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3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쩌다가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목요일 저녁 퇴근길에 대충 장을 보고 냉장고에 식재료를 넣어둔다. 남편은 아이들과 캠핑장에서 함께 볼 영화를 다운로드하고 캠핑 장비를 점검한다. 주말 동안 자연에서 보낼 생각에 한 주간의 피로감도 잊은 채 준비하는 시간은 즐겁다. 금요일은 아무리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도 웃으면서 거뜬히 해내고야 만다.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 딴생각할 틈이 없다. 퇴근길에 남편과 톡 교환을 하고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캠핑 짐을 꺼내놓기로 한다.
집에 도착하면 이미 준비한 것들을 차에 실어 나르고 늦어도 9시에는 차 시동을 건다. 신나는 우리 가족의 야반도주! 남편과 즐겨 찾는 캠핑지는 가평에 위치해 있다. 가운데 호수가 있고 호수 주위로 캠핑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다. 늘 텐트를 치는 우리만의 아지트가 있다. 큰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아이들과 함께 텐트를 치면 어느새 자정이 지난다. 차에서 내내 조잘대던 아이들은 어느새 텐트로 들어가 잠들고 남편과 나는 타프 아래 나란히 앉아 말없이 호수를 바라본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 도착한 다른 캠퍼 가족들,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소리가 들리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하루 동안 회사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퇴근하고 아이들 챙기며 빠짐없이 짐을 챙기던 나는 사라지고 캠핑장 주인이 밝혀놓은 가로등이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내가 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는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다. 옆에 있는 남편도 잊은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호수를 쳐다본다.
내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자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는 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 시절은 게으름 부리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이던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은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월든 p288>
어쩌다 캠핑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생산적인 게으름 부리기를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자연 속에서(물론 인공적으로 조성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도 나도 느긋해지니 서로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되고 별빛 아래 장작불을 피워놓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게 한다. 매주는 아니지만 캠핑 동안에는 자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일주일간 분주함으로 축낸 몸과 마음이 충전됨을 느낀다. 언제인가 남편이 캠핑장 호수 사진을 인화하더니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놓았다. 나만큼이나 호수의 전경이 남편에게도 평온함을 주었나 싶었다.
월든 호수는 영원히 젊다. 지금이라도 호숫가에 서면 옛날과 다름없이 제비가 벌레를 잡으려고 살짝 물을 스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오늘 밤에도 내가 20여 년 동안 매일같이 이 호수를 보아오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참으로 이 호수는 그 자신이나 그 창조자에게, 아아, 그리고 나에게까지도 변치 않는 기쁨과 행복의 샘물이다. 그것은 확실히 마음에 아무런 흉계를 품지 않은 용감한 사람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이 호수의 주위를 둥글게 가다듬었으며 그의 사념 속에 호수를 깊이 파고 그 물을 맑게 하였으며 마침내는 유산으로 콩코드 마을에 남겨준 것이다. <월든 p290>
소로우는 호수의 이름에 관한 전설을 하나 들려준다. 옛날 옛적에 인디언들이 산 위에 모여 주술 의식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산은 지금 월든 호수가 깊은 것만큼이나 하늘 높이 치솟은 그런 산이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주술 의식을 올리면서 신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 산이 흔들리면서 갑자기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이때 '월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노파만이 도망쳐 목숨을 구했으며 호수의 이름이 그 노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전설은 전설인 뿐. 소로우는 호수의 이름은 영국의 지명에서 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월드인 폰드' 즉 '담으로 둘러싸인 호수'라고 불린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수에 대한 그의 묘사와 애정이 책의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나무 베는 사람들이 호수의 여기저기를 야금야금 베어내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호수 근처에 돼지우리 같은 집을 짓고, 철도가 그 경계를 침범하고 얼음 장사꾼들이 호수의 얼음을 걷어가지만 월든 자체는 그가 어릴 때 보았던 그 호수 그대로라고 말한다. 어떤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 자신에게 있었을 뿐이라는 거다. 월든의 모든 특성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그 순수성을 강조하며 호수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한다.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 <월든 p291>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월든 호수와 주변 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와 주위 숲의 모습, 그 속에 가는 온갖 동식물을 생생하게 묘사해서 잠시 그곳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개구리를 주정꾼으로, 들꿩,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독특하다는 되강 오리, 김매려 일찍 다다른 콩밭을 망쳐놓은 우드척, 어둠의 정령들이라 부르는 부엉이, 올빼미 등등. 자연을 묘사한 글을 읽다 보니 다시 캠핑에 대한 욕구 가 꿈틀거렸다. 묵묵히 홀로 피어나는 자연이 주는 소박하지만 무한한 여유와 기쁨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