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바리스타의 커피철학
첫 라테아트 수업시간! 수동 그라인더가 익숙지 않아 포터 필터에 가득 채우는 것조차 서투르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포터 필터를 장착할 때 왼손을 사용하는지 오른손을 사용하는지 강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머리로 그려보았다.
우유 거품을 낼 때는 적절한 공기주입과 회전이 필요하다. 스팀 노즐을 통해 외부의 공기를 찬 우유에 집어넣는 공기주입은 고운 거품을 결정한다. 스팀 노즐과 우유 표면과의 거리 맞추기가 좀처럼 감이 안 왔다. 강사님이 잡아줄 때는 적절히 맞춰져 고운 거품이 만들어지는데 나 혼자 하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큰 거품만 생기는 거다. 이론수업을 들으면 뭐하나. 실습시간에 다시 들어도 새롭기만 하다. 강사님은 백지상태인 우리를 위해 다시 찬찬히 설명해 주셨다.
" 라테 Latte 란 이탈리아 어로 '우유'를 뜻하고 아트 Art 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창조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에스프레소에 곱고 균일한 우유 거품을 이용해서 하트나 로제타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라테 아트라고 합니다."
" 지용성 에스프레소는 우유보다 가벼워요. 따라서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의 비중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어야 조화로운 라테아트가 만들어진답니다"
" 공기주입을 과도하게 하면 우유 거품이 가벼워지고 반대의 경우 우유가 가라앉아 아트를 그릴 수가 없어요."
" 공기주입 후 크고 작은 거친 우유 거품을 곱게 하려면 회전이 필요해요. 균일한 거품이 만들어지면서 부피도 늘어나기 때문에 스팀 피처에 우유가 넘치지 않도록 움직이시면 안 돼요. 우유 표면이 평평해졌을 때 스팀 레버를 끄면 됩니다. "
교육생들은 하나같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이론과 실제는 늘 다른 법이다.
"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이 그리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이래 가지고 시험 보기나 하겠냐고?"
" 그러게, 라테 아트는 우유 거품이 정말 중요하네. 참참"
이제 한 명씩 줄을 서서 실습할 시간. 강사님의 도움으로 거품 내기 성공! 잔 거품을 없애기 위해 피처 두 개에 거품 낸 우유를 나눈다. 스팀 피처 벽을 타고 신속하게 우유를 나눠야 고운 거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고운 거품은 금세 떠버려서 라테가 아니라 카푸치노에 어울리는 거품이 돼버린다. 신속함이 생명이다. 강사님의 손이 빠른 이유를 알 것 같다.
거품 낸 우유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특유의 구령을 입으로 말하며 하트 그리기에 도전했다.
"붓다가 대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들어서 쭉 "
구령 따로 내 손 따로! 나만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함께하는 교육생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떤 때는 하트가 안 그려지고 하얀 보름달 모양이 어떤 때는 그리다 만 하트가 나온다. 이어지는 강사님의 말씀!
" 라테아트는 황금색 크레마가 있는 에스프레소와 벨벳과 같은 고운 우유 거품 그리고 바리스타의 실력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곱고 아름다운 라테아트를 완성할 수 있어요"
" 라테 아트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라테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답니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연습 많이 하세요"
강사님의 설명을 안 놓치고 실습에 집중하느라 피로가 몰려왔다. 생전 처음 배운 라테아트! 그날은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운이 빠진 채 기절하고 잠들었다. 그 뒤 시험을 볼 때까지 집에서는 스팀 피처에 물을 부어 연습을 하고 수업 전후로 우유 거품을 내서 하트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자격시험에 간신히 합격을 하고 카페 봉사를 하면서도 매일매일이 다르다.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간신히 통과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를 볼 때의 감격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했졌다. 커피에 대해 탐구하고 경험을 쌓아야만 닿을 수 있는 나와는 먼 이야기 같기고 하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간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커피에 대한 그녀의 철학을 알 수 있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람 중심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가 높아져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해진다. 더 나아가서는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 커피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야만 우리는 좋은 커피를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 전주연 바리스타
어떤 날은 아트가 잘 그려지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하트를 그리려다 로제타를 그리기도 한다. 아직도 라테 주문을 받으면 긴장모드다. 혹시라도 모를 실수를 대비하기 위해, 두 잔을 만든 후 더 잘 그린 걸로 내드린다. 고작 라테아트 하나 가지고 봉사할 때마다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내가 참 우습다. 어쩌면 라테아트가 커피라는 영역에서 사소한 부분일 텐데 말이다. 그녀에게도 나처럼 새내기 바리스타 시절이 있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커피 철학에 이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를 롤모델로 삼아 내가 만든 커피 한잔이 누군가에게 퐁신퐁신 행복을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쯤이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