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리뷰
<사랑의 불시착>은 2020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작품이다. 현빈과 손예진이라는 특급 스타의 만남, 그리고 기상천외한 드라마 콘셉트, 무엇보다도 스타 작가인 박지은 작가의 컴백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휘몰아쳤던 이 드라마의 유쾌함은 작품성을 떠나서 2020년에 방영한 드라마 중에 가장 유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부분은 역시 오락적 재미이다. 사실 <사랑의 불시착>은 이전 박지은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어수선한 전개와 떨어지는 완성도 등 여러 문제들이 보였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북한으로 넘어간 재벌녀'라는 남다른 콘셉트 하나로 유쾌한 재미를 선보인다. 기존 한국 드라마들의 보편성을 비꼬는 듯한 박지은 작가 특유의 개그 코드와 남과 북이라는 경제적, 문화적 습관 차이가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이 드라마를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박지은이 누구인가? 여전히 김은숙, 김은희 작가와 함께 3대 트로이카로 불리는 스타 작가가 아니던가! 물론 박지은 작가도 몇 번의 미비한(?) 표절 시비가 있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가 풀어내는 남다른 역발상과 아이디어, 그녀만의 작가적 센스들을 좋아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기상천외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소소한 작가적 센스에서 '역시 박지은'이라는 말을 수없이 대뇌이게 되었다.
첫 회까지만 보면 윤세리에게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보이면서, 손예진이란 배우가 가진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뭔가 잘못된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 온 손예진이지만, 개인적으로 <연애시대>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처럼 생활밀착형 연기를 선보일 때 그 매력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손예진은 베테랑 다운 연기력을 선보이며, 회가 진행될수록 윤세리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손예진 특유의 애절한 멜로 연기를 쏟아내면서, 이 드라마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현존하는 30대 남자 배우들 중에서 비주얼적으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액션신을 소화하는 자세에서 가장 이상적인 포즈를 보여준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연기적인 측면에서도 이미 영화 <공조>에서 북한 요원을 경험해서 그런지 부족함이나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리정혁이란 캐릭터를 너무 완벽남으로 그린 나머지 연기적인 측면에서 크게 부각시킬 부분은 많지 않았다. 사실 이는 박지은 작가의 작품적 특징인데, 남자 주인공은 늘 여자 주인공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서포터적인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은 망작이었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전 작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한 수 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이렇게 완벽한 남자의 완벽한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제작진은 CG와 세트 미술 등을 총동원하여 북한의 모습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 제작했다는 북한의 배경들은, 실제 탈북한 사람들이 보아도 크게 어색한 부분이 없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디테일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극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평양 시가지와 열차신들은 상상 이상의 완성도였다. 이 작품이 단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서 CG나 미술 세트적인 부분에서도 리얼리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정확히 윤세리가 북한에 머물렀던 전반부와 리정혁이 남한에 머물렀던 후반부가 극명하게 갈린다. 재미를 떠나서 극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드라마는 남과 북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활용한 소소한 재미가 극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리정혁이 남한으로 넘어가기 전인 전반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80년대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우리가 열광했던 '응답하라'시리즈처럼 과거의 향수를 느끼면서 비교 체험을 하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마치 정이 깊었던 80년대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북한 마을의 정다운 모습이었다. 이러한 디테일적인 모습과 배우들의 열연들이 소소한 재미로 엮이고, 리얼리티를 살리게 된다. 이는 판타지와 리얼리티 그 어디쯤에 있었던 이 작품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요소가 되었다.
윤세리가 탈북에 계속적으로 실패하면 할수록, 그리고 남과 북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질수록 리정혁과 윤세리의 사랑은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남북의 거리만큼 드라마는 재미를 더해가며, 문화적 사회적인 갭이 크면 클수록 그 소소한 재미를 더해가는 모습은 전반부에 극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리정혁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리얼리티와 판타지 그 어디쯤에 있던 드라마는 완전히 판타지로 넘어오게 된다. 물론 리정혁과 중대원들의 남하가 그리 쉽지 않았음을 드라마는 설명하지만, 전반부의 노력과 리얼리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남북의 거리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수록, 리정혁과 윤세리의 애절한 사랑도 그 힘을 잃고 만다.
물론 극 막판에 국정원이 개입되면서 다시 남과 북이라는 현실적 벽이 그려지고.... 다시 멀어지는 남북의 거리만큼 두 사람의 애절한 감정도 뒤늦게 부활한다. 거기에다 조금은 오버스러운 생과 사의 전개까지 집어넣으면서 둘의 애틋함은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엔딩으로 전환하면서 굉장히 안정적인 마무리를 선택한다. 애초에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기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무난한 엔딩이 오히려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남과 북의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그저 남녀 주인공의 배경적인 활용에만 머문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전반부의 매력적으로 다뤄줬던 북한 마을의 공동체 모습들이 후반부에는 작품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특히 사택 마을 주부들의 이야기와 서단과 구승준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와 겉돌면서 융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히 필요한 이야기지만, 애초에 전혀 다른 지역(북한)의 이야기가 되다 보니 그 이질감은 제법 크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남과 북의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다 보니, 너무나 매력적이 있던 사택 마을의 캐릭터들이 의미 없이 소비되는 느낌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남과 북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고 만다. 그나마 계속되는 5중대 대원들이 활약이 마지막까지도 이 드라마를 빛나게 한다. 물론 이러한 단점들도 결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의 클래스 덕분에 자연스럽게 봉합되고, 치유되기는 한다.
리얼리티가 힘을 잃고, 후반부 전개가 조금 어수선하면 어떠한가. 이 드라마는 유쾌한 재미와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로 그러한 단점들을 간단하게 극복해 버린다. 드라마를 볼 때 가장 우선적인 목적, '과연 이 드라마는 재밌는가?'에 대한 일차적 질문에 완벽히 부합하면서 몇 번이고 물개박수를 치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 오락적 쾌감만으로도 이 작품은 2020년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평가받는 것이다.
어쨌든 <사랑의 불시착>은 박지은 작가의 작가적 센스와 아이디어를 보여주면서, 여전한 그녀의 클래스를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손예진의 매력과 자신의 강점을 활용할 줄 아는 현빈의 매력도 맘것 감상할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이 둘의 사랑이 현실에서 결실을 맺으면서 더욱더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 20년대를 기억할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 <사랑의 불시착>이 언제나 언급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도깨비>를 제치고 tvn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기록과 셀 수 없이 박수 친 나의 손바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저의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