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리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얼마나 남다른 드라마였는지,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부분이다. 단순히 캐릭터의 매력이나 오락적 재미를 떠나서, 이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그 특유의 따스함은 분명 2022년 드라마 중에 가장 눈부셨던 부분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흔한 멘트가 되었지만 정말로 '봄날의 햇살'같은 드라마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영을 시작할 당시 그저 편안히 쉬어 가는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자폐아와 소수자를 다루는 따스한 시선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재판 과정에 담은 그런 착한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시선은 그동안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했던 부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잔잔하지만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따스한 시선이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면서, 이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물론 이 작품의 남다름을 이러한 시선만으로 설명하게엔 턱없이 부족하다.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이 작품은 각 화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여러 법정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증인>으로 이미 법정물과 자폐아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선보였던 문지원 작가의 극본이 이러한 부분을 디테일하면서도 완성도 있게 그려낸다. 그와 반대로 우영우 주변의 이야기는 사내연애와 출생의 비밀, 내부고발, 불치병 등 K드라마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가져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전개를 비웃기라도 하듯 뻔한 클리셰를 기막히게 비껴나간다. 출생의 비밀을 하나의 에피소드에 가볍게 풀어내면서 눈에 뻔히 보였던 신파도 배제하고, 강력한 악인 하나 없는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전개로 여러 클리셰들을 통쾌하게 비틀어 버린다. 무언가 메시지를 강렬하게 날려야 하는 부분에서 힘을 죽이고, 언쟁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오히려 담백한 톤을 유지한다. 이 드라마가 '봄날의 햇살'같은 드라마였던 건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뻔했던 K드라마에 보여준 한줄기 '남다른 빛'같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다양한 재미와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중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역시 편견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폐아, 성소수자, 기득권, 가부장적인 문화 등 여려 보편적 편견에 대한 소재들로 우영우의 사건들을 전개시킨다. 무엇보다 그러한 편견을 깨부수자는 강한 메시지보다는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리한 질문들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법정 드라마라는 장르답게 법조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질문들도 놓치지 않는다. 더 좋은 변호사란 어떤 것인지, 법과 정의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러 법조인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나간다. 근래 수많은 법정 드라마 중에서 이 작품이 법조인에 대해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마치 이것이 진정한 법정 드라마임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우영우의 내적 판타지와 현실이 부딪치는 장면들이다. 우영우가 그려나가는 판타지적인 세상과 실제 현실들이 만나 두 세상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과정들이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두 가지 정의가 부딪히는 장면들에서 방출하는 묘한 기운의 에너지가 정말 신선했다. 심지어 우영우의 러브스토리마저도 영우의 판타지와 준호의 현실이 부딪치며 이뤄내는 하나의 커다란 퀘스트처럼 느껴진다. 결국 시청자가 한 발짝 물러나서 이 두 가지 정의에 귀 기울여 듣고 고민하게 만든다. 정말로 영리한 작품이다.
극본의 강점만으로 이 작품의 장점을 설명할 수 없다.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PD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디테일한 연출로 이 작품을 빛나게 한다. 한 번만 들어도 잊힐 수 없는 메인 테마곡의 멜로디와 음악들, 조명과 카메라 워킹, 그리고 세련된 CG와 사건 현장의 디테일한 배경까지. 드라마의 외적인 연출에서도 이 작품은 극본 못지않은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다. 하지만 연기를 사랑스럽게 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보여주는 박은빈의 자폐아 연기는 연기적인 테크닉과 도전을 떠나서 너무나 사랑스럽다. 자폐아의 연기가 다소 과장되고 어색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섰는지 연기하는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는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테크닉적인 자폐증 연기와는 조금은 다른 결의 연기를 선보였던 오정세 연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정말로 캐릭터를 어루만지고 그 진심을 표현해 내는 부분에서 최고의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연모>를 리뷰하면서 미처 간과했던 박은빈의 놀라운 연기력을 언급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 연기와 떨림 가득한 감성 연기가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한 좋은 느낌을 온전히 캐릭터에 담아 연기하는 박은빈은 결국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본인의 진정성을 이번 작품으로 확고히 증명해 보인다.
분명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조금이지만 단점들이 보이는 작품이다. 자폐아에 대한 상품화 논란이나 우영우의 판타지를 설득시키기 위해 몇몇 이야기들을 미화한 부분들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 이런 논란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캐릭터 위주의 후반부 전개들이 전반부의 좋은 완성도에 비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들의 전개나, 조연 캐릭터들의 갑작스러운 러브라인 설정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지막 부분에서 미흡했던 캐릭터들의 설정들을 바로잡아 가면서, 후반부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한다는 것이다. 깔끔한 마무리와 함께 말이다.
PC주의와 페미니즘 혹은 특정 인물에 대한 헌정 논란 따위로 이 작품의 진정성을 폄하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단지 작가의 생각이 작품의 개연성을 넘어 어떠한 메시지를 강하게 보여주려 했던 후반부의 몇몇 에피소드는 분명 어색해 보였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너무 앞세우다 보니 뭔가 다른 컬러의 작품을 보는 듯했으며, 후반부에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메시지를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과 메시지를 위해 드라마를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 전반부와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던 이러한 메시지 전달 방식이 조금 아쉬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근래에 보아왔던 작품들과는 분명 다른 톤의 드라마였다. 밝고 따뜻하고 다정했던 이 작품은, 시종일관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면서 따스한 위로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명작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좋은 극본과 연출 거기에 사랑스럽게 연기한 배우들까지, 심지어 기승전결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깔끔한 마무리까지 대중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선사한 따스한 시선과 진심 어린 질문들이 너무나 눈부셨던 작품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은 인기 채널이나 슈퍼스타가 없더라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찾아본다는 멋진 성공 사례를 남기며, 드라마 마니아로서도 뿌듯하고 행복한 마무리였다. 2022년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나의 해방일지>와 함께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