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년심판> 리뷰
<소년심판>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이다. 기대했던 소년범에 대한 심판의 쾌감이나 통쾌함은 예상보다 적다. 오히려 소년법의 빈틈과 민낯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관심이었던 이 작품을 통한 소년법 폐지도 오히려 무조건적인 처벌이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예고편을 봤을 때 <모범택시>처럼 소년범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그리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사적인 복수를 가장한 공적 심판 정도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기대나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 표면적으로는 소년범죄를 다루는 범정 드라마로 보이지만, 소년법의 빈틈과 민낯 그리고 소년 범죄의 실상들을 낱낱이 까발리고 들춰낸다. 무엇보다 소년범에 대한 처벌과 교화라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판사들을 통해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소년범죄는 대부분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 년 전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부터 답안지 유출 사건과 집단 성폭행 사건까지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소년범죄의 심각성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실제 사건에 스릴러적인 재미와 추리적인 요소를 넣거나,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는 법정 드라마의 재미까지 보여주면서 극을 흥미롭게 구성하는 재치도 보인다.
각각의 성향과 목적이 다른 4명의 판사와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뤄진 조연 배우들의 앙상블은 보는 재미를 확실히 한다. 특히 김혜수와 이성민, 이정은의 연기 대결은 소년들의 심판보다 훨씬 더 짜릿한 쾌감을 준다. 여전히 연극톤스러운 독특한 발성으로 조금은 부담스러운 연기를 고수하는 김혜수지만, 그러한 단점(?)들을 짓누르고도 남을 만큼 휘몰아치는 그녀의 아우라는 그 어떤 배우도 따라오지 못할 경지처럼 보인다. 특히 어떠한 말과 행동보다 눈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연기는 '역시 김혜수'란 생각을 갖게 한다.
뜨거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이성민과 이전 연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이정은의 연기도 너무나 좋았다. 배우로서 좋은 얼굴과 연기를 보여주는 김무열 역시 인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소년범을 연기하는 수많은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리얼리티 하고 훌륭했다.
소년범을 혐오한다던 심은석은 오히려 소년들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닌다. 결국 그녀는 혐오를 가장한 교화 심판을 하면서, 소년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 간다. 물론 예상대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복수를 가장한 공적 심판이 되지만 이 역시 드라마틱한 구성의 장치일 뿐, 마지막까지 처벌과 교화라는 어려운 문제에서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년범죄의 실상과 소년법 제도의 민낯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어떠한 선택이 맞는지 시청자들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소년법 폐지에 열광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 문제를 진중하게 파고든 신인작가의 역량과 작품의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년심판>은 기대했던 범죄 소년들에 대한 뜨거운 심판과 그에 대한 통쾌함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러한 오락적 재미가 미약한 것이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처럼 보이나, 이 작품의 작가와 제작진들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소년법의 빈틈과 민낯을 드러내고, 소년범죄의 실상과 교화의 중요성까지 역설했던, 많은 질문과 논쟁거리를 던졌던 전정성 있는 작품이었다. 드라마의 순기능으로서 어른과 소년들이 함께 보고 고민해야 하는, 사실은 공중파에서 방영했어야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