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해 우리는> 리뷰
<그 해 우리는>은 사실 예상보다 조금 밋밋한 작품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 특별한 것이 없는 인물들을 가지고 보편적인 청춘 멜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느긋이 이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최우식과 김다미가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보편적인 일상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이 작품은 그 어떤 청춘 멜로드라마보다 눈부시게 빛난다.
<그 해 우리는>은 10년 전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두 남녀가 10년 후 다시 만나 촬영한다는 시놉시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10년이라는 인연과 다큐멘터리를 활용한 다양한 시선이 이 작품의 특이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들을 강점으로 보기에는 다소 약한 부분이 있다. 최우식과 김다미가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단순히 10년을 커버할 수 있는 동안 얼굴 때문은 아닐 텐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야기는 느리고 밋밋하며, 드라마틱한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너무나 보편적인 일상을 그리는 착한 청춘 드라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시청하다 보면 그것이 과소평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감정을 숨기는 각 캐릭터들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 작품은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한다. 보편적 일상이고 그저 그런 청춘물인데, 각 캐릭터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순간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이는 마치 진심을 숨기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가 한순간 토해냈던 멜로드라마의 걸작 <연애시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들을 빛내는 건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연기한 최우식과 김다미, 그리고 김성철의 몫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감탄스러웠던 건 신인 작가가 써 내려가는 연애에 관한 디테일과 대사들이다. 분명 이나은이라는 신인 작가는 뼈가 사무칠 정도의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는 것이 대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진심인 극본에 배우들의 놀라운 역량을 만나 눈부신 빛을 내뿜는다.
앞서 이야기한 이 작품의 남다른 특이점이다. 서로 다른 시선을 향하고 있는 짝사랑의 모습들을 다큐멘터리라는 카메라 시점을 활용해서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각 캐릭터의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고, 인물들 간의 관계와 진심들을 하나둘씩 풀어나간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관찰자라는 하나의 시점이 되어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고 진심을 알아가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방송국 PD와 스태프들의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이 어떠한 시선으로 각 배우들을 지켜봐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묘미마저 던져 준다.
그저 흔한 청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만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제작진의 연출도 돋보인다. 계절감과 화면 비율을 달리하여 10년 전과 현재를 나눠서 보여준 부분부터, 영화 제목을 활용한 각 회의 명확한 메시지 전달은 이 작품의 연출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통하여 각 인물들의 사연들을 세심하게 그려내면서, 연애와 실연이라는 상대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배치하는 센스도 보여준다. 신 하나하나마다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 멜로물답지 않은 돋보이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또 하나 눈부셨던 부분은 음악과 OST의 활용이다. 시청률 4%대의 드라마 OST가 음원차트에서 여러 곡 랭크된 경우는 근래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었다. 그만큼 모든 곡들의 완성도가 너무나 좋았으며, 작품의 분위기와 감정들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곡들을 완벽하게 컨트롤한 남혜승 음악 감독의 놀라운 역량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해 우리는>은 다큐멘터리를 활용한 청춘 드라마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드라마 기조가 굉장히 현실감 있고 리얼리티 하다. 분명 조금씩 극적인 상황들이 펼쳐질 것 같은 설정과 배경을 만들지만, 기대와 다르게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상황이 전혀 연출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을 최대한 배제한 이 작품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사실 가장 의외의 부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드라마이기에, 마치 극적인 장치를 비껴가기로 작심한 듯한 이러한 흐름이 조금은 이상하고 밋밋한 느낌을 주고 만다. 이것은 클리셰를 비껴가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다. 간단하게 말해 몇몇 진심을 드러내는 놀라운 장면들을 제외하면, 사실 상당히 루즈한 전개의 드라마였다. 이 작품의 시청률이 오를 듯 오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솔직히 말하면 12화에서 드라마를 끝마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스토리였다. 후반부는 그저 자아성찰의 과정을 담은 에필로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해 우리는>은 분명 일반 멜로드라마나 청춘 드라마와는 조금은 다른 결을 선사한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빌려 리얼리티에 더 가깝게 다가서고, 마치 우리 일상의 모습을 보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숨겨왔던 연애의 감정, 짝사랑의 마음을 이 작품의 인터뷰와 각각의 시점을 통해서 들춰내고, 각 캐릭터의 진심을 통해 이해와 공감을 넘어 마음 깊숙한 무언가를 건드린다. 폭발할 듯 폭발하지 않은 이야기의 전개가 못내 아쉽지만, 분명 2022년의 멜로드라마를 이야기하는데 반드시 추천해야 할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