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디피(D.P.) 리뷰
2021년은 코로나 시대로 인해 영화 시장이 위축되면서 많은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이 드라마로 방향을 선회한 해였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바로 한준희 감독과 정해인, 구교환 조합의 <D.P.>였다. <D.P.>는 탈영한 병사들을 잡는 이야기를 다룬 군대 드라마로 <인간 수업> 이후 한동안 아쉬웠던 넷플릭스 드라마가 다시 한번 진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표현의 한계성을 마음껏 열어 재친 이 플랫폼의 드라마는 결국 병영생활의 폐단, 그 뿌리 깊었던 문제까지 과감히 꺼내어 놓는다.
어느 한 유튜버가 군 생활이 왜 X같은지 이야기한 동영상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군대 생활이 X같은 이유는
너를 괴롭히는 학교 일진, 직장 상사가
네 집에도 같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샤워하며,
옆에서 같이 잔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혹하고도 가혹한 군 생활의 고통을 <D.P.>는 정확히 캐치하고 보여준다. 그동안 군대 드라마에서 다뤘던 단편적인 군 가혹행위의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간다는 군대가 왜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아주 집요하고 과감하게 드러내 보인다. 여기에서 이 작품은 왜 이러한 일들이 끝이지 않고 반세기 동안 계속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캐치해 낸다.
군대 사회는 수직적 계급사회로 폭력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묵인되는 곳이다. 후임은 무조건 을이 되고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인데,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 이 을이 언젠가 갑이 되고 이러한 폭력은 결국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맞은 만큼 돌려주고 당한 만큼 대갚음해 주는,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의 자리가 위태해지는 잔인한 시스템이 이러한 대물림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대물림의 문제를 정확히 캐치해 냈으며, 심지어 전역한 가해자도 또 다른 사회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순환'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물림이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 역시 <D.P.>는 정확히 캐치하여 보여준다. 바로 알면서도 가만히 놔두는 '방관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일이 아니기에 혹은 보복이 두렵거나 진급이 누락될까 봐 피하고 방관했던 그 모든 병사들과 간부들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모두가 알고는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그래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군대의 고질적인 폐단을 정확히 집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군대의 변화라는 필요성에 다다르면서, 근본적인 질문들을 메아리처럼 던지고 또 던진다.
사람이 변하면 군대가 바뀌는가?
혹은 군대가 변하면 사람이 바뀌는가?
<D.P.>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표현의 제약 없이 과감하고 리얼리티 한 연출을 시도한다. 공중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의 잔인함과 군 생활의 위태로운 모습을 노골적으로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D.P.>의 리얼리티는 넷플릭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었으며, 이 작품은 그런 한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보여준다.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은 영화적 다양한 기법을 이 작품에 온전히 쏟아붓는다. 각각의 탈영병의 사연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와 리듬, 공간의 분리와 전환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편집과 음악, 배우의 감정과 표정을 제대로 잡아주는 촬영과 다양한 시점 등은 이 작품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유가 된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미장센과 군대를 전역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재미난 요소들까지 연출적인 매력도 일품이었다. 이러한 디테일과 완성도의 차이는 무엇보다 실제 D.P. 생활을 경험한 원작자와 드라마 감독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우선 자기 캐릭터의 복제로 그동안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정해인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시동>이나 <유희열의 음악앨범>을 보면 그의 그늘진 연기가 선한 외모와 대비되면서 묘한 매력을 주었었다. 그러한 어둡고 그늘진 모습을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끄집어내면서,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이등병임에도 불구하고 디피라는 권력과 함께 조금씩 변해가는 안준호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 내면서, 그의 커리어 중에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구교환은 자신의 매력과 장점을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선보이며 왜 본인이 핫한 배우인지를 또 한 번 증명해 낸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남다른 연기력과 능글거리면서도 코믹적인 모습이 정해인과 대비되면서 이 무거운 드라마에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다. 손석구 역시 기존에 보여왔던 연기와는 전혀 다른 연기톤을 선사하면서 극의 몰입도를 제대로 높여준다.
무엇보다 제일 놀라웠던 배우는 바로 조석봉역의 조현철이었다. 이미 모기 같은 목소리로 남다른 캐릭터 해석을 보여줬던 그지만, 사실 그동안의 작품에서 어떤 연기적 메리트를 찾기는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조석봉 일병이 폭발적으로 미쳐가는 과정을 너무나 놀랍게 연기하면서, 이 작품의 후반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버린다. 무너지는 인간성과 미쳐가는 광기를 다양한 연기톤으로 보여주면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조연상의 영광을 차지한다.
이 작품은 인트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그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군대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겪게 되는 갖은 고통과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군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남자만 왜 군대에 가야 하며, 이러한 군대에 왜 남자들이 젊은 청춘을 희생해야 하는지 은연중에 그 메시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는 그러한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최근 젠더 갈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붉어지고 있는 군대에 대한 남성지지적 배경이 되어주는 모습들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메시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군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인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병영생활이 드라마 같지 않으며, 이는 상당히 단편적인 부분을 가지고 일반화시킨 것처럼 보인다. 90년대 군번을 경험한 나 역시 여러 구타 가혹행위를 경험했지만, <D.P.>는 분명히 자극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드라마틱하게 확대해석한 부분들이 있어 보였다. 만약에 이우정이 <슬기로운 군대 생활>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이야기만 보여줬을까? 디피라는 특수 임무가 자연스럽게 군 가혹행위만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 이 작품의 뛰어난 리얼리티로 인해 마치 모든 군대가 이런 것처럼 일반화해 버리는 해석만큼은 피해야 한다.
얼마 전 군대 내 성폭력과 내부 은폐 사건이 큰 이슈가 된적이 있다. <D.P>는 왜 군조직은 그렇게 폐쇄적일수 밖에 없는지를 정확히 캐치하여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군대를 넘어 대한민국의 수직적 사회 모습 까지도 비판하면서, 폭력의 대물림, 그리고 방관자들이 변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것도 변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대물림을 끝내려고 하는 안준호 이병의 행동 역시 하극상이자 반사회적인 모습처럼 그려내면서, 이 사회가 쉽게 변화지 않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군대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이야기처럼 6부작밖에 안 되는 <D.P.>의 이 짧은 이야기는 정말로 많은 메시지와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드라마틱한 전개와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은 연출과 극본,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연기해 낸 배우들의 열연까지, 오랜만에 몰입도 높은 뛰어난 작품이었다. <괴물>과 함께 2021년 최고의 드라마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현재 촬영 중인 시즌2가 간절히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