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리뷰
2020년 작품 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작품으로 박은빈은 혼자만의 힘으로 작품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고, 조영민PD의 놀라운 연출력은 훗날 <사랑의 이해>라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류보리 작가는 본인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며 2023년 <트롤리>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보여준 가슴 시린 청춘 멜로는 그 해 어떤 작품보다도 눈부신 보석 같았다.
그 당시 신인 작가였던 류보리 작가는 서울대 바이올린 전공에 뉴욕 공연예술학 석사 출신, 뉴욕 필하모닉 마케팅부와 소닉 뮤직 마케팅부에서 클래식을 담당한 평생을 음악에 올인한 사람이다. 이런 작가의 이력 때문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디테일은 기존 음악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수준과 전혀 다른 퀄리티를 보여준다. 음대생들의 이면에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초, 상류층의 그늘 속에서 오직 1등 만을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음악인들의 세계, 그리고 클래식 음악 마케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인들의 세계를 굉장히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대부분 직접 연주하는 리얼리티까지 보여주면서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디테일까지 상당히 신경 쓴 모습을 보인다. 배우들은 이 작품을 위해 6개월 동안 악기 연습에 매진했으며, 류보리 작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 작품의 디테일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소극적인 성격의 두 주인공들의 애절함과 살아 숨 쉬는 감정선이 중반부까지 눈을 못 떼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한다.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촘촘히 쌓아가고 만들어가는 류보리 작가의 실력도 좋았지만, 이를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살려낸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PD의 연출력도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과 어울리는 클래식하고 느린 사랑 이야기가 여타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잔잔한 떨림으로 다가오면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멜로드라마를 선사한다.
앞서 말했듯 이 놀라운 청춘 멜로의 7할은 두 배우의 연기력에 있다. 특히 박은빈의 연기는 몇 번을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로 훌륭했다. 사실 너무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갖은 박은빈이지만, 그녀의 제대로 된 커리어는 의외로 상반된 이미지였던 <청춘시대>의 송지원에서부터 시작했다. <스토브리그>에서도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한 박은빈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녀의 외모적인 인상과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탄탄한 기본기와 함께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이뤄낸다. 특히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 연기와 떨림 가득한 감성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환상적인 바이올린 실력으로 완벽한 음대생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채송아라는 캐릭터에 놀라운 몰입도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6회의 고백신은 내가 본 드라마 고백신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인상 깊었는데, 마치 정말로 좋아하는 듯한 감정이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장면은 정말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다.
김민재는 늘 쫓아다니는 여진구의 보급형이라는 꼬리표에서 완전히 탈피하면서, 목소리나 연기력 어느 하나 여진구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민재는 김민재일뿐,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연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한다. 박은빈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부터 사랑과 우정, 그리고 아픈 가족사로 괴로워하는 모습까지. 감정 기복이 심한 박준영이란 캐릭터를 너무나 훌륭히 연기해 낸다. 무엇보다도 그의 강점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력적인 목소리인데, 그의 고백신에서 이러한 강점들이 잘 드러난다. 6회의 고백신이 박은빈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라면, 8회의 고백신과 키스신은 김민재의 최고의 하이라이트 신이었다.
클래식한 감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 당시 신인이었던 조영민PD는 연출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감정의 작은 일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 디테일하면서도 계산된 연출부터 유난히 화사한 조명과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비주얼 이미지까지. 오버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깔끔한 연출에 가끔씩은 개성 넘치는 대담한 편집도 보여준다. PD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작품의 완성도에 좋은 버팀목이 되어 준다. 음악 드라마라서 그런지 유난히 잘 어울리는 드라마 OST의 활용도 상당히 돋보인다.
이렇게 좋은 장점들로 가득한 멋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주면서 그 많은 장점들을 안타깝게도 조금씩 잃어나간다.....
두 주인공의 연애가 시작되고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는 중후반부부터 이 작품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음대생의 고초와 클래식 음악계의 비리 등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그러한 현실에 부디 끼는 두 주인공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아무런 진전 없이 장시간 반복된다. 너무 리얼한 현실 반영이 음대생의 다큐멘터리로 착각이 들 정도로 무겁게 다가오면서, 한순간도 두 주인공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리얼한 현실 반영이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나 계속되는 어두운 현실 반영과 반복되는 두 주인공의 상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이별의 과정에서 필요한 전개라고는 해도 너무나 지겹도록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지루하고 반복적이었던 후반부에 비해 마지막 2화의 이야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다룬듯한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느리게 쌓아갔던 감정들과 이야기 흐름이 갑자기 남은 2화분에 급진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음악의 힘이나 유대감 등 뭔가 순수한 음악으로 그려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마지막에 가서 다뤄지는 것도 너무나 아쉬웠다. 또한 오랜 시간 꿈꿔왔던 바이올린과 이별하는 과정도 좀 더 디테일하게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둘러 많은 것을 보여주었던 엔딩 부분이 중후반부의 지지부진함과 비교하여 너무나 좋았기에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확실히 요새 드라마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느린 감정과 자극적이지 않은 스토리, 리얼한 음악계의 반영과 애절하고 클래식한 멜로 이야기까지. 이 작품이 2020년 드라마들 중에서 보석같이 빛났던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후반부의 문제점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가슴 적시는 멜로드라마 한 편 감상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나 만족했다. 언제 또 이런 순수한 보석 같은 드라마를 맞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두 배우의 감정 연기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은데, 이토록 두 주연 배우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드라마도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4화에서 토크 콘서트 가기 전에 서로 만나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저의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