쥔공을 놓았으니 맞는 공을 잡을 수 있었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어떻게 무책임하게 직원들의 월급을 꿀꺽할 수 있는지. 사업이라는 게 그런 건가." 나는 화가 났다
남편을 포함한 직원 모두가 2~3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한채 빵집을 그만두었다.
주 5일제인 회사와는 달리, 제빵 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쉬었다. 빵집에 따라 설 연휴에도 나가야 했고 동료들과 일정을 조율해야 하니 정해진 날 쉬기가 어려웠다. 매번 서로 시간이 엇갈려 여행 가본 지 1년이 넘었다. 남편이 쉴 때가 기회였다. 남편의 제안에 따라 강릉으로 떠났다.
" 우와 오랜만에 바다 보니 좋다"
" 그렇네. 여기 회가 진짜 싱싱하다. 자기 이거 먹어봐"
" 응. 반찬도 푸짐하니 한상 가득이네. 천천히 드셔. 소맥 한잔 말아보슈. 오늘 술이 좀 댕기네"
" 오호, 알겠습니다. 오늘은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즐기세요"
남편은 소주와 맥주를 눈 금잔에 비율대로 맞추고는 나에게 내밀었다. 결혼 전 남편의 친구들과 처음 만날 때 남편이 술 몇 잔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익숙한지 일어날 때 쯤 멀쩡하게 깰 거니 걱정 말라며 나를 챙겨주었다. 결혼후 남편이 술을 못하는 게 시댁 가족 내력임을 알았다. 어머님은 전혀 술을 못하셨고 아버님은 맥주 한 잔으로도 얼굴이 붉어지고 기분이 좋아지시다가 식사 후에 조용히 주무셨다 . 남편도 그랬다. 직장 생활을 하며 술 문화에 적응하려고 집에서 소주로 연습했다던 얘기도 생각났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은 술을 즐기지만 많이 못 마신다.
" 여러 군데 빵집에 지원했는데. 건강한 빵을 만드는 곳과 연결이 되면 좋겠어. 식빵을 만들거나 크루아상에 여러 가지 토핑을 올리는 경험을 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빵은 밥같이 건강한 빵이야. 이다음에 내 이름을 건 빵집을 한다면 디저트류 보다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발효빵을 만들고 싶어"
" 그래 자기 처음부터 그런 생각 했잖아. 요즘 사람들이 밀가루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어. 글루텐 프리나 비건빵을 선호하는 추세야. 자기가 좋아하는 빵도 좋지만 고객들을 생각한다면 나 역시 건강한 빵이 맞는 것 같아. 그런 빵집에서 경험을 쌓고 자기만의 빵을 개발해서 팔면 좋겠다"
" 그래서 말인데 기사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일하고 싶은 빵집이 몇 군데 있더라고. 거기에 지원했어. "
" 우와 자기 열정이 대단하다. 좋은 소식 있을 거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고마워. 조금만 기다려줘"
" 걱정 마셔. 자기랑 맞는 빵집에서 연락이 올 테니"
" 근데, 자기, 회사를 떠나겠다는 결정. 난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어. 언제든 마음가는 대로 하라고 했잖아 .이제 좀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봐. 자기가 좋아하는 일말이야. 애들이야 입시를 앞두고 있지만 자기 앞가름은 할 만큼 자랐잖아."
" 나는 자기가 회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쿨하게 그러라고 말하지 못했는데. 축하해주니 고맙네. 몸도 마음도 휴식이 필요하는 생각했어.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 내 일에 대한 방향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상태로 계속 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애정을 가지고 하던 일도 공간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드라고. 그런 고민들로 힘들때 자기가 먼저 행동을 했지. 솔직히 자기가 그만둔다고 했을때 우리 가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가 고스란히 나한테 옮겨진 느낌이랄까?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드라고. 견디기 힘들만큼 불안하고 두렵고. 회사가는게 힘든 일이 될줄 몰랐어. 10년넘게 일한 곳인데 말이야."
"맘고생이 심했구나. 미안해. 그런줄도 모르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이제는 마음가는 대로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마음속에 있던 말을 남편에게 했다. 회사일이 힘들어도 곁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남편과 두 딸을 보며 힘내고 나아갈 수 있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순간부터 흔들렸다. 그동안 마음속에 덮어두었던 상처, 고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스스로 별거 아니라고 다 지나갈거라 다독였지만 이번 만큼은 안되었다. 앞으로 뭘 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일단 애들 챙기면서 건강부터 회복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손에 쥔 공을 놓았으니 남편과 나에게 맞는 공을 잡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남편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