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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드라마의 신기원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리뷰

by 투스타우

OTT와 케이블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에 힘을 잃던 공중파 드라마였지만, 그래도 매 년 놀라운 작품들이 한 두 편씩 나오곤 했다. 작년에는 SBS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그랬고, 2021년에는 MBC의 <옷소매 붉은 끝동>이 그랬다. 그리고 2020년에는 두 편의 공중파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데, <스토브 리그>와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스릴러 드라마로서 탄탄한 스토리에 배우들의 명연기까지 더해저서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오직 연출적인 부분만 놓고 평가한다면, 2020년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해도 좋을 만큼 뛰어났었다. 획기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한 연출을 보여주면서, 공중파 드라마로서 새로운 신기원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작과 끝이 같은 미로!!

<아무도 모른다>는 시작과 끝이 같았던 미로가 하나둘씩 풀리면서 목적지로 향해 나가는, 어찌 보면 일방통행 같은 드라마이다. 단지 그 미로의 시작과 끝이 왜 같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 채 하나둘씩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이 드라마는 '누가'보다는 '왜'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소중한 인연들이 얽히면서 아무도 몰랐던 미로 찾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의 놀라운 점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짜임새 있게 섞어놔서, 일방통행 같은 드라마를 마치 커다란 미로처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20200421105722.png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복잡한 미로처럼 보이지만~
20200421105743.png 사실은 미로의 시작과 끝이 같은 일방통행 같은 드라마이다.
20200421093707.png 단지 여러 인연들이 얽히면서 복잡한 미로처럼 보일뿐이다. 중요한 건 '누가'가 아니고 '왜'에 집중한다!!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

스릴러로서의 탄탄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좋은 어른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서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황인범 계장에게 좋은 영향을 받은 차영진은 또다시 그 좋은 영향으로 은호라는 너무나 훌륭한 아이를 키워 낸다. 은호의 서사가 바로 차영진의 서사임이 드러나는 구조에서 그 둘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얼마나 좋은 유대감으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이 드라마는 끊임없이 되새기고 이야기한다.

20200421110544.png 좋은 어른의 영향력과 유대감이 어떠한 결과를 보여주는지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나쁜 어른은 그 영향력으로 무수히 많은 나쁜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 마치 선과 악의 구도 같지만 그 구별이 쉽지 않은 아이들은 둘 사이에서 흔들리고 고민한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선과 악의 명확한 구도를 그려내면서, 마치 자신의 영역에 순수한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땅따먹기 같은 싸움을 보여준다. 그러한 싸움 안에서 좋은 어른이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는지를 여러 사연을 통해 증명해 낸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이선우 선생이나 은호 엄마는 무관심에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며 성장해 간다.

20200421110609.png 반대로 나쁜 어른은 그 영향력으로 무수히 많은 나쁜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



나도수정초 :

기생, 공생 그리고 부생

이 드라마는 시작에서 ‘나도수정초’라는 식물을 보여주면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학교 수업과 차영진 할아버지를 통해 정확히 기생과 공생, 그리고 부생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 '나도수정초'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즉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이 주는 영향력을 양분 삼아 자라는 아이들을 이 생물에 투영시키는 놀라운 주제의식을 또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기생의 삶의 대표적인 백상호와 공생의 삶을 살아가는 차영진의 대결. 그리고 그러한 영향력 안에서 마침내 꽃을 피운 부생의 상징인 고은호를 통해 다시 한번 좋은 어른, 그리고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20200421121628.png 이 드라마의 상징인 '나도수정초'
20200421121703.png 기생의 삶이 아닌 부생의 삶을 살라는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공중파에서 보기 힘든 퀄리티!!

