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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타우 Sep 20. 2023

새로 쓰는 한국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역사!!

드라마 <무빙> 리뷰

그 옛날 우리는 흔히 대작이라는 드라마들을 보면서, 마치 한편의 영화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 <아이리스>같은 대작들이 그러했다. 높은 제작비의 케이블 드라마가 등장하면서 <미스터 션샤인>같은 작품들이 탄생하더니, OTT 시대로 넘어오면서 <킹덤>과 <수리남>같은 말 그대로 영화와 견줄만한 스케일의 대작들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라는 범주 안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디테일한 완성도의 차이는 여전히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 마치 모든 회차가 진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드라마가 있다. 그것도 멜로, 액션, 첩보, 청춘, 스릴러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진짜 영화 같은 드라마가 말이다. 지금 리뷰하는, 단연코 올해 최고의 드라마인 <무빙>이다.




가장 한국적인 히어로

<무빙>은 범람하는 한국형 히어로 작품 중에서 단연코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단순히 슈퍼 히어로들의 초능력 싸움이 아니라, 그들의 연대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그려나간다. 영웅놀이나 사명감 따위도 없고, 단지 가족과 연인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미 작품 속에서 구룡포가 이야기했듯이 싸우는 이야기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랑'이었다.

단순히 영웅놀이나 사명감 따위의 슈퍼 히어로들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의 연대기를 다루면서~
가족과 연인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또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접목시키면서, 이야기의 완성도에 리얼리티를 부각시킨다. 칼기폭바사건부터 무장공비 침투, 청계천 철거 시위 같은 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과 연결시키면서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초능력 이야기를 현실성 있게 그려 나간다. 그 안에서 초능력자들을 괴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여주고, 이는 자연스럽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마저 꺼내 놓는다. 이미 해외의 여러 히어로물에서 다뤘던 소재이지만, 한국 사회에 맞게 그리고 훨씬 디테일하게 이 부분들을 잡아낸다.

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과 연결시키면서,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초능력 이야기를 현실성 있게 그려 나간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탄생시킨 강풀 유니버스

<무빙>은 매 회마다 캐릭터 중심의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강풀 만화 특유의 느린 호흡으로 각각의 인물마다 천천히 서사를 쌓아 나가면서, 캐릭터들의 성격과 활약에 따라 다양한 장르로 이야기를 변주해 나간다. 이는 마치 여려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인데, 그 장르가 청춘, 액션, 멜로, 조폭에 첩보 스릴러까지 매우 다양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렇게 캐릭터별로 다룬 서사들이 자연스럽게 MCU 같은 거대한 유니버스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캐릭터 중심의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무빙>.
이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활약에 따라 다양한 장르로 이야기를 변주해 나간다.


어벤져스처럼 폭발하는 하이라이트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에게 공들인 서사들은 후반부 북한 기력자들과의 싸움에서 폭발하면서, 마치 강풀 유니버스에서 싸우는 무빙판 어벤져스를 보는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초능력자들을 노리고 찾아온 북한 기력자들과 모든 주조연 인물들이 한 공간에 엮이면서 말 그대로 초능력자들의 대결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빌드업하듯 촘촘히 쌓아 올린 모든 인물들의 서사들이 한 공간, 한 사건 안에서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임팩트 있고 완벽한 하이라이트를 그려 나간다. 심지어 이러한 과정에서 남북의 이념 대결이 아닌 화해와 가족애라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끝까지 투영시킨다.

모든 주조연 인물들이 한 공간에 엮이면서 말 그대로 어벤져스 같은 히어로들의 대결의 장이 펼쳐진다.
장시간 쌓아온 빌드업은 결국 임팩트 있고 완벽한 하이라이트를 그리게 된다.




인상적인 연출과 경이로운 시퀀스들

단순히 강풀 작가가 만든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박인제 감독의 연출도 너무나 인상적이다. 특히 연출적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몇몇 액션신의 시퀀스들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주변의 사물과 동선 그리고 배우들의 모션까지 완벽하게 활용하는 액션 시퀀스들은 외국 드라마에 비해 적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연출을 선보인다. 캐릭터에 맞게 다른 오브제를 사용하여 만든 타이틀 오프닝이나 회차별 부제 표현도 인상적이다.

박인제 감독의 연출적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부신 액션 시퀀스들!!

강풀 작가 특유의 따스한 시선과 잔인한 액션의 공전은 오묘한 감성을 선사하고, 특히 피 터지는 액션들은 <경이로운 소문2>등에서 우려했던 유치한 액션과 괴를 달리한다. 물론 CG가 완벽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가리고도 남을 액션 신들이었다. 액션신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담백한 연출들을 선보이는데, 블록버스터임에도 과장 없는 연출은 오히려 이 작품의 따스함과 개성을 부각시킨다.

담백한 연출로 강풀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그리면서~
반대로 잔인하고 공들인 액션신의 대비는 오묘한 감성을 전달한다.


작은 배역까지 초호화 캐스팅

무빙은 이미 제작비부터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초호화 캐스팅은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범접 못할 수준을 보여준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조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작은 배역 하나까지 초호화 캐스팅으로 작품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곽선영부터 전석호, 김신록, 박희순, 양동근, 김종수, 조복래에 심달기, 박병은, 백현진, 최덕문, 김국희, 박경혜, 박광재, 박보경, 손병호, 이해영, 유승목, 임성재, 이호정, 김중희까지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작은 배역 하나까지 드라마 역사상 가장 화려한 캐스팅을 선보이는 <무빙>!!


