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리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죄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옴니버스 식으로 실제 사건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시그널>과 비슷하지만, 사건을 담담하게 그려나가는 부분에서는 마치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TV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디테일과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공중파 드라마도 해낼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언급해야 할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남다른 퀄리티와 디테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수많은 걸작들과 마찬가지로 극본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와 합에서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주는데, 그 레벨이 좀 더 다른 수준을 지향한다. 대한민국 공중파 드라마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에서 사실 드라마 마니아로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2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여러 환경들, 그리고 실제 사건을 고증해 낸 완벽함까지, 이 작품의 디테일은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이러한 디테일은 마치 잘 만들어 놓은 스릴러 영화 몇 편을 보는듯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스릴러 영화의 최고봉인 <살인의 추억>의 2000년대 판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다른 범죄 스릴러 작품들과 다르게 누가 범인인지 보다 왜 범인인지에 더 집중한다. 범인의 잔인한 범죄 묘사와 검거 순간의 장르적 쾌감은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검거 그 후를 파고들면서 범인의 심리와 변화 과정들에 집중한다. 뿐만 아니라 범인의 진술과 심리 묘사만으로 범죄의 끔찍함을 전달하면서, 기존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공포감을 선사한다. 또한 이러한 범인의 심리에 동조하면서 분노하는 송하영을 통해 시청자들도 동시에 분노하게 만들고,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거기에 프로파일러의 헌신과 고충까지 다루면서 남다른 감동까지 선사한다. 기존 스릴러 드라마와는 차별점을 두는 개성 넘치면서도 영리한 작품이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실존했던 연쇄살인마들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연쇄살인마와 범죄 수사에 대한 연대기를 그려나간다. 기존의 수사 방식으로는 잡을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연쇄살인마들, 이에 발맞추어 프로파일러라는 변화된 수사기법으로 바꾸어 나가는 경찰들의 모습까지. 이러한 변화의 과정들이 그 시대상과 맞물려 보여주면서 남다른 재미를 선사하게 된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 전 국민을 경악스럽게 했던 희대의 3대 살인마를 연속적으로 등장시키면서, 프로파일러의 필요성과 수사과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의 놀라운 디테일의 방점에는 범인들의 모습을 리얼리티 하게 연기한 배우들이 있다. 특히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들을 너무나 디테일하게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정남규(남기태)를 연기한 김중희 배우의 연기는 경악을 넘어, 이렇게까지 연기해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처음 김남길이 권일용 프로파일러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그의 조각 같은 외모가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그의 외모가 오히려 이 작품의 리얼리티에 마이너스가 될 것만 같았다. 물론 이러한 걱정은 그저 기우일 뿐임을 그는 몰입도 높은 연기로 완벽히 증명해 낸다. 상대방의 마음에 쉽게 동조하기에 오히려 감정을 억누르는 송하영을 마치 빙의된 듯 김남길은 놀랍게 연기해 낸다. 조금씩 악인의 마음에 동조하면서 위험 수위를 넘어 무너져내리는 후반부의 연기는 내가 아는 김남길의 최대치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살인자들과 면담하면서 그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이해, 그 중간쯤에서 방황하는 내면적 연기와 눈빛들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작년 더 높은 시청률의 배우들을 제치고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회에 쌩뚱맞게 나온 PPL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적 매력이 조금 결여된 것이 이 작품의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 작품은 범죄자의 구속보다는 그들의 내면과 수사관들의 변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조금은 다른 성격의 스릴러 작품이었다. 하지만 범인을 찾아내거나 잡아내는 수사물적인 특성들, 무엇보다 스릴러물 특유의 반전 같은 전개들이 전무했던 것은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가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이 작품의 담담한 기조 때문이며,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기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방영 당시 동계 올림픽으로 인한 결방으로 인해 극의 흐름이 끊긴 것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그렇더라도 이 작품의 놀라운 완성도는 마지막까지 감탄하게 만든다. 남다른 미장센과 디테일을 보여준 연출과 사건을 재구성하듯 담담하게 그려낸 극본, 거기에 완벽한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 저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기존의 스릴러 작품과는 다른 기조를 보였음에도, 이 작품만의 남다른 성격과 메시지를 묵직하게 끌고 간 이 작품의 진정성 또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공중파 드라마 작품 중 유일하게 OTT 드라마들과 견줄만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