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시즌1> 리뷰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들은 언제나 원작 팬들의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네이버 웹툰으로 오랫동안 명작으로 평가받았던 <유미의 세포들>의 드라마화 결정은 기대만큼이나 불안요소가 가득했던 작품이었다. 이 원작 웹툰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로서도 제작과 캐스팅 소식을 보면서 기대보단 걱정과 실망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1화를 보는 순간 감탄과 환호로 바뀌게 된다. <유미의 세포들>은 웹툰을 드라마 한 작품 중 역대 최고의 퀄리티와 싱크로율을 보여주면서, 2021년 가을 대작들의 러시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우뚝 선다.
이 웹툰의 드라마화가 가장 우려되었던 것은 역시 '세포들'이었다. 이 세포들의 실사화가 불가능 한 만큼 얼마나 애니메이션으로 잘 구현할 수 있는가가 초유의 관심사였다. 또한 이러한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배우들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결합되느냐도 역시나 문제였다. 하지만 웹툰의 세포들을 재현한 3D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이러한 걱정을 기우로 만들 만큼 놀라움을 선사한다. 거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수준으로 원작이 보여주었던 디테일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어 버린다. 다양한 표정과 움직임, 화려한 색감과 음악, 거기에 초호화 성우진들의 노력까지 합쳐서 최상의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원작의 세심한 부분까지 재현하려 했던 부분 역시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원작을 재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배우의 외모부터 의상, 심지어 배경에 소품까지 원작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부분들이 엿보인다. 원작의 극장판스러운 느낌이 드는 또 다른 이유이다.
3D 애니메이션이나 디테일뿐만 아니라 원작의 핵심 포인트를 잘 추려낸 각색도 일품이다. 원작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원작의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보다는 꼭 드러내줬으면 하는 이동건 작가의 키포인트를 완벽히 재현해 낸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들을 완벽히 구현해 내면서 원작의 매력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연출에서도 웹툰의 매력을 놓치지 않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원작의 연출을 고스란히 재현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것이 보인다. 드라마의 빠른 전개를 위한 여러 각색과 연출에서 원작의 매력을 이토록 잘 살린 드라마는 오랜만이었다.
김고은의 캐스팅 소식에 사실 적잖게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생활밀착형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건 알지만, 웹툰의 유미와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그저 기우일뿐, 김고은은 유미 특유의 결을 놀랍도록 완벽히 소화해 낸다. 무엇보다 김고운 특유의 일상 연기에 원작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감정 표현들까지 더해져서, 더욱 입체적인 유미를 보여준다. 김고은만의 제스처나 연기 포인트가 세포 애니메이션과 뛰어난 조화를 보여주면서, 이제는 김고은이 아니면 유미는 상상이 안될 정도이다. 사실 그동안 자기 복제만 해왔던 김고은의 연기가 조금은 식상하기도 했고, 영화 <변산>에서 보여주었던 남다른 매력을 드라마에서 보고 싶었던 갈망도 있었다. 그러한 매력을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만 같아 개인적으로 기쁘며, 이 작품이 그녀의 드라마 커리어 중에서 최고의 연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김고운은 1년 만에 '작은 아씨들'로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갈아 치운다)
안보현과 진영, 박지현과 이유비 등도 원작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면서 뛰어난 캐릭터 해석력을 보여준다. 사실 이토록 원작을 재현할 것이란 예상을 못 했기에, 조금은 다른 오리지널 캐릭터 다운 면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모든 배우들이 원작의 캐릭터를 100% 재현해 내면서 그저 웹툰을 실사로 보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심지어 구웅의 경우 원작 이상으로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작품의 후반부를 그려내는데 놀라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공인 유미의 행동과 감정의 변화들을 의인화된 세포를 통해서 드라마틱하고 유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부분이 바로 원작 웹툰의 가장 큰 강점이었고, 드라마 역시 원작의 장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30대 직장인 여성의 리얼리티 한 삶과 그 안에 여러 감정들의 충돌을 머릿속 의인화된 세포들을 통해서 솔직히 보여주면서, 마음의 변화와 그 이유들을 기막히게 포착하고 표현해 낸다. 현실 세계의 평범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을 경험해 봤을 이야기가 그 안의 세포들 세상에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면서,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이 재미있는 상호작용이 극의 남다를 재미를 더해준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의 크리에이터 작가로 참여한 송재정 작가는 이미 상호작용하는 두 가지 세계관을 드러낸 작품에 일가견(?)이 있는 국내 유일의 작가였다는 것이다. 현실과 만화 세계의 충돌을 그렸던 <W>와 게임 세계를 그렸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혁신적인 세계관 창조에 누구보다 탁월했던 송재정 작가가 이동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포들의 세계관 위에서 신명 나게 조율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탁월한 작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번에는 송재정 작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설정에 무너지는 폐해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결국 이 두 가지 세상은 유미의 설득력 있는 자아 찾기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픈 성장기를 대변해 나간다. 그것이 일과 사랑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전개되면서, 속 마음을 대변하는 세포들을 통해 '나를 사랑하자'라는 뻔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 과정은 결국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길 바랐던 원작의 메시지이자, 이 작품이 걸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시청자나, 원작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시청자, 혹은 좀 더 획기적이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호하는 마니아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유미가 누구와 결혼하고 어떤 꿈을 이루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유미의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세포들,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세포들을 통해 좀 더 진실되고 솔직한 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을 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죽어있던 연애 세포를 깨울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고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