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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타우 Jun 21. 2023

놓쳐버린 시간,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서!!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리뷰

요즘처럼 OTT로 드라마를 보는 시대에 시청률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시청률은 작품의 흥행을 재는 척도이고, 특히 공중파 드라마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성적표이다. 5%도 안 되는 시청률을 보여준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그래서 방송국 입장에선 흥행에 실패한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전부가 아님을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또 한 번 증명한 작품이다.




놓쳐버린 시간,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서

시간 여행이 다소 식상하기는 해도 잘만 만든다면 실패하긴 힘든 소재이다. 과거의 인물과 만남, 운명의 뒤바뀜, 그리고 역사적 사건과의 마주침 등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시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 살인사건을 막고 범인을 잡는다는 뻔한 줄거리 하나로 이 작품의 강점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리는 시간 여행의 진짜 의미는 범인 찾기가 아니라 가족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에 있다.

이 작품의 진짜 의미는 범인 찾기가 아닌, 가족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에 있다.

가장 가까이 그리고 오래 곁에 있었지만 알 수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 잘못된 선택으로 놓쳐버리고 어긋난 버린 가족의 삶을 바로잡고,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아가는 것이 이 작품의 진짜 의도이자 강점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주인공 가족들의 비밀, 그리고 왜 어긋난 미래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진실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가 막히게 설정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족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어떤 가족 드라마 못지않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여기에 범인 찾기에서 그려지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의 묘미도 물론 놓치지 않고 있다.

놓쳐버리고 어긋난 버린 가족의 삶을 바로잡고~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아가는 것이 이 작품의 진짜 의도이자 강점이다.


1987년, 그리고 5월과 6월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방송국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5월 방영으로 연기된 작품이다. 김동욱 입장에서는 <이로운 사기>와 겹치기 출연으로 안타깝게 되었지만, 5월 방영은 결국 이 작품에게는 매력적인 한 수가 되었다. 이 작품이 그리는 1987년이라는 시대 배경은 결국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의 시대상을 그리게 되고,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 되었던 5.18 민주화 운동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가져오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그려지는 작품의 날짜와 방영 시기가 5월 중순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놀라움마저 안겨준다. 

1987년이라는 시대 배경은 결국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의 시대상을 그리게 된다.

심지어 드라마의 배경이 정확히 1987년 5~6월이며 계절감과 방영 시기를 현재 시간과 정확히 맞춘 디테일마저 놀라웠다. 물론 기대했던 6.10 민주항쟁까지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시대 배경과 역사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이 작품의 진심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노골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이 드라마의 이야기 안에서 그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과정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노골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 안에서 그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과정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는 누구고 지금 여긴 어디인 걸까요.
이토록 긴 시간을 건너온 나는
당신에게 과연 어떤 답을 들려줘야 할까요.
아무것도 모르겠는 채로
그저 바보처럼 있습니다.
여기 당신의 가장 어두운 밤에. 내가.




매력적인 레트로 미장센

80년대 말 레트로 특유의 비주얼을 이 작품은 매력적인 조명으로 독특하게 구현해 낸다. 그림자 조명에 보색의 컬러를 집어넣어 마치 시티팝의 뮤직비디오를 보는듯한 매력적인 색감으로 레트로 비주얼을 그려낸 것이다. 한정된 세트장과 배경은 다소 아쉬웠지만, 공들인 디테일과 색감 그리고 시대 배경을 매력적으로 구현한 미술팀들의 미장센은 공중파 드라마들의 숨겨진 노하우를 보여주는 듯했다. 

80년대 말 시티팝의 뮤직비디오에서 보는듯한 매력적인 색감의 레트로풍 비주얼!!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그러한 느낌을 독특한 조명 컬러로 고스란히 재연해 낸다.


인상 깊은 신인 배우들 그리고 진기주

김동욱은 베테랑 배우답게 이 작품의 중심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신인배우들의 열연이다. 박은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서지혜는 이제 <하트시그널> 출신이라는 꼬리표 따윈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인다. 안나라수마나라에서 눈길을 끌었던 지혜원도 오묘한 매력으로 미스터리한 고미숙을 제대로 포장해 낸다. 특히 이원정은 왜 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캐스팅되었었는지, 능글거리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로 다시 한번 증명해 낸다. 9화의 엔딩신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놀라웠다.

디테일한 연기에서 놀라움을 선사한 신인배우 이원정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놀라웠던 건 진기주의 성장이다. 연기를 무난히 잘하는 배우라는 것은 알았지만, <오 삼광빌라> 때문인지 다소 과한 연기톤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이번 작품에서 가족에게 상처받은 백윤영이란 캐릭터의 어려운 감정들을 명확히 짚어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눈물을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 감정 몰입은 진기주의 또 다른 강점처럼 느껴졌다. <리틀 포레스트>의 그 통통 튀는 매력도 다시 살려내면서, 역시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나야 빛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백윤영이란 캐릭터의 어려운 감정들을 명확히 짚어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진기주.




물론 극찬만 했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아쉬움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앞서 말한 한정된 세트장, 5~6월을 그리지만 후반부 가을 배경의 아쉬움 등 다소 부족했던 디테일들이 그렇다. 미래의 윤해준과 순애를 죽인 이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회수하지 못한 떡밥들도 아쉽다. 특히 타임 패러독스에 따른 설정의 오류나 개연성의 문제는 이 작품의 좋은 완성도에 흠집을 놓는다. 

미래의 윤해준과 순애를 죽인 이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특히 타임 패러독스에 따른 설정의 오류나 개연성의 문제는 너무나 아쉽다.

무엇보다 16부작이라는 미니시리즈의 가이드에 맞추다 보니 늘어지는 중반부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아쉬웠다. 만약 이 작품이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로운 OTT에서 방영되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콤팩트하게 이야기를 줄였다면 정말 올해의 작품 중 손꼽을 수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6부작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늘어진 중반부, 반복되는 범인 찾기의 맥거핀의 요소들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좋은 반응에도 시청률이 오르지 못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늘어지는 이야기와 반복되는 범인 찾기의 맥거핀의 요소들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2023. KBS)

처음에 언급했듯이 흥행 면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실패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중파 드라마가 나가야 할 방향과 경쟁력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시청률 때문에 낙담하고 있을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찬사는 올해 상반기 공중파 드라마 중 <낭만닥터 김사부3>와 함께 최고의 완성도를 선보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마 어쩌면 올해를 통틀어 KBS에서 이보다 더 좋은 드라마는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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