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리뷰
마침내 돌아온 김수현의 컴백작.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거는 기대치는 상당했다. 거기에다 최근 연타석 홈런을 때린 오정세와 <질투의 화신>의 박신우 PD까지. 이 작품은 2019년 여름 흥행작 <호텔델루나>를 떠올리면서, 그 해 여름 최고의 흥행작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긴 장마로 인해 기온이 오르지 못했던 2020년 여름처럼, 이 작품의 시청률도 예상과 다르게 오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시청률로 평가절하할 작품은 아니었음을 이 작품과 배우들은 증명해 낸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어둡고 난해한 내용일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나간다. 완전한 치유보다는 환자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나아가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비정상적인 세 주인공들의 도움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역으로 주인공들의 성장에 발판이 되어간다. 다소 뻔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면서, 임팩트가 약해 보였던 메인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든데 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동화책 작가라는 특정 직업군을 활용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동화책으로 전달하는 과정들이 인상적이다. 마치 각각의 캐릭터들이 놓인 상황과 감정들을 대변하듯 시기적절하게 동화책 내용으로 대변하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환자들의 성장과 세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도 마지막 동화책에 집대성하면서 다시 한번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웰메이드 드라마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복합장르의 요소를 이 작품도 충실히 따라간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역시 호러와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복합적으로 다루는데, 그 조화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호러와 스릴러를 담당하고 있는 고문영의 과거와 로맨틱 코미디를 담당하고 있는 그녀의 미래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극의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해 나간다. 특히 후반부는 추리극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주면서 극 막판까지도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연출에 상당한 공을 들여서 드라마 마니아로서 굉장히 즐거웠다. 각각의 신들을 연결하는 디테일이나 종종 보여주는 롱테이크신, 완성도 높은 CG와 그림책 동화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구성까지, 연출에 있어서 제작진의 열정과 도전이 느껴졌다.
<동백꽃 필 무렵>부터 <스토브리그>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린 오정세는 또 한 번 기존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왜 그가 대세 배우인지를 입증해 낸다. 자폐증을 앓는 문상태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데, 그 연기가 테크닉적으로 느껴지기보단 뭔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연기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문상태가 보여주는 애드립이나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적 언행들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는 치유를 받는 대상이 아닌 치유를 해주는 캐릭터로서의 변화를 완벽히 그려낸다. 그간 보여왔던 테크닉적인 자폐증 연기와는 조금은 다른 결의 연기였다. 오정세는 이 작품으로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2년 연속 백상예술대상 조연상을 수상한다.
현재는 여러 논란이 있는 배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서예지는 정말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고문영이란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대단했지만, 이런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 서예지의 연기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단점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목소리와 비주얼이 고문영이란 캐릭터와 착 달라붙으면서 매력적인 여주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단순히 오버스러움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적 갈등과 아픔들도 놀랍게 연기해 낸다. 무엇보다 김수현보다 얼굴이 작은 여배우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쨌든 비주얼적으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수현 역시 부족함 없이 문강태를 연기해 낸다. 하지만 캐릭터성이 강한 오정세와 서예지 사이에서 다소 빈약해 보이는 문강태를 연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수현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중반부를 넘어서면 이해할 수 있다. 장애인 가족의 아픔, 비현실적인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 그 안에서 자라나는 또 다른 자아의 욕망 등 겉으론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내적 갈등을 조금씩 표출해 내는 문강태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해 냈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가는 변화를 디테일하게 그려낸 그의 연기에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 작품은 매력 넘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이 시청률을 크게 반등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문강태와 고문영의 과거사와 관련된 비밀이었는데, 극 중반까지도 이러한 설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전을 노린 의도한 부분이겠지만, 오히려 극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 예상이 불가능하면서 지루한 초반부를 보여주고 만다. 즉 시작부터 멜로에 직진하는 고문영과 형 때문에 힘겨워하는 문강태 사이에서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병 환자들의 성장과 주연 캐릭터들의 치유만을 다루는 드라마인가?'라는 생각이 중반까지 떠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독특했고 신선했지만 몰입도가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몇몇 캐릭터들은 과도한 맥거핀으로 의미 없이 소비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확한 이야기의 맥락은 잡지 않고 그저 맥거핀으로 추리극에 혼란만 가중하는 모습을 보여 다소 불편하기까지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맥거핀의 이유를 그저 독자의 상상에만 맡기는 불친절한 해설이 추리극이란 장르로 볼 때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비현실적인 고문영과 정신병 환자들 때문에 모든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그리 큰 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주변 캐릭터들이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인 디테일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주인공들에 동화되어 겉도는 듯한 모습만 보여준다. 누구 하나 주변 인물에 힘겨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그저 문강태와 고문영만이 괴로워하고 아파한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적으니 두 주인공의 멜로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마치 고라니 같은 사랑 고백처럼 두 사람의 감정이 표면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저 의로운 두 형제의 뜨거운 우애만이 울림을 줄 뿐이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분명 2020년 여름,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이었다. 고문영이라는 놀라운 캐릭터 하나만으로, 오정세의 믿을 수 없는 자폐아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연출에 대한 욕심과 김수현의 여력이 남아있는 연기력도 역시 칭찬할 부분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과 자아 찾기라는 메시지 전달,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와 깔끔한 마무리까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공감대 형성의 부족과 초중반 그려지지 않았던 하이라이트가 이 작품의 발목을 잡은듯하다. 뭐 시청률이 조금 낮으면 어떠한가? 본 적도 없는 어마 무시한 비주얼의 한 쌍과 오정세의 명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것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