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법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by 꽁스땅스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 Contagion>. 포스터에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는 문구가 코로나로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오늘날의 상황과도 너무나 비슷하다. 개봉 당시 사회생활에 찌들 때이기도 해서 굳이 기분전환을 위해 전염병에 대한 어두운 영화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서 지나쳤던 영화다.


책 <대 유행병의 시대>를 읽고 나니 <김미경의 리부팅>에서도 소개되었던 이 영화가 생각이 났다. 말레이시아의 과일박쥐를 모티브로 전염병 상황을 다룬 영화로 박쥐의 배설물을 먹은 돼지를 요리한 홍콩의 한식당에서 최초의 감염이 일어난다. 새로 지은 공장 기공식 참석차 홍콩 출장을 간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미국으로 돌아와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고 그녀의 아들마저 죽고 만다. 홍콩,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2주 만에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


미국 질병센터는 의료진들을 사건 현장으로 파견하고 세계 보건기구는 홍콩으로 가 문제의 전염병 발생 경로를 조사한다. 한 저널리스트(주드 로)는 정부가 진실을 숨긴다며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개나리꽃이 전염병에 도움이 된다는 유언비어를 터뜨린다. 전염병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염병은 점점 번져나가고 무정부 상태에 이른다. 자가격리, 동선 추적, 셧다운, 집단 매장, 인간관계의 단절, 공포에 가까운 의심, 이기심 등 인간이 전염병 앞에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유행병.jpg

영화의 결말에 전염병의 발단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기업 개발사업을 위해 숲을 파괴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박쥐가 바나나를 먹고 인근 농가의 돼지 축사로 날아다닌다. 박쥐의 배설물을 먹은 돼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감염된 돼지가 식용으로 출하되었다. 레스토랑에서는 감염된 돼지로 요리하고 위생수칙을 경시한 주방장은 베스와 악수한다. 손을 통해 이동한 바이러스는 베스가 만진 물컵, 핸드폰을 타고 한 사람, 두 사람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전염병의 시작과 끝까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영화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질병관리 센터의 대표가 어떻게든 펜더믹을 막아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말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늑장 대응으로 사람들이 죽는 거보다 과잉대응으로 비난받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심 코로나라는 녀석이 언제 가는 종식이 되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김미경의 리부트>를 읽으면서 이미 1980년대부터 기후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했고 일부 생태학자, 역사학자, 감염병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의 위험을 역설해 왔음을 알았다. 신문 방송에서 지구 온난화, 환경파괴에 관한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도 볼 때뿐 바쁜 일상에 젖어들고는 잊고 지내는 게 내 모습이다. 대부분의 전염병의 출연의 뒤 배경에는 항상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 결국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가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한동안 먹먹해졌다.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이 모든 팬더믹의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물의 순환 교란으로 생태계가 파괴된 것, 인간이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는 것, 그로 인해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앞으로 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미경의 리부트 p242>


책 < 대 유행병의 시대>을 통해서 그동안의 창궐했던 전염병(스페인 독감에서부터 코로나 19까지)에 대해 인간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을 자세히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미생물을 도와 미생물이 차지하고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생태학적 환경, 다른 장소로 퍼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지속적인 연구와 추측에 근거하여 제시한다.



1. 도시화와 세계화

2. 기술과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가 혼잡한 환경에서 병원체가 사람에게로 옮을 위험을 약화시키는 경우

3. 해외여행과 국제무역으로 더욱 넓어진 세계의 상호 연결성



중국 출장에서 생긴 일

회사에 전사적인 회계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해 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이 베이징에 있는 호텔에서 사전 작업을 위해 함께 모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2주간의 긴 일정의 중국 출장은 처음이었다. 각 나라(중국, 홍콩, 방콕, 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의 파이낸스 부서 동료들과 파리 본사 프로젝트 총괄팀과 회의를 하면서 각 나라의 독특한 업무 형태를 아는 기회였고 루틴 한 업무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베이징 방문은 처음이었다. 중국지사의 위치나 그 근처에 체류한 호텔 주변이 번화가이기도 했지만 중국이라고 하기엔 그냥 서울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건물들의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다. 곳곳에 새로 건축하는 건물이 많이 보였고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오랜 기간 회사를 몸담고 있어서 다른 나라 동료들과의 친분을 쌓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업무 후 저녁시간에 중국 동료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로컬 식당에 데리고 갔다. 중국어와 영어로 된 메뉴판을 보긴 했지만 동료를 믿고 현지 메뉴로 선택하도록 맡겼다. 출장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니 말이다.


