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옥> 리뷰
마침내 한국 드라마는 이러한 경지까지 도달했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대에 드라마로 눈을 돌린 영화 인력들, 그리고 OTT 플랫폼들의 무한 경쟁으로 2020년과는 다른 퀄리티의 드라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괴물>과 <D.P>를 보면서 2021년 가장 완벽한 퀄리티의 드라마라고 생각했고,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보면서 우리의 콘텐츠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옥>을 보면서 마침내 한국 드라마의 퀄리티와 콘텐츠의 수준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수준까지 다다랐음을 느꼈다.
이 작품을 논하기 전에 연상호감독의 전작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만화다운 비주얼과 상상력, 그리고 개성 넘치는 스토리에 놀라운 리얼리티까지 더해 엄청난 몰입감을 줬었다. 자칫 3류 오컬트 드라마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놀라운 디테일과 리얼리티로 극복해냈다. <지옥>도 마찬가지다.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지옥>은 예고편만 놓고 봤을 때 살짝 걱정이 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전작들에서 그 노하우를 터득한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라는 지원을 만나 <지옥>에서 최상의 퀄리티와 리얼리티를 구현해 낸다. 어색하지 않은 CG와 몰입도를 높여준 디테일과 리얼리티 한 연출,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면서 이 만화적인 이야기를 실제처럼 구현해낸다. 이러한 디테일과 리얼리티는 이 작품에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으며, 그 어떤 장점보다도 우선적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이었다.
연상호 감독은 하나의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간결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소질이 있다. '좀비','염력', '저주'에 이어 이번에는 신의 '고지'와 '시연'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재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디선가 보았을법한 소재로 늘 오락적인 재미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한국 사회에 절묘하게 대입시키면서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시키고 전개해 나간다. 늘 보여왔던 연상호감독 특유의 전개지만 그 스케일과 메시지면에서 전작들을 압도한다. 여기에 만화가 다운 비주얼적인 상상력이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지원으로 연출과 스타일에 그대로 투과시키면서, 절정에 다다른 연상호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반대로 이러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괴이'같은 B급 작품이 나오고 만다)
드라마의 제목인 '지옥'은 시연에서 언급하는 지옥보다는 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이 공포적인 상황 자체가 그저 생지옥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지옥도를 맞이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살면서 보아온 온갖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표현해낸다. 그러한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현재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광기에 미친 사이비 종교와 인터넷 속 마녀사냥의 모습, 돈과 권력에 좌지우지되는 미디어 매체와 무분별한 십대 범죄까지, 다양한 현 사회의 모습들을 이 지옥도 안에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풍자한다. 여기에 신과 원죄라는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던지면서, 오락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모습까지 보인다.
원작의 1부와 2부처럼, 이 작품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러한 흐름이 어색하지 않고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면서, 마치 두 편의 시리즈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긴장감을 끓어올리는 전반부와 활활 불타오르는 후반부의 대치적인 구성과 연출이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사실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나름 드라마적인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지루할 틈도 없는 연출을 보여준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더욱더 리얼리티하게 느껴졌던 건 역시 배우들의 공이 컸다. 우선 유아인과 박정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30대 배우들 중에서 연기적으로 가장 정점에 다다른 두 배우를 한 드라마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황홀한 경험이다. 물론 한 신에서 같이 등장하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전반부의 차가움과 후반부의 뜨거움을 온전히 이끌어나간 이 두 배우의 힘이 굉장했다. 더 이상 어떤 극찬도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유아인의 연기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특히 주변의 공기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그 특유의 연기톤이 이번 작품에서 유독 강렬히 드러내면서, 왜 유아인이 현재 연기력에 있어서 정점에 올라와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낸다. (물론 현재 논란으로 이러한 연기력이 바래져 버렸지만...)
후반부를 책임지는 박정민은 시종일관 염세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한국 사회 특유의 어른들의 모습을 현실감있게 연기해낸다. 이전 영화에서 보여줬던 모습들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면서, 그의 놀라운 연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뽑는다면 가장 이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김현주이다. 최근 커리어에서 동년배 배우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현주라는 배우의 진가를 또 한 번 보여준다. <왓쳐>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작품을 보는 선구안과 자기 복제에 빠지지 않는 모습, 심지어 액션 연기까지 소화하면서 김현주라는 배우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방법>과 <괴물>에 이어 또 한 번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김신록의 광적인 연기는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배우가 그려내는 감정선과 리얼리티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녀는 이 놀라운 연기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놀라운 완성도의 작품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광적인 인간 군상과 화살촉의 흐름을 보여주는 BJ 신들은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음악적인 활용이 전무한 것도 조금 의외인데 <오징어 게임>처럼 최근 작품들의 트렌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몇몇 조연들의 어색한 연기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도 그저 재난적 상황과 광적인 행동으로만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마지막 시연 장면에서 보여준 부부의 선택 과정에 개연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좀 더 이 들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사실 가장 아쉬운 건 나쁘진 않았지만 스케일 면에서 부족했던 CG이다. 다양한 시연 장면에서 좀 더 스케일적으로 화려한 신들을 연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예를 들어 지옥의 사자와 공권력의 전투신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에 경찰들만 나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2021년은 한국 드라마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해이다. 그리고 <지옥>은 이러한 한국 드라마의 정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작품이다. 물론 오락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초반 느린 전개와 빈약한 CG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락적 재미와 사회적 풍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과 리얼리티로 무장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의 작품이었다. 여기에 '연상호 유니버스'라고 하는 그만의 작품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믹스된다면 또 어떤 콘텐츠들이 탄생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원작에도 없는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이 연상호 유니버스가 던지는 새로운 떡밥이자 그 세계관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시즌2를 준비중인 연상호는 이미 다 계획이 있어 보이며, 한국 드라마의 르네상스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임을 입증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