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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스땅스 Dec 08. 2020

내가 빵 만들고 자기는 커피 내리고

커피와의 인연의 씨앗


커피는 남편의 제안으로 배우게 되었다. 일에서 얻는 만족감이나 성취감에 있어 늘 고민이 많던 남편은 나보다 1년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동안에도 주기적으로 잊을만하면 '다른 일을 하고 싶다'라고 노래를 부르긴 했다. 나 역시 일에 치이고 바쁜 생활을 하다가도 잠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어.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일상에 젖어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확고한 결단 후 몇 주에 걸쳐 자신의 의사를 말했다.


회사원인 나로서도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그간 봐왔고 말없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 준 것에 고마움이 있다. 하지만 당시 첫째는 고3이었고 둘째는 중학생이었다. 이제 한창 교육비가 들어가는 시기였다. 당시 나는 회사 생활에 지쳐있는 상태라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때였다. 남편의 결정에 처음에는 멋있게 '그래 그동안 열심히 했어. 이제는 쉴 때도 되었지'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야속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만약 내가 일하지 않았다면 남편은 과연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묻고 싶다!) 두 달 가까이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시부모님의 방문도 있었다. 결정적인 건 남편의 건강 문제였다. 나는 남편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퇴사 후 남편은 매일 나를 회사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전철로 출퇴근하던 나는 남편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태워다 준 후 남편은 도서관을 다녔고 아이들을 챙겨주었다. 퇴근이 늦어지면 회사 앞까지 데리러 와 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부터 탐색을 하더니 어느 날 빵을 배워야겠다고 했다. 제빵사 자격증에 도전하겠다며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그리고 단 한 번에 필기에 이어 실기에도 합격했다. 그 후 발효빵이며, 본인이 관심이 가는 빵을 배우러 다녔다. 제빵이든 뭐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역시 money 가 필요했다. 그리 많은 비용은 아니었지만 현실은 그 무엇이 되었든 투자가 필요했다.


남편이 자기 일을 찾아가는 사이 겉으로는 쿨하게 응원하던 나는 속앓이를 많이 했다. 앞으로 우리 부부, 우리 아이들의 알 수 없는 미래와 그동안 누적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로 심신이 말이 아닌 상태였다. 더 심각한 단계에 이르러 결국은 병원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직 혹은 휴식을 권했다.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내가 퇴사 의사를 비췄을 때 " 자기 할 만큼 했어. 이제 그만 쉬어"라고 오히려 나에게 잘한 결정이라고 등을 쓰담 쓰담해 주었다. 참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던 선배들은 퇴사 후에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손 놓고 쉬면 많이들 아프단다. 그래서 취미활동이나 다른 소일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에 일하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를 배워보고 싶었다.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 음. 커피를 배우는 건 어때? 원래 내가 배우려고 했는데 비용도 줄일 겸 자기가 배우고 나한테 가르쳐주라"


" 커피? 나한테 커피를 배우라고? 나 커피 별로 안 좋아해"


" 뭐 나중에 사람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거잖아. 내가 빵 배우고 있으니까 자긴 커피를 공부하는 거지. 나는 빵 만들고 자기는 커피 내리고!"


" 카페라도 하려고?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삶인데 자기도 그 누구나 중 한 사람인 거야?"


"영화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에서 처럼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아?"


" 모르겠어. 암튼 배우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3개월 과정이니 하면서 나에게 맞는지 한번 경험해 보지 뭐"


결국 남편은 자기가 배우려고 알아본 리스트들 중에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가격 대비 교육과정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는데 검토해보니 과연 남편 말대로였다. 일단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커피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과정이라 유용해 보였다. 그렇게 커피와 인연의 씨앗이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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