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쓰는 능력
코로나로 언제 또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한 동료분이 면역 여권 기사에 대한 블로그 글을 공유해 주셨다. 정부가 대만, 베트남, 태국 등 방역 우수국가와 트래블 버블(안전망) 협정을 맺고 상호 입국자의 2주간 자가 격리를 면제해 주는 방안을 추진한단다. 출국 직전 코로나 19 음성 판정을 받은 관광객들에 한해 '면역 여권(immunity passports)'을 발급해 자유여행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니아, 리투아니아가 트래블 버블 구축을 통해 면역 여권을 발급하고 있고, 호주와 뉴질랜드, 베트남과 태국도 상호 버블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여행 수요 회복을 위한 세계 항공. 관광업계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는 전제 아래 이르면 내년 초 면역 여권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방역당국과 여론의 설득이 관건이라고는 하는데 코로나가 안정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자유여행이 허용되길 바란다. 코로나로 가장 타격을 입은 항공, 여행산업에는 희소식이기도 하겠다. 미약하나마 해당 산업의 실적 회복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휴가 계획 세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엄선해서 여행 일정을 잡는 과정부터 설렌다. 어떤 계획이나 그러하지만 여행 계획은 이것저것 알아보며 가장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벌써 여행지를 몇 번 다녀온 것 같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좋은 정보들이 가득하기도 하고 항공권과 숙박만 잡고 자유 여행하는 걸 더 선호한다. 하루하루 일정을 촘촘히 계획하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보고 인증샷까지 남겨야지 뭔가 뿌듯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는 느긋한 여행이 좋아졌다. 아이들과 유럽여행을 갔을 때 최대한 아이들이 지치지 않게 하루에 한 곳만 가는 것으로 하고 숙소 근처나 아이들의 관심사인 유명한 문구점, 박물관 위주로 다녔다. 많이 걸어 다니다가도 공원이 보이면 쉬기도 하고 잔디밭에 앉아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예쁜 물건들을 보면 사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나 역시 처음에는 쇼핑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다. 소심해서 큰 물건을 사지 못하고 조그마한 장식품들을 사곤 했다. 돌아왔을 때 그곳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어떤 게 있을까 적은 예산으로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친 적도 있다. 어느 순간 그런 시간이 아까워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가는 것 같아 기념품에는 신경을 안 쓰기로 했다. 실제 내가 그곳에서의 경험, 순간을 담은 사진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문구점이다. 아이들과 하나씩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한두 시간 보낸다.
책 < 돈의 속성>에서 저자는 올해 봄에 결혼 30주년을 맞아 아내와 세계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돈 걱정이 없는 최고의 부자들은 어떤 여행을 할지 궁금했다. 프라이빗 제트 비행기를 빌려 컨시어지가 몇 명씩 붙고 의사와 요리사같이 대동한 세상에서 제일 비싼 여행 패키지 상품이었다. 총 9개국을 돌며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요리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공항에서조차 특별 게이트와 비밀 라운지를 통해 입출국이 이뤄졌다.
그들과 다니면서 저자가 느낀 것은 그들이 쇼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대신 박물관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했다는 거다. 딱히 쇼핑센터도 기념품을 사는 일도 없었다. 무엇을 사는 것보다 그때그때의 경험을 즐기고 함께 어울리고 로컬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거다.
저자는 한 달 가까이 수많은 나라를 돌면서 이런저런 추억을 되살릴 만한 물건이 여럿 있었지만 이런 모든 것이 결국 예쁜 쓰레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당장 예쁘고 갖고 싶은 물건이 많지만 막상 집에 가지고 오면 놓을 곳이 마땅히 않고 나중엔 버리긴도 아까운 예쁜 쓰레기로 변해 있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단다. 그래서 어디 가서 예쁜 물건이 보이면 한번 집어보고 이것이 예쁜 쓰레기 후보인지 아닌지 생각해본다고 했다. 아무리 예뻐도 결국 쓰레기라는 것이다.
사는(buy)는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 행복한 사람들이 다르게 사는(live) 이유는 사는(buy)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굿 라이프 p117>
경험과 추억과 사진만으로도 여행은 풍성하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이런 곳을 다녀왔다는 자랑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필요를 위해 소비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 < 굿 라이프>에서도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 경험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유를 하더라도 그 소유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경험보다는 소유를 사는 사람이다.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소유화 혹은 물화(thingify) 해버리는 사람이라는 거다.
책 <돈의 속성>의 김승호 회장님의 말씀처럼 돈을 주고 예쁨에 현혹되지 말고 똑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능력 또한 행복한 부자가 되기 위한 필수임을 잊지 말자.
나의 운명은 나의 선택을 통해 결정된다. 남이 만들어놓은 선택 안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믿으면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선택권을 늘려야 하고 그 선택이 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때때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돈의 속성 p170>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09252431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637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