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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같은 인생, 지옥 같은 게임

드라마 <오징어 게임> 리뷰

by 투스타우

2년 전 블로그에 <오징어 게임>의 리뷰를 썼을 때는 이 작품이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쓸 흥행작이 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이 흥행만큼의 걸작은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물론 추억의 게임으로 죽음의 레이스를 펼친 매혹적인 콘셉트와 비주얼과 음악적인 완성도에서 여타 국내 드라마들과 다른 수준을 보여줬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거지 같은 인생, 지옥 같은 게임

거지 같은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의 서바이벌 게임에 모여든 참가자들. 이 작품은 초반부 그들의 삶에 집중하면서 '오징어 게임'이 왜 유일한 탈출구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게임마저 순수성을 가장한 지옥 그 자체로 그려내면서, 참가자들의 도전이 천국이 아닌 지옥문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옥 같은 상황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모습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결과적으로 이 지옥의 게임에서 더 지옥불로 끌어내리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참가자 본인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거지 같은 인생도, 지옥 같은 게임도 전부 사람 그 자체에 원인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잔인한 지옥도를 소름 끼치게 그려나간다.

20230303103049.png 거지 같은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의 서바이벌 게임에 모여든 참가자들!!
20230303103114.png 하지만 그 게임마저 순수성을 가장한 지옥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파격적인 비주얼, 잔혹동화!!

물론 <오징어 게임>의 설정 자체가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설정이었지만, <배틀 로얄>이나 <신이 말하는 대로>, <카이지> 같은 작품에서 봐왔던 기시감 때문에 그렇게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게임을 풀어나가는 비주얼만큼은 파격 그 자체였다. 추억 속 동화 게임을 그려내는 유아틱 한 배경에 피와 폭력으로 가득한 잔혹스러움으로 대비되는 영상은 시종일관 드라마의 키 비주얼로 사용된다. 말 그대로 '잔혹 동화' 그 자체였다. 독특한 색감부터 완벽하게 구성된 세트장, 오징어 게임에서 가져온 ○△□의 키 비주얼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고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여기에 정재일의 센스 넘치는 음악까지 더해져 오감을 자극하는 최상의 영상미를 뽐내게 된다. 이 부분만큼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뛰어났으며, 국내 드라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였다.

20230303103144.png 유아틱 하게 그려낸 환상적인 배경과 독특한 색감의 미술 세트는 정말로 압도적이다.
20230303103155.png 이에 대비되는 피와 폭력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잔혹 동화' 그 자체였다.


디테일한 완성도

예전 영화 <살아있다>에서 유아인이 한 달 동안 갇혀 있음에도 그대로인 머리 길이와 수염 하나 없는 얼굴에서 별거 아닌 디테일이지만 참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오징어 게임>은 그러한 작은 디테일하나 놓치지 않고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참가자들의 점점 더 자라는 수염들, 감지 않아 떡진 머리카락, 조금씩 핼쑥해지는 얼굴들은 이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비주얼적으로 잘 드러낸다.

20230303103208.png 외모나 자라나는 수염 등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모습이 엿보인다.

또한 통제가 완벽히 되어있는 게임 관리자들도 단지 판타지로 얼렁뚱땅 넘기기보다는, 전부 다 그럴듯한 방식과 시스템으로 나름 개연성 있게 묘사해 내었다. 작은 개연성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판타지보다 더 리얼리티 하게 느껴진 이유였다.

20230303103237.png 체계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게임 관리자들의 묘사도 나름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인상적인 배우들

오랜만에 악역과 진중한 캐릭터의 인상을 벗어던진 이정재는 더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90년대 말 한때 자신의 연기 캐릭터로 자리 잡았던 지질하고 자유분방했던 모습에 중년의 이미지를 덮어쓰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재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어느덧 이정재는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까지 성장했다. 물론 여전히 <관상>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같은 악역 캐릭터가 최적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230303103253.png 이정재는 젊은 시절 자신의 캐릭터 이미지로 삼았던 자유분방했던 모습을 오랜만에 보여준다.

박해수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묵직하면서도 저돌적인 박해수의 특유의 힘 있는 연기에 지능적인 면까지 더하면서 상우란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해 낸다. 비주얼적으로도 이정재와 멋진 케미를 보이면서 최적의 밸런스를 선보인다. 허성태의 악역 연기야 이제 국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준이지만, 개그적인 부분을 완전히 걷어낸 악역 연기는 얼마나 더 공포적인지를 이번 작품으로 확실히 보여준다.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에 빛나는 오영수의 디테일한 연기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작품 전체를 휘감은 오영수의 남다른 아우라는 마지막까지도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든다.

