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래 봤자 엎질러진 물이다. 전화받는 남편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표정이 심상치 않다.
" 누구야?"
"변호사"
"변호사? 어머! 자기 무슨 일 있는 거야?"
"어젯밤에 예전 크루아상 전문점 사장님이 톡을 보내왔더라고"
"회사 처분하고 연락 두절이라며?"
"태국인지 베트남인지 한국 들어오는 길이라고. 빵집 운영이 안되고 직원들 급여며 거래처 대금도 못 주고 이혼소송으로 도망치듯 외국으로 나갔대. 무슨 일인지 시골에 사둔 땅값이 올라 처분해서 빚 청산도 했대. 이혼하려던 부인과도 다시 잘해보기로 했대. 나 포함 직원 월급을 변호사에게 의뢰했으니 카톡에 남긴 번호로 연락해 보래. 밀린 월급에 조금 보태서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미안하다고"
" 오호, 이런 일도 있구나. 참참. 그래서 자기가 그 변호사한테 연락한 거구나. 뭐라셔? 밀린 월급 언제 받을 수 있대?"
" 그게, 변호사님은 그런 사람 모른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자기 고객 중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거야. 자기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받은 카톡을 요청하셔서 보내드렸지. 아까 전화로 자기는 의뢰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어."
" 뭐라고? 그 사장이란 사람 대체 왜 그런 거야. 사람 마음을 두 번이나 다치게 하네. 정말 속상하다 진짜!"
" 그러게. 기분이 안 좋다.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카톡에서 지워버려야겠어. 쓸데없는 연락 못 하게."
남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걸었다.
" 그 변호사님도 황당했겠다. 세상에 별사람이 다 있다. 우리가 안정적인 회사만 다녀서 공부 좀 하라고 이런 일이 생기나 봐. 자기 괜찮은 거야? 잊어버리자. 자꾸 생각하면 화만 나지. 우리한테 좋을게 하나도 없어.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자"
" 미안해. 너무 내 생각만 해서. 지금까지 부모님이 바라는 삶,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자기나 나나 그러지 말자.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필요하고 간과해서도 안되지만. 음. 이제는 어떤 일이든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 쉽지 않은 길이지만 진정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자기도 일하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면 좋겠어. 우리 두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하자고"
"그래 더 일찍 이런 고민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해봤어. 자기랑 아이들이랑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해. 자기가 빵을 배우고 내가 커피로 봉사를 할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어. 사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아. 그렇다고 우리가 안일하게 살았던 적은 없는데 말이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데 왜 주위에서 안 도와주는 건지. 우리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 될 때까지, 아니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쉽지 않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결혼을 앞두고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렸을 때처럼.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고 용기를 낸 남편을 보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잡는 모습이 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