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약한영웅 class1> 리뷰
웹툰 <약한영웅>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학원액션물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도장 깨기와 서열 경쟁밖에 없는 그저 그런 웹툰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드라마로 나온다고 했을 때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약한영웅 class1>은 웹툰에서 가장 매력적은 부분만을 믹스하여,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결국 내가 웨이브까지 가입하게 만든 이유이다.
드라마 <약한영웅 class1>은 연시은이 은장 고등학교에 전학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리는 원작의 프리퀄 같은 작품이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이 원작에서 짧은 에피소드로 그려지긴 했지만, 캐릭터의 설정이나 그리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솔직히 연시은의 캐릭터성만 반영한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원작에서 부족했던 연시은의 캐릭터에 살을 붙이고, 안수호의 캐릭터를 영웅적인 싸움꾼으로 그리면서 새로운 인물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거기에 원작의 가장 큰 메리트인 무시무시한 연시은의 싸움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이 작품의 놀라운 카타르시스를 완성해 나간다. 영리한 각색이자 <유미의 세포들>이후 가장 이상적인 웹툰의 드라마화였다.
이 작품을 보면 학원물 영화의 최정점이라고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파수꾼>이 고스란히 보인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교실과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연시은의 노력. 무엇보다 오범석의 일그러지는 우정과 몰고 올 파국까지 <약한영웅 class1>은 이전 걸작 학원물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따라간다.(어떤 장면과 대사에서는 오마주마저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요즘 세대들의 관심사와 심리들을 활용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인스타와 팔로우에 집착하고, 왕따뿐만 아니라 마약과 게임 중독 등 여러 학원 문제들을 절묘하게 믹스시킨다. 무엇보다 10대 아이들이 느낄 심리 변화와 억압 등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 <인간수업>과 함께 근래 학원물 중 최고의 완성도와 리얼리티를 선보인다.
<약한영웅 class1>은 원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기존 학원물들의 클리셰들을 고스란히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남다른 파괴력을 선보인건 연시은이라는 나약한 소년의 브레이크 없는 전진, 그리고 파국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는 무시무시한 추진력 때문이다. 중간이 없는 그리고 멈추지 않는 연시은의 에너지가 이 작품의 전개와 하나가 되면서, 이 작품이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이유가 된다.
최현욱부터 이야기하자. <모범택시>부터 시작하여 <라켓소년단>에 이어 <스물다섯 스물하나>까지, 최근 그의 작품을 전부 다 보아왔다. 확실한 건 매번 작품마다 연기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안수호라는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긴 했지만, 캐릭터의 흐름을 타며 자유자재로 연기하는 최현욱의 모습에서 엄청난 스타성이 느껴졌다. 액션을 취하는 자세나 몸놀림도 좋고, 표정도 살아있어 리틀 박서준 그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 보인다. <파수꾼>이 이제훈을 탄생시켰다면, <약한영웅 class1>은 최현욱을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결백>에서부터 언젠가 큰일을 해낼 거라고 생각했던 홍경. 그는 이 작품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난해한 오범석을 연기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어수룩하고 나약한 오범석부터 외로움에 사무쳐 변화되고 파괴되는 오범석까지, 그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담아내고 연기한다. 제스처부터 목소리, 걸음걸이 하나부터 욕설하는 모습까지 정말로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명연기였다.
그리고 박지훈. 아이돌 출신이라는 이 배우가 처음 연시은에 캐스팅되었다고 했을 때, 이건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했었다. 은장백사 연시은을 연기하기에는 눈빛이 너무 나약하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지훈의 캐스팅은 완벽했다. 너무나 만화 같았던 연시은의 캐릭터에 박지훈만의 나약한 감정들을 불어넣으면서,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연시은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나약함 안에서 드러나는 살기는 그래서 더 날카로웠다. 이런 살기를 휘두르고 폭발하는 그의 후반부 연기는 올해 그 어떤 배우들보다 파괴적이고 압도적이었다. 아이돌의 꼬리표 따위는 박지훈에게 전혀 문제가 안된다. 개인적으로 2022년 OTT 드라마의 남자 배우 중 <형사록>의 이성민, <몸값>의 진선규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연기였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중반부 김길수 일당들과의 이야기는 다소 흡입력이 약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인간수업>처럼 십대들이 가담한 범죄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보려 한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세 친구들의 우정을 더 돋보일 수 있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면, 후반부의 전개가 더 드라마틱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실 이 작품이 가장 걱정스러운 건 앞으로 그려질 시즌2이다. 시즌2부터 펼쳐질 연시은의 도장 깨기 이야기는 그의 파괴적인 액션을 제외하면 3류 학원액션물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원작처럼 영등포의 일진들을 깨부수어 나가는 이야기로 그려진다면, 이번 <약한영웅 class1>의 완성도에 오점을 남기는 시리즈로 전락할 수도 있다. 원작 자체가 현재 이 작품보다 더 나은 에피소드가 없기 때문에, 과연 어떠한 각색과 완성도로 <약한영웅 class2>를 그릴지 기대되고 또 걱정도 된다. 그런 우려와 걱정만 뺀다면 이번 작품은 2022년의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아도 될듯싶다. 오랜만에 엔딩까지 쉼 없이 달려간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