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리뷰
90년대 세기말과 밀레니엄을 배경으로 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시절의 감성까지 온전히 담아낸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는 레트로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청춘'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 어떤 드라마도 쉽게 포장하지 못했던 '청춘'이라는 단어를 이 작품은 완벽히 정의 내리면서,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눈부신 청춘 드라마를 그려낸다. 마치 영원히 부서시지 않을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강점은 저 세 단어로 함축된다. 이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꼬집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 작품은 저 세 단어만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레트로 감성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답습하는 듯 보이지만, 좀 더 연출적인 측면에서 그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재연한다. 다섯 친구들의 청량미 가득한 청춘과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는 성장기는 청춘 드라마의 정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레트로 소재를 이용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그저 오락적 재미로만 소비되지 않고, 하나하나씩 유기적인 관계를 쌓아나가면서 캐릭터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 인물들의 우정과 방황을 시대의 변화와 스포츠라는 콘셉트로 흥미롭게 이야기하면서도, 작은 에피소드 하나마저도 어색하지 않고 유려하게 그려나가는 부분들이 정말로 일품이다. 이 작품이 오락적인 재미와 성장이라는 주제를 동시에 관통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클리셰 비틀기는 분명 신선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뻔한 상황들을 조금씩 비틀어 가면서, 어디선가 보아 왔던 이야기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펼쳐나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엔딩에 대한 작가의 희망고문이다. 이 작품은 곳곳에 새드 엔딩을 암시하면서도, 역으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청춘 드라마를 그려내면서 시청자들에게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결국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남다른 희망고문이 결과적으로 클리셰 파괴의 정점을 그리는 밑바탕이 되고 말았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지만, 30대이면서 고등학생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김태리의 연기력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빛나는 눈동자와 열정 가득한 몸짓들, 설렘 가득한 제스처와 목소리 하나하나까지, 이 작품의 인상을 결정짓는 가장 이상적인 연기였다. 이 작품이 이토록 눈부신 청춘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존재가 매우 컸으며, 이 작품의 완성도에 그녀의 지분이 절대적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선보인 배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어마무시한 배우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작품은 영원할 것 같은 아름다운 청춘을 그려내고도, 역으로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청춘임을 보여준다. 자우림의 노래 제목과 여러 상황에서 새드엔딩을 암시했음에도, 마치 반전의 여지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변을 하자면 현실은 늘 그렇듯이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을 리얼리티 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응답하라 1988>처럼 노선을 급하게 바꾼 것도 아니었으며,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크게 개연성이 떨어졌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14회까지 그려낸 서사와 빛나는 청춘이, 그저 한순간 반전의 요소로 전락하면서 마치 시청자가 농락당한 느낌을 받게 만든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새드엔딩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을 이렇게 서사가 탄탄했던 이야기에 반전의 요소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냐는 이야기이다. 14회 동안 다져왔던 서사를 불과 1화 만에 뒤집어 버리는 전개마저 상당히 무리수처럼 느껴졌는데, 이를 반전의 요소로 활용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작가의 태도와 스토리텔링의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새드엔딩에 대한 선택도 조금 아쉽다. 이루지 못해 아름다운 청춘이겠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이미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을 선보였기에 굳이 여기에 새드엔딩을 더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 작품의 새드엔딩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암울한 시대에 한줄기 빛 같던 이들의 청춘이, 굳이 우리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지 않았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응답하라>를 답습하는 듯한 플래시백의 구조 역시 아쉬웠다. 특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미래의 상황과 김소현의 캐스팅이 이 작품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냥 시간순으로 자연스럽게 서사를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면 현재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실제 계절감 또한 안타까웠다. 뜨거운 여름을 그려내고 있지만 배경에서 보이는 겨울의 느낌은 역시나 힘겨운 촬영 현장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 보인다. 아무리 CG로 나뭇잎을 만들고 입김을 지운다고 해도, 새빨간 귀와 옴츠러든 배우들의 몸짓에서 추운 계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전 제작으로 4계절을 멋지게 표현한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완성도와 별개로 대중들이 왜 이 작품에 열광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우리는 왜 시티팝에 열광할까?'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여기서 언급한 내용과 우리가 이 작품에 열광한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추억이나 향수가 아니라, '모든 것이 행복했던 긍정적인 호시절'은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시청자들은 불현듯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MZ세대가 이 작품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과거이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이기에 이 작품을 그리워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미래가 결국 과거를 그리워하는 시대를 만들었고, 잃어버린 과거라기보다 다시는 올 수 없는 미래 같은 느낌인 것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캐치했고,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절 청춘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것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근래 본 작품 중에 순수하게 오락적으로 가장 재밌는 작품이었다. 드라마는 우선 재밌어야 한다는 기본에 가장 충실하면서, 청량미 가득한 레트로 감성에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섞어 가장 이상적인 청춘 드라마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내가 리뷰를 위한 시청이 아닌, 오랜만에 가슴으로 감상하고 두근거림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이들의 대사 한마디에 나의 과거가 되살아났고, 이들의 위로에 나의 마음이 한없이 울렁거렸다. 드라마의 선한 영향력에 이토록 매료된 적이 근래에 있었던가 싶다. 단지 마음이 아픈 것은 이 작품마저 그 아름다운 청춘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임을 못 박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