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느날> 리뷰
한국 드라마 역사에 르네상스를 일으킨 2021년. 그해 연말에 또 하나의 걸작이 추가된다. OTT 플랫폼 시장에 뛰어든 쿠팡 플레이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오리지널 작품인 <어느날>이다. 이 작품은 그해 나온 그 어떤 작품보다 휘몰아치는 몰입도가 강렬했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김수현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배역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어느날>을 유명한 외화 시리즈인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다. <부부의 세계>처럼 원작의 강점을 제대로 살려, 시작부터 엄청난 몰입도로 쉴 새 없이 몰아붙인다. 하룻밤의 일탈로 평범한 대학생에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김현수의 과정이 스피디한 전개로 펼쳐지며, 그러한 속도감에도 순간순간의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초반부터 엄청난 몰입감을 줬던 이유가 바로 휘몰아치는 전개에도 놓치지 않은 배우들의 감정선에 있다.
이러한 휘몰아치는 전개는 역시 원작을 바탕으로 공전의 히트한 <부부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날>은 확연히 다른 하나가 있는데, 바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OTT 플랫폼의 강점을 제대로 살렸다는 것이다. 성적인 묘사나 폭력성, 시종일관 피워대는 담배와 욕설로 난무하는 대사들까지 <부부의 세계>에서 미처 넘어서지 못했던 그 표현의 자유라는 선을 자유자재로 넘어버린다. 표현뿐만 아니라 비주얼적인 디테일에서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시종일관 시청자를 압도한다. 세트장으로 새롭게 만든 경찰서나 감옥들, 작은 배경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는 디테일은 마치 웰메이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술과 조명, 거기에 음악까지 이 작품이 남다른 몰입감을 줬던 또 다른 이유이다.
김현수가 초반 감옥으로 가는 과정이 스피디하게 전개되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법정과 감옥이라는 두 장소를 번갈아 다루면서, 마치 두 가지 드라마를 보는듯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신중한 변호사가 중심이 되는 법정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법정 드라마들과 궤를 같이 하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어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을 현란하게 비판하고 꼬집는다. 무엇보다 피고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법제도의 빈틈을 보여주면서, 기존 법정 드라마와는 다른 재미를 보여준다.
법원 이야기와 다르게 감옥에서는 '생존'이라는 남성미 강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감옥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너무나 순진한 대학생 현수가 이 잔인한 감옥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최대로 열려있는 OTT 플랫폼에서 보여주는 감옥 드라마는 그 잔인함과 공포스러움이 이전 감옥 드라마와는 다른 수준을 보여준다. 법원과 감옥이라는 이 강렬한 대비가 더더욱 현수가 이 지옥에서 나가고픈 이유를 되고, 우리에게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어느날>의 캐스팅은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마치 영화를 방불케 한다.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보게 되는 차승원은 그 특유의 사람 냄새나는 연기로 무거운 작품 분위기에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다. 따스함으로 무장된 특유의 애드립과 코믹함, 그리고 사건을 꿰뚫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이 작품의 멋진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토피와 장발이라는 외모에서 보여주는 비주얼적 디테일도 엄청나서,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재미를 준다.
더 이상 극찬하기도 피곤한 김신록과 김홍파의 연기는 피고인에게 남다르게 느껴질 검경찰의 위엄과 포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특히 김신록은 <괴물>과 <지옥>에 이어 또다시 전혀 다른 느낌의 연기를 선사하면서,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사자 같은 김성규의 강인한 연기도, 이리 같은 양경원의 야비한 연기도 최적의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울 몰입감을 준다. 신비로운 인상과 독특한 연기톤으로 이목을 끈 이설과 황세온의 연기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인상 깊었다.
김수현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100%로 다 보여준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어느날>에서 현수란 배역을 만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전부다 보여주게 된다. 그것도 기대치를 상회하는 연기력으로!!!
초반부 일탈에 흔들리는 대학생의 모습부터 살인사건으로부터 회피하고 절규하는 장면까지, 김수현은 수십 가지의 감정들을 그 짧은 순간에 제대로 캐치하여 보여준다. 그의 버라이어티 한 감정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지만, 계속해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물론 현수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답답한 모습도 있지만, <어느날>에서 이 캐릭터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인간의 치욕적이고 절망스러운 감정을 김수현으로 하여금 완벽히 묘사하게 만든다. 결국 바닥까지 내려가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는 김수현의 기대치를 넘어 최대치의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심지어 변화를 꾀하는 후반부까지도 다양한 모습을 통해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역시 김수현이었다.
<어느날>은 눈에 띄는 단점을 크게 찾아볼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원작의 힘이 컸던 이유도 있었지만 연출과 연기, 미장센과 디테일, 그리고 오락적인 재미와 사법제도에 대한 문제적 메시지까지 모든 분야에서 최정상급 퀄리티를 보여준다. 물론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이는 감옥 안의 설정과 후반부 현수의 변화가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오락적 재미를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날>은 분명 2021년 최고의 작품을 논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작품이며, 김수현과 차승원의 연기는 이러한 작품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어마 무시했던 2021년의 대한민국 드라마에 마지막 피날레로서 위엄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물론 2021년의 마지막 피날레는 다른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