조금 뒤 음식이 나오는데 내 비위를 상하게 하는 요리가 나왔다. 커다란 볼에 자그마한 개구리들이 둥둥. 같이 간 한국 동료와 서로 눈이 동그래졌다. 중국 동료의 말로는 식용 개구리라 보기보다 먹어보면 맛있을 거라며 나름 인기 메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어린 시절 개구리를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막상 요리를 보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 손이 가질 않았지만 동료의 성의를 봐서 겨우 한 개를 접시에 덜고는 살짝 맛을 봤다. 닭고기 맛이라고 해야 하나. 중국사람들의 독특한 식성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날 음식보다는 동료들과의 수다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식사 후에 로컬 마켓 구경을 했는데 번화가와는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 다양한 품목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섰는데 이제 막 조성한 구역인지 아직은 옛날의 허름한 모습이 남아 있는 곳도 보였다. 동료 말로는 아직도 계속 개발 중이라고 했다.


2주간 같은 호텔에 머물면서 조식, 중식을 나름 오성급인 그 호텔에서 해결하고 번화가를 오갔지만 로컬 식당에서 봤던 음식, 아직은 개발이 안된 허름한 마켓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점점 더 일상화돼가는 황사나 미세먼지가 이곳에서 계속되는 개발 붐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도시화, 산업화로 발전한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다른 어떤 출장보다도 빨리 일정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중국의 사향고양이 vs 어린 시절의 기억

중국 사향고양이에서 사스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재래시장 판매가 금지됐고 사육농장마다 엄격한 감염방지 대책을 도입했다. 이색적인 동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식욕이 충족되지 않았는지 얼마지 않아 사향고양이의 거래가 200달러에 이를 만큼 다시 수요가 증가했고 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하건 어떻게든 음식점 메뉴에 반드시 등장하는 동물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사향고양이로 만든 통구이, 찜 요리, 탕 요리는 일품요리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 사향고양이는 양기, 즉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해서 추운 날씨에도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자라면서 엄마는 여느 부모님처럼 허약했던 자식들을 위해 몸이 좋다는 보양식을 챙겨주셨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언제가 엄마가 외출 후 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다. 언니와 오빠와 함께 부엌으로 오라고 하셔서 우리는 맛있는 간식을 사 오신 줄 알고 종종걸음으로 엄마에게로 갔다. 선명한 검 홍색의 간처럼 생긴 걸 엄마가 도마에서 한 입 크기로 자르고 계셨다. 순간 나는 비위가 상해서 조금은 실망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 엄마 이게 뭐야? 간이야?"

" 어, 막 추렴한 말의 간인데 눈에 좋다고 해서 얻어왔어. 귀한 거니까 언니랑 오빠랑 몇 점씩 참기름 장에 찍어서 먹어봐"

"윽, 난 안 먹을래. 그리고 난 시력 좋으니까, 언니랑 오빠랑 내 것까지 먹어"


편식이 심했던 어린 시절이라 난 단박에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당시 눈이 안 좋아 안경을 낀 언니와 오빠는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몇 점 집어먹는 척했다. 중국인의 식욕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내 건강을 챙기자는 이기심에, 부모님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먹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또한 기력 보충용으로 보내주신 흑염소, 개소주 등의 보약도 생각났다. 나 역시도 합법적인 절차로 섭취를 하긴 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과 다르지 않음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코로나 19 그리고 마음의 면역력 키우기

영화 컨 테이션과, 책 <대 유행병의 시대>를 보고 모든 전염병의 원인에는 인간의 탐욕이 시발점이라는 것.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피조물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감당하기에는 자연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럼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의 상황이 '임시'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되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묻고 또 물어 나만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김미경 강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지난 100년간 발생한 유행병을 되짚어 볼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새로운 전염병, 새로운 대 유행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이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지가 문제다. 카뮈의 말이 옳았다. 전염병은 예측할 수 없을지언정 반드시 되풀이된다. <대 유행병의 시대 p546>


국가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업체와 산업형 농장은 점점 더 많은 경작지를 집어삼켰고 소규모 영세농민은 '경작되지 않은 땅을 찾아" 열대 우림 끄트머리로 점점 밀려났다. 그러한 장소에 박쥐가 서식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신종 바이러스가 축산 동물과 사람으로 옮을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책에서는 중국에서 서식하는 박쥐에서만 대략 500종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박쥐에게서 검체를 채취해 조사한 결과 500여 종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밝혀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최대 1만 3000종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는 연구결과를 이야기한다.


바이러스와의 공존이 우리의 미래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우울하고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몸 관리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면역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내고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겁먹지 않을 수 있는 튼튼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마음을 자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또한 생활 속에서의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뿐만 아니라 꾸준한 독서를 통해 관심분야를 넓히며 지식과 실력을 쌓아가는 행동 백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마음에 새겨본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563830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하게 하는 긍정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