이 드라마의 완성도는 가히 압도적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1~2화에 모든 퀄리티를 집중시키듯, 이 드라마 역시 극 초반 극강의 연출력과 퀄리티를 보여준다. 화면구성과 카메라 워킹, 뛰어난 색감에 놀라운 연기, 그리고 감각적인 편집에 배경 음악의 활용까지. 가히 모든 부분에서 극강의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과연 이러한 퀄리티를 후반부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최근까지도 공중파 드라마들은 쪽 대본과 시간에 쫓기면서 후반부 많은 부분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는 90%에 가까운 사전제작으로 마지막까지 이러한 완성도를 고찰해 낸다.

IMG_2543.PNG 높은 완성도의 퀄리티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는다.



획기적인 연출!!

연출적인 부분을 더 디테일하게 파해쳐보자. 배우의 감정을 임팩트 있게 드러내는 장면이나 과거의 회상신 장면에서 화면의 비율을 일반 디지털 화면 비율인 16:9에서 영화 화면 비율인 2.39:1로 자유롭게 변주해 나간다. 이러한 화면 비율의 변화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배우의 감정 표현이나 화면 전환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화면 비율뿐만 아니라 컬러에 있어서도 흑백 화면이나 저채도 화면까지 활용하면서 색감까지도 연출의 방향에 맞게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20200424160959.png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16:9의 일반 비율로 촬영하면서~
20200424161116.png 임팩트 있는 장면에서는 2.39:1인 영화 화면으로 전환시키거나, 흑백화면으로 자연스럽게 변주를 준다.

또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엔딩처럼 얼굴의 정면샷을 활용하는 각 화의 엔딩 신들은 굉장한 임팩트로 다가온다. '아무도 모른다'라는 타이틀과 연상시켜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듯한 엔딩 신들은 이 드라마의 백미 중 하나였다.

20200422064626.png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는 이 드라마의 정면 얼굴 샷을 활용한 엔딩신은 시청자들에게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진다.



파격적인 예고편!!!

심지어 <아무도 모른다>는 대한민국 드라마 최초로 소리와 자막만으로 예고편을 선사하는데, 화면에서 연상되는 추리를 막고자 텍스트와 목소리만으로 예고편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연출의 분위기가 굉장히 기괴하면서도 파격적인 느낌이었다.

20230131090618.png 대한민국 최초 자막과 음성만을 이용한 예고편!!

무엇보다 예고편을 그저 예고의 기능만으로 보지 않고 한 회의 연장선에서 그 기능을 다하도록 하였다. 12화의 끝인 13화의 예고편에서는 마치 리와인드 감듯이 현재부터 과거로 되돌리고, 13화에서는 1화 이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연결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15화의 예고편은 사이렌 소리의 연장 속에서 최후의 장소가 될 공간을 보여주면서, 대단원의 끝이 시작되었음을 고요히 그리고 묵직하게 전달한다.

20230131090813.png 사이렌 소리와 함께 보여줬던 최종화의 예고편은 결전의 장소만을 덤덤히 보여주면서...
20230131090826.png 마지막 장이 시작되었음을 고요히 알린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놀라운 디테일

뿐만 아니라 좀 더 관심 있게 보면 세밀한 곳에서 엄청난 디테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인트로에서 회차를 보여주는 텍스트에 변주를 주는 재미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호가 완강기 타고 내려가는 소리에 맞춰서 올라가는 10화의 텍스트 처리나, 13화의 과거 회상신 인트로에서 13화의 텍스트에 숫자 3을 먼저 없애 실질적으로 1화나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오프닝 신을 보여준다.

20230131090943.png 은호의 완강기 소리에 같이 올라가는 '10회'의 타이틀.