20230303104802.png 작품 전체를 휘감은 오영수의 남다른 아우라는 마지막까지도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든다.


더 인상적인 여배우들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남자들 사이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던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한 정호연과 김주령이었다. 정호연은 이 작품이 첫 출연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탈주민 여성인 새벽역을 멋지게 연기해 낸다.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어눌하면서도 뚝심 있는 포스와 공포를 집어삼키는 특유의 인상까지, 이 모든 지옥을 홀연히 견뎌내는 새벽역을 120% 이상 소화해 낸다.

20230303103318.png 비주얼부터 특유의 인상까지 새벽역을 놀랍게 연기해 낸 정호연.

김주령은 국내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 그 자체의 한미녀라는 캐릭터를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해 낸다. 약육강식의 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지를 내리는 것조차 서슴지 않아 하는 이 무섭고도 복잡한 캐릭터를 소름 끼칠 정도로 놀랍게 연기해 낸다. 미녀 캐릭터의 설정과 쓰임이 요즘 같은 시대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김주령은 이런 파격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하면서 신들린듯한 열연을 보여준다.

20230303103328.png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열연을 보여준 김주령!!




앞서 말했듯이 <오징어 게임>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것만큼이나 아쉬운 모습도 보여준다. 계속해서 지적되는 서바이벌 게임에 대한 기시감의 문제는 사실 이제 '배틀로얄'식 하나의 장르로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전반적인 구성에서 불필요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눈에 띄면서, 의미 없이 분량을 늘린 것 같은 부분이 더 큰 단점처럼 보였다.


불필요한 이야기와 캐릭터

그리고 불필요한 장면들

이 게임장에 잠입한 경찰 준호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가장 불필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형을 찾는다는 목적 하나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사람치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게임장을 적응해 나가면서 개연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오랜 기간 이 게임을 추적해 온 베테랑 형사라면 모를까, 그저 어떠한 서사도 없는 일반 경찰이 그저 형을 찾기 위한 행동치고는 그 스케일과 목적이 어딘가 맞지 않아 보였다. 결과적으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서사가 너무나 부족했던 캐릭터였다. 물론 이러한 부족한 서사는 결과적으로 시즌2를 만들기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20230303103344.png 게임장에 잠입한 준호의 이야기는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준호 이야기와 맞물린 의사와 장기 추출 이야기 역시 의미 없이 분량만 늘린 에피소드로 보인다. 심지어 장기 추출 이야기는 이 게임장의 완벽한 통제 시설에 스스로 구멍을 보여주는 오류 같은 모습이었다. 게임장의 통제보다 이들이 게임장에서 몰래 장기를 추출하는 모습이 더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기 추출이나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치 스너프 필름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굉장히 아쉬운 에피소드와 장면들이었다.

20230303103357.png 장기 매매 이야기와 장기 추출 장면은 큰 의미 없는 불필요한 에피소드로 보인다.


극과 극의 리듬감

이 작품의 최고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극도의 게임 장면이다. 특히 2번째와 4번째 게임의 극적인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출 역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게임이 끝나고 다음 게임이 이어지기까지의 이야기는 너무나 고요하고 잠잠하다. 그 부분을 준호의 이야기가 잘 채워줬어야 했는데, 이마저도 그렇지 못한다. 게임의 극적인 긴장감과 게임 이후에 떨어지는 긴장감의 차이가 크면서, 극의 리듬감이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이 조금 루즈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230303103413.png 게임 과정의 엄청난 긴장감과 대비되는...
20230303103424.png 게임 이후의 떨어지는 긴장감이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면서, 불규칙한 리듬감을 보여준다.




20230303103436.png 오징어게임 (2021. NETFLIX)

<오징어 게임>은 분명 비주얼과 미술, 그리고 음악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배우들의 열연, 특히 여성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는 뇌리에 깊이 박힐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의 기시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캐릭터와 에피소드, 그리고 간극이 컸던 극의 리듬감이 이 작품의 발목을 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앞으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이 작품의 남다른 설정은 시즌 하나로 끝마치기에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다. 좀 더 가다듬은 이야기와 완성도로 훨씬 더 흥미진진한 시즌2를 기다려본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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