류승룡부터 고윤정까지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출연량으로 따지면 분명 조연급이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드라마 전체를 꿰뚫고 있는 류승룡은 그가 왜 이 작품의 메인 자리를 꿰차고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특히 순수함과 괴물의 양면성을 갖고 있는 헐크 같은 구룡포의 캐릭터를 류승룡 특유의 순정마초 같은 매력으로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마동석 이후 가장 완벽한 타격감을 선사하는 그의 액션 연기와 장례식장으로 가는 롱테이크 오열신은 현재 류승룡만이 구현할 수 있는 절대치의 연기력처럼 보인다. 특히 온갖 상처에도 무결했던 구룡포가 마음의 상처에 한없이 무너지는 장례식 신은 류승룡만의 순정마초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내년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이 기대되는 순간들이었다.

순수함과 괴물의 양면성을 순정마초같은 매력으로 제대로 표현해 내는 류승룡!!!
온갖 상처에도 무결했던 구룡포가 마음의 상처에 한없이 무너지는 장례식 신은 진짜 압권이었다.

매력적인 제스쳐와 액션, 그리고 외국인스러운 연기로 암살자 프랭크를 멋지게 연기한 류승범과 20대부터 40대를 넘나들면서 액션부터 엄마 연기까지 이질감 없이 보여준 한효주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안기부 민차장을 연기한 문성근은 본인만의 카리스마로 진짜 괴물이 어떤 모습인지를 제대로 구현해 보인다.

개성 넘치는 연기로 괴물같은 민차장을 제대로 구현해낸 문성근!!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건 고윤정이다. 완벽한 외모와 건강한 육체 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내유외강의 장희수를 연기하는데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장희수라는 캐릭터의 각성과 맞물려서 이 작품에서 그동안 쌓아 올린 연기 포텐이 제대로 터지는듯한 느낌마저 준다.(사실 이미 로스쿨에서 그녀의 연기력은 충분히 인지되었다) 십 대를 연기하면서 전혀 이질적이지 않는 몸짓과 표정, 그리고 김봉석을 감싸주는 고윤정 특유의 따스하고도 아련한 눈빛은 이 드라마의 백미 중 하나이다. 여배우의 세대교체에 최선봉에 서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유외강의 장희수를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연기해낸 고윤정!!
특히 김봉석을 감싸주는 고윤정 특유의 따스하고도 아련한 눈빛은 이 드라마의 백미 중 하나이다.




물론!!

극찬만 했지만 그렇다고 <무빙>이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초반부 각 캐릭터의 서사를 촘촘히 다루는 강풀 작가 특유의 빌드 업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가 분명 느리고 답답한 부분들이 있다. 후반부 하이라이트마저 느린 호흡으로 그려나가면서, 이야기를 무리하게 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마지막 18~20회에서 반복되는 북한 기력자들의 과거신들은 화해를 위한 빌드업라고 해도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초반부 캐릭터의 서사를 촘촘히 다루다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고 답답한 부분들이 있다.
후반부 북한 기력자들의 과거신들은 필요한 서사임에도 하이라이트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배우들의 놀라운 열연들 속에서 혼자만 이질감이 들었던 차태현의 연기도 조금은 옥에 티처럼 느껴지고, 초반부 김봉석을 연기한 이정하의 더빙스러운 목소리 톤도 적응하기 전까지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CG 역시 헐리우드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최적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특히 공중에서 낙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인물들의 중력과 관성 표현이 많이 어색해 보였다.

CG 역시 나쁘지는 않았지만, 최적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

사실 <무빙>의 최대 단점은 디즈니 플러스라는 플랫폼이다. 물론 디즈니 플러스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뒀고, 매주 2회차씩 공개되는 방식은 오랜만에 수요일을 간절히도 기다리는 묘미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만약 <무빙>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면, 아마 올해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불가한 흥행을 거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빙 (2023. 디즈니 플러스)


30년 넘게 드라마를 봐오면서 수많은 걸작들을 보아왔고, 그중 몇몇 작품들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바꿔놓기도 하였다. 물론 <연애시대>와 <응답하라 시리즈>, <나의 아저씨>같은 다른 기준의 걸작들도 있었지만,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아이리스>나 <미스터 션샤인>같은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보편적으로 드라마의 새로운 기준들을 써 내려가곤 했었다. 그리고 여기 또 한편의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하고 있다. 분명한 건 <무빙>은 그 어떤 기준을 내세워도 대한민국 드라마의 최정점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고작 초능력 액션물인 <무빙>따위로 드라마의 역사를 논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과거의 대작들에 추억 보정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지금의 <무빙>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블록버스터 작품이 있었느냐고. 20부작이라는 긴 이야기에 단 하나의 시퀀스도 낭비 없이 이러한 퀄리티를 유지한 드라마가 있었느냐고 말이다. 종합 예술로서의 완성도와 오락적인 재미 그리고 화해와 사랑으로 집결되는 메시지까지, 심지어 그 흔한 PPL도 하나 없이 말이다. 확실한 건 이젠 대한민국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무빙> 전과 후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높이는 이렇게 또 한 번 올라가고, <무빙>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기억 될 것이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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