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이네임> 리뷰
2020년 <인간 수업>으로 극찬을 받았던 김진민 PD의 차기작인 <마이네임>. 처음 예고편을 보고 '언더커버라는 그 흔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리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연출 역시 전작에 비하면 그렇게 특출 날 것도 없었다. 이 작품의 차별점은 오직 하나!! 바로 한소희였다.
<무간도>로 시작해서 <신세계>까지 이미 지겹도록 다뤄진 신분 세탁과 2중 스파이의 언더커버류 이야기. 이 뻔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김진민 PD는 새로운 것을 더하지 않는다. 그 흔하디 흔한 클리셰를 그대로 반복하면서, 오히려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 작품의 차별점은 이러한 언더커버 안에서 지옥도를 감당하는 고통스러운 역할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제법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에는 온몸을 불사르면서 놀라운 아우라를 뽐내는 한소희의 열연이 가장 컸다.
한소희는 그 이쁜 얼굴과 왜소한 체격으로 모든 액션을 놀랍게 소화해 낸다. 이미 영화로는 <악녀>의 김옥빈이나 <마녀>의 김다미가 눈부신 액션 연기를 선보인 적은 있으나, 드라마에서 이토록 온몸을 불사르는 여성의 액션 연기는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부분 부분 액션신에서 약간의 합이 느껴지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런 처절하고 강렬한 액션 연기를 하면서도, 그 남다른 아우라와 분위기를 끊임없이 뿜어내는 한소희의 매력은 시종일관 너무나 대단했다. 매력적인 마스크와 눈빛, 그리고 뭔가 계산적이지 않은 날것의 연기가 작품 전체에 스며들면서 그녀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해 낸다. 이 나이대의 여배우들이 쉽게 하지 못할 도전에 모든 것을 던진 한소희와 이런 배우의 아우라를 알아보고 캐스팅한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한소희 중심의 드라마였지만 주변 인물들의 열연도 역시 대단했다. 최근 그저 캐릭터성만 소비되면서 본인의 매력을 십분 발휘 못한다고 느꼈던 박희순은 오랜만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며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안보현 역시 현재 <유미의 세포들>의 구웅과는 전혀 다른 생명력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남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작년 <이태원 클래스>와 <카이로스>에 이어 올해 또 다른 캐릭터들을 열연하고 있는 안보현의 연기 스펙트럼은 내 예상을 확실히 뛰어넘었다. 경찰 팀장 역으로 이젠 베테랑의 느낌마저 드는 김상호의 포커페이스 같은 연기도 좋았으며, 묵직한 연기 톤을 선사한 이학주 역시 훌륭했다. 무엇보다 강렬한 이미지와 비주얼을 선사한 장률의 등장은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발견이었다.
<인간 수업>에서 획기적이면서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김진민 PD는 이번에는 기교보다 좀 더 정통파에 가까운 연출을 선보인다. 하지만 <인간 수업>에서 보여줬던 날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한 연출만큼은 이번 작품에도 여전히 보여준다. 액션신의 디테일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검은 태양>만큼 화려하거나 멋있지는 않지만, 피와 살로 낭자한 처절한 혈투와 리얼리티는 시종일관 작품 전체에 투영시킨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그저 잔인한 폭력성과 과한 리얼리티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러한 연출의 날것이 한소희의 매력과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작품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스토리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예상 가능한 반전은 무덤덤하고, 많이 봐왔던 배경과 이야기 전개들은 수많은 클리셰를 범벅한 수준에 그친다. 선박, 항구, 호텔 등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도 그간 누아르 영화에서 다뤘던 장소들의 재답습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중반부 조직의 새로운 저항마로 등장했던 강재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조커같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그의 카오스적인 행동이 이 작품의 뻔했던 방향을 흔들어놓으면서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하지만 다시 원래의 스토리로 돌아오는 후반부부터 이러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만다.
클리셰 범벅에 새로울 것이 없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뚝심 있게 이 지옥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적어도 이 작품을 보면서 기대했던 치열하고 피 튀기는 액션신과 장렬한 복수도 기대한 만큼 보여준다. 스토리를 산만하게 진행시켜 아쉬움이 큰 <검은 태양>과 비교하면, 오히려 뻔하지만 이러한 선택과 뚝심 있는 전개가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작품의 결말은 최소한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마이네임>은 킬링타임용 드라마로 보기 딱 좋은 작품이다. 최근 OTT 드라마들의 높은 완성도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졌을 뿐이지, 여전히 공중파나 케이블 드라마와 비교하면 디테일과 완성도면에서 한수 위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묘한 기운으로 물들이고 있는 한소희의 매력 넘치는 아우라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분명 한소희는 2021년 드라마 신에서 반드시 기억될 만한 눈부신 연기였다. 22년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이러한 부분을 증명한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