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생활 적응기 2
의료기기 회사에서의 첫 사회생활은 매일 새로웠다. 처음으로 주어진 일은 직원들 경비를 증빙과 함께 확인하는 것이었다. 회사마다 경비처리 규정과 사용하는 회계 계정이 있는데 새롭게 익히고 그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영업팀의 경우 증빙이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말 그대로 영업팀이라 자리에 있는 경우가 없다는 거다. 꼼꼼히 확인을 하고 포스트잇에 보완, 수정되어야 할 것을 메모하고 책상에 올려두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회사가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는 과정이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경비 청구 양식을 출력해서 손으로 작성하고 증빙을 이면지에 풀로 붙여 정산했다. 처음에는 새로 입사한 나의 메모를 보고 읽어보지도 않고 내 자리로 와서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어차피 제대로 갖추어져야 경비처리가 되어 본인들의 계좌로 입금된다는 걸 알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어렵기만 한 사회 선배들이라 메모에 있는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만 했다.
회사 비즈니스가 의료기기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이라 세관에서의 통관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수입에 따른 관세나 창고료 등 부대비용이 발생하는데 꽤 상당한 금액이 발생한다. 물류팀에서 주로 전도금(소액의 자금을 미리 지불할 때 사용하는 용어)으로 자금을 들고 가서 통관 후 정산을 하는데 처음 보는 증빙들을 이해하느라 쉽지 않았다. 간혹 전도금보다 통관비용이 더 많게 혹은 더 적게 사용하는데 물류팀과 확인하느라 진땀을 뺐다. 10원까지도 딱 들어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속성 때문인듯하다.
숲에서 가장 작은 식물이니 자기 위에 있는 모든 식물 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내내 그늘이라는 비참한 환경까지 견뎌내야 한다. < 랩 걸 Lab Girl> p96
우리 팀에 재무총괄이사님이 새로 합류한 뒤 체계가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흩어져있는 전공지식들이 이사님과 얘기하다 보면 뭔가 정리가 되는 듯했다. 오랜 경륜과 내공으로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실 때마다 속이 확 뚫리곤 했다. 매월 말에 마포에서 소공동까지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상환하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졸업하고 완전히 사회인이 되고 과장님 옆에서 경비 처리하고 은행을 오가며 일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지 않았다. 이러려고 취업했나 싶기도 하고. 은행을 다녀오는 길에 언제까지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돌아오니 과장님이 회식이 잡혔다며 다들 근처 맥줏집으로 이동했다고 정리하라고 했다.
회식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빈속에 두 잔을 연이어 마셨더니 순간 어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때 저쪽에 계시던 이사님이 나를 데리고 나오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하셨다. 사회 초년생의 넋두리를 말없이 들으시고는 수고가 많다며 업무적인 부분은 조정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몇 주 후 부서 회의를 통해 업무분장이 다시 이루어졌고 처음으로 회사의 재무제표를 만들게 되었다. 야근을 하며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과장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해 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닻을 내리기 위해 집중하느라 가슴이 뛰기만 했다.
식물이 처음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새 이파리는 새로운 개념이다. 씨는 닻을 내리자마자 우선순위를 바꿔 모든 에너지를 위로 뻗어올라가는데에 집중한다. <랩 걸 Lab Girl>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