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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스땅스 Apr 10. 2021

커피의 느끼함에는

뭔가 얼큰한 게 필요해

커피 교육을 받을 때 일이 생겨 다른 반 수업에 청강을 들은 적이 있다. 과목이 다양한 메뉴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푸치노, 캐러멜 마키아토, 카페모카 캐러멜 모카, 녹차라테 등 차갑거나 뜨거운 카페 메뉴를 직접 만들어 보는 수업 있었다. 


강사님은 메뉴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대한 것부터 설명을 시작하셨다.


" 우선 메뉴 종류에 따른 적당한 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메뉴 각자가 갖는 특성에 맞게 잔을 선택해야 보기에도 좋고 음료를 다 마실 때까지 맛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 적당한 잔을 골랐다면 예열이 필수겠죠. 차가운 음료 잔은 차갑게, 뜨거운 음료 잔은 뜨겁게 예열해 놓습니다."


" 그다음 중요한 건 뭘까요? 레시피 엄수예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다 해도 순서가 바뀌면 최상의 맛을 내기 힘들어요. 반드시 방법과 순서를 숙지해야 합니다."


" 가장 마지막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신속 정확하게 만드는 거예요. 가장 좋은 모양과 맛을 유지한 상태에서 제공되기 위해서는 신속 정확함이 필수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양이나 맛이 변화되는 메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실기시험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필기시험에서는 다양한 메뉴 중 기술하는 게 나올 거예요. 대략적인 큰 그림은 머릿속에 기억할 수 있도록 하세요. 에스프레소류,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핫,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생략하고요 베리에이션 메뉴들을 그룹으로 나눠 함께 만들어볼 거예요" 


대략 4명이 한 팀이 되어 강사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메뉴를 만들어 보았다.  카페모카의 경우 휘핑크림을 올리는 게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은은한 캐러멜 향과 우유 거품이 어우러진 캐러멜 마끼아또의 경우 거품 우유가 라테와 달라야 했다. 기억에 나는 건 내가 평소에 즐겼던 플랫 화이트, 이름만으로도 낭만적인 에스프레소 꼼빠냐, 커피를 아이스크림만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아포가토였다.

만들어보고 시식을 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강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꼼꼼히 해 주셨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유래되었다는 플랫 화이트는 첫맛으로 에스프레소,  끝 맛에는 라테의 고소함을 즐길 수 있어요. 미세한 거품과 진한 리스트레또의 더블샷이 조화를 이룬 메뉴랍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맛본 플랫 화이트는 일반 라테와는 달리 커피 맛이 진해서 피곤할 때 마시면 쓴맛과 고소함이 커피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에스프레소 2샷이 그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커피 관련 책에서 베이비치노라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어린이와 함께 오는 고객들을 위해 만든 음료도 있었다. 커피가 아니라 우유와 우유 거품으로만 만들고 카카오 가루를 뿌렸다고 했다. 


" 에스프레소 꼼빠냐. 이름부터 우아하죠?  진한 에스프레소와 크림이 만나 부드럽고 달콤해요.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해요. 먹는 방법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푼으로 달콤한 크림과 진한 에스프레소를 같이 떠서 맛보면 더욱 맛있어요" 


앙증맞은 잔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주셨다. 각 팀마다 한 사람씩 휘핑크림을 올렸다. 우리 팀에서는 교육생들이 나보고 해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휘핑크림 병을 들고 쉬~익! 크림을 커피 위에 사뿐히 올렸다.  조그마한 잔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끝났다. 원두로 장식을 하고 완성했다. 스푼을 들고 각자 시식을 했다. 달콤함과 쓴맛의 조화. 에스프레소가 좋아졌다. 


" 음료와 디저트의 중간 형태인 아포가토는 찬 것과 뜨거운 것을 섞어서 만드는 간단하면서 맛있는 메뉴예요.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대비로 더욱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아포가토 잔에 공 모양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담긴 채 강사님이 각 팀에 나눠주셨다.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아이스크림 주위에 살며시 부었다. 커피 맛보다 쌉쌀한 맛이 더해진 아이스크림이 더 맛났다.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이태리의 디저트로 아포가토 affogato는 이태리어로 끼얹다, 빠지다는 뜻이었다. 바닐라맛의 gelato affogato 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카페마다 메뉴는 개발하기 나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 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만들고 그에 맞는 잔에 신속하게 선보여야 한다. 많이 만들어보고 맛을 봐야 가능한 일이겠다 싶다. 


그날 많은 메뉴를 만들어보고 시식하느라 속이 느글거렸다. 한입씩만 맛을 봤는데도 느끼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생들과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들 저녁 메뉴 얘기를 했다. 


" 만들 땐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속이 느끼해. 뭔가 얼큰한 게 필요해"


" 그러게. 이런 날은 김치찌개가 딱이야. 커피가 느끼할 수도 있다니! 우린 한국 사람 맞나 봐" 


곁에 계시던 강사님과 카페장님도 한마디 거드신다. 


" 저희도 하루 종일 강의하고 봉사한 날은 김치찌개가 당겨요. 오늘 저녁 집집마다 찌게 냄새가 폴폴 나겠네요" 


커피의 느끼함에 김치찌개가 딱이지!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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