그 어떠한 배우도 대체 불가능한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이미 전작 <아무도 모른다>에서 혀가 닳도록 극찬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린듯한 감정 연기는 정말 어떤 극찬을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모두를 아우르는 따스함과 성소수자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지키는 자로서의 분노와 증오까지 다양한 감정들을 과잉 없이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거기에 귀를 뻥 뚫어주는 딕션과 우아한 몸짓까지 기술적인 연기에서도 최고 능력을 선사해 준다.
이보영 역시 매력적인 서희수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를 여실히 증명해 낸다. 특히 당차면서도 틀에 갇혀있지 않은 서희수를 매력적으로 연기하면서, 엄마와 여배우라는 그녀의 감정과 역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후반부 극 중에서 본인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느끼게 해주는 몇몇 장면들 역시 감탄스러운 부분. 무엇보다 7회의 엔딩 장면에서 경이로운 연기를 선보이며, 김서형 못지않은 엄청난 연기 내공을 선보인다.
불륜과 막장이라는 소재 특유의 휘몰아치는 전개와 재미를 <마인>도 초반부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작부터 보여준 '살인 사건'은 그저 하나의 미스터리 요소일 뿐, 극을 이끄는 메인 스토리가 아니었다. 기획 의도와 맞게 두 주인공이 갇힌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 찾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막장이라는 소재안에서도 나름 의미 있는 전진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반부 이야기의 중심이 범인 찾기로 넘어가면서 <마인>은 무게중심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초반부 보여줬던 파격적인 전개도, 그렇다고 기획의도처럼 눈부신 자아 찾기도 아닌 그저 '범인은 누구인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한다. 물론 마지막 떡밥 회수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스터리한 구성이 완성도가 높은 편도 아니었다.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왜'보단 '누구'에 집중하면서 상당히 답답한 전개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물이 죽었기 때문에, 누가 죽였는지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도한 시간차 편집은 계속해서 극의 흐름을 끊어 놓으며, 반복과 재반복이 이어지면서 스피드 했던 전개는 한없이 느려지고 만다. 통쾌한 복수도 화려한 자아 찾기도 아닌, 그저 범인 찾기에 극의 하이라이트를 올인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후반부를 보여주게 된다.
<마인>은 식상하고 뻔한 재벌 이야기였지만, 분명 기존 작품들하고는 조금은 다른 노선을 선택한 작품이었다. 비록 불륜과 재벌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지만, 그러한 흥미 위주의 이야기에서 나름 한 단계 진일보한 전개와 메시지를 보여줬다. 특히 비주얼에서 보여주는 디테일한 완성도는 여러 번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 무엇보다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했던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범인 찾기에 올인한 후반부의 전개가 아쉽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나는 막장 드라마도 언제나 시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