또한 이 드라마는 공중파 드라마임에도 자동차 협찬을 받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동차의 브랜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캐릭터들의 자동차 브랜드가 단 하나도 겹치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동차 브랜드로 인물의 캐릭터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벤츠로 과시적인 껍데기에 치중하는 백상호부터 차영진은 쌍용 코란도, 이성우 선생은 아우디A5, 민성이의 등교 차는 BMW5시리즈, 황인범 형사는 구형 쏘렌토까지 그 모든 자동차들이 단 하나도 브랜드가 겹치지 않으면서 그 캐릭터성을 그대로 대변시킨다. 아마 이런 디테일도 공중파 드라마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20230131091106.png 공중파 드라마임에도 노골적으로 자동차 브랜드를 드러낸다.
20230131091126.png 재밌는 건 각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에 따라 자동차 브랜드들이~
20200422064712.png 전부 다 다르다!!




극강의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들!!

주인공인 차영진 형사 역의 김서형은 이미 물오를 때로 오른 극강의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미 드라마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놀라운 연기력으로 이 무겁고도 차가운 분위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짊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착한 어른이라는 따스한 감정을 품어내면서, 자신 주위의 온도를 따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전 작품이었던 <스카이캐슬>의 그 강렬했던 이미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너무나 감탄했다. 증오와 분노로 무장했지만 그 눈빛은 언제나 따스하다.

20200421144209.png 너무나 감탄스러운 김서형의 연기.

백상호 역의 박훈은 마침내 자신의 커리어 중에 가장 놀랍고도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왓쳐>부터 확실히 악역 캐릭터로서 매력을 뽑아내더니, 이번 작품에서 절대적인 악의 연기를 완벽히 그리고 놀랍게 보여준다. 허세와 위선이 가득한 모습부터, 내재하고 있는 아픔을 초월한 듯한 사이코패스 적인 모습까지. 착한 어른을 대변하는 차영진의 대척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쁜 어른을 완벽히 연기해 낸다.

20200421144517.png 박훈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놀랍고도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고은호 역할을 한 안지호 군도 꼭 언급해야 할 배우이다. 무뚝뚝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는 기쁨과 환희, 공포와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들을 신비롭게 표현해 낸다. 연기자로서 굉장히 기본적인 표현이겠지만, 안지호 군의 발성과 연기톤으로 볼 때 놀랍도록 인상적인 연기였다. 무엇보다 착한 어른의 유대감에서 탄생한 가장 이상적인 아이, 혹은 선한 사람의 꼭짓점에 있는 고은호라는 캐릭터를 우아하면서도 따스한 눈빛으로 감싸 안고 연기해 낸다. 김서형이 연기하면서 가장 놀랐다고 하는데, 미래가 너무나 기대되는 배우이다.

20200424160745.png 선한 사람의 꼭짓점에 있는 고은호란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낸 안지호 군.




그렇지만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단점을 뽑자면 스릴러로서의 극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은 반전들은 있었지만 선과 악이 명확한 대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스릴러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모든 장면에서 굉장히 디테일 있고 세심하게 표현했지만, 전반적으로 루즈하게 진행된 부분도 스릴러라는 장르적으로 볼 때 아쉬운 부분이었다.

20200421152625.png 감성 미스터리까지는 좋았으나 후반부 극적으로 불을 댕길만한 요소가 적어서...
20200421152643.png 연출과 음악으로 밋밋한 전개를 메꾸는 듯한 인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극 중 차영진의 분노와 복수에 더 큰 타당성을 줄만한 임팩트적인 사건이 후반부 없었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감성 미스터리까지는 좋았지만 극적으로 한 번 더 불을 댕길만한 요소가 없어서, 다소 밋밋한 전개를 오직 연출과 음악으로 메꾸는듯한 인상도 있었다.




20200421094048.png 아무도 모른다 (2020. SBS)

<아무도 모른다>는 <인간 수업>과 함께 2020년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음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공중파 드라마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일이며, 개인적으로 이정흠 PD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켜 놓았다. 2020년 <킹덤>과 <인간 수업>이 대한민국 드라마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면, <아무도 모른다>는 공중파 드라마에 있어서 새로운 신기원을 이뤄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정흠 PD는 다음 해, 전무후무한 괴작 <구경이>를 탄생시킨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저의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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