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경이 > 리뷰
놀라운 완성도와 다양한 소재로 한국 드라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2021년. 완성도와 디테일에서 놀라움을 선사했던 <괴물>과 <D.P.>, 드라마가 써 내려갈 수 있는 최대의 깊이 까지 내려간 <인간실격>, 세계적 흥행과 한국 콘텐츠의 위엄을 보여준 <오징어게임>과 <지옥>까지. 이토록 화려한 2021년 대한민국 드라마 커리어에 또 한 줄 들어갈 엄청난 작품이 탄생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본적 없는 캐릭터와 파격적인 연출로 또 하나의 정점을 찍은 괴작, 바로 <구경이>다.
분명 대한민국의 수많은 드라마들 중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구경이>는 그 수준을 달리한다. '세상에 없던 탐정'이라는 <구경이>의 서브 타이틀은 그저 허세가 아님을 작품을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다. 게임 폐인되어버린 40대 은퇴 경찰 구경이와 해맑은 사이코패스 살인마 K의 대결이라는 스토리로 이 드라마의 남다름을 설명할 수 없다. 클리셰를 깨부스는 파격적인 캐릭터들, 이상하다 못해 병맛 가득한 스토리 전개와 비주얼은 그 어떤 작품들도 흉내 못 낼 어떠한 경지처럼 느껴진다. 인물의 개성, 관계의 변화, 사건의 확장성과 사회 풍자, 그리고 동성애까지 드라마에서 다루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다뤄진다. 이러한 키치적이고 파격적인 <구경이>가 더 놀라운 건 그러한 이상함을 재미로 승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캐릭터들의 관계와 상호작용들을 보는 재미가 상상 이상이며, 이러한 독특함이 상식밖의 재미를 불러온다.
사실 <구경이>는 이상한 작품인 만큼 빈틈이 많은 작품이다. 내용의 전개도 부자연스럽고, 개연성도 부족한 작품이다. 이러한 빈틈을 완벽하게 메꾼 것이 바로 이정흠 pd의 연출이다. 2020년 <아무도 모른다> 방영 당시 너무나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연출에 극찬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나의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는 <구경이>에서 다시 한번 증명해 낸다.
이정흠 pd의 연출은 다분히 멋을 부리거나 그저 파격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굉장히 계획적이고 디테일 있게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 워킹을 보여준다. 인물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교차 편집과 개성 넘치는 화면전환, 미장센을 염두한 다양한 구도와 비주얼, 거기에 완벽에 가까운 CG와 그래픽 연출까지 그 디테일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물론 다양한 게임 화면이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파격적인 연출도 칭찬할 부분이지만, 너무 과하고 집요한 느낌마저 들어 '이렇게까지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전작 <아무도 모른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다양한 시도 역시 볼거리이다. 회차를 보여주는 인트로 텍스트의 변화나 자동차 브랜드로 캐릭터의 성격을 들어내는 부분들도 여전하다. 맛깔나게 사용하는 음악이나 ost의 활용, 마치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인물들의 정면샷 또한 여러모로 이정흠 pd만의 개성으로 읽힌다.
올해 여러 작품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들이 <구경이>에 모여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보여준다. 사실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생뚱맞은 조합인데, 이 골 때리는 캐릭터들을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이 작품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살려준다. <친절한 금자 씨>보다 핀트가 두 개는 나가 보이는 구경이 역할을 한 이영애부터 김해숙, 곽선영, 백성철, 조현철, 이홍내등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K역의 김혜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혜준 하면 여전히 <킹덤> 시즌1에서 보여주었던 그 어색한 연기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작품에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가장 의외의 배우였고, 그만큼 걱정이 앞섰던 배우였다. 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웃음과 천진난만함으로 무장한 얼굴과 바로 한 꺼풀 뒤에 있는 악마의 모습을 너무나 소름 끼치도록 연기해 낸다. 극과 극의 성격 변화와 종잡을 수 없는 사이코패스 역할을 김혜준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로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이 작품의 남다른 방점을 찍어준다. K라는 인물이 이토록 설득력 있고 매력 넘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김혜준의 연기력이 한 몫했다. 2021년 수많은 여배우들 사이에서 단연코 눈부셨던 '돌아이' 연기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구경이>는 이상한 작품인 만큼 빈틈이 많은 작품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전개와 부족한 개연성을 연출과 캐릭터로 커버하였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것을 가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가 들쑥날쑥하고 상당히 산만하게 느껴지는데, 이정흠 PD의 파격적인 연출도 이 부분에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반전이 될만한 상황들도 이러한 산만함과 연출 때문에 오히려 극적인 재미를 놓치는 부분도 발생한다.
개연성의 문제는 이 작품의 성격상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몇몇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8회에서 흑화 된 K가 너무 쉽게 태도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캐릭터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또 하나 <구경이>는 방영 초반부터 외화 <킬링이브>와 설정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는 이 작품을 보지 않아 뭐라고 언급하기는 쉽지가 않다. 제작진 스스로도 한국판 '킬링이브'라는 식으로 홍보했지만, 어느 정도 설정이 비슷했던 부분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OTT드라마들의 놀라운 완성도 사이에서 보여준 <구경이>의 남다름은 몇 번을 칭찬해도 모자를 정도이다. OTT드라마들에게 보란 듯이 선사한 이 작품의 연출적 의지와 디테일의 경지, 그리고 상식을 파괴하는 캐릭터성과 이야기전개는 <구경이>가 왜 2021년 걸작들 사이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이런 작품이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평가절하되는 것도, 그저 시즌1에 머무는 것도 대한민국 드라마에 엄청난 손해이자 판단 미스이다. <구경이>는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될 명작이자 괴작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