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겪은 덕분에

두번째 수능이야기

by 꽁스땅스

2019년 11월 14일 수능시험날.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고 식사 준비를 했다. 아이를 깨우고 같이 식사한 후 함께 시험장까지 걸어갔다. 내 심장은 쫄깃해져서 아이 앞에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담담해 보였다. 시험장 앞에서 아이를 안아주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긴장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루 종일 성당에서 수험생 엄마들과 기도를 하며 주마등처럼 아이가 공부와 입시미술을 병행하며 치열하게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첫 입시 실패 후 재수학원을 알아보고, 우여곡절 끝에 공부를 도와줄 예체능 전문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다. 주 중에는 공부 학원, 주말에는 디자인 실기학원으로 가는 일정이 반복되었다.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먹는 거 챙겨주기, 식사할 동안 기분전환을 위해 이야기 나누기, 아이를 포함한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하기였다. 학교 다닐 때는 놓쳤던 부분을 채울 수 있어서 할만하다고 걱정 말라는 아이. 늘 잠이 부족한 아이를 새벽같이 깨우며 미안해하던 시간들. 욕실이랑 아이 방 청소할 때 스트레스로 빠진 머리카락을 치우며 짠했던 기억들.


9월 수시 실기 시험날 5시간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고는 이틀째 되던 날 힘들어해서 쉬게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더니 시험장 얘기를 꺼냈다. 주제가 어려웠지만 본인의 생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그러더니 디자인 쪽으로 전공을 하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처음으로 나에게 입시미술이 너무 싫다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싫다. 힘들다'라는 얘기를 잘 안 하는 아이인데, 하루 종일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즐겁다는 아이인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럴까 싶은 게. 아이는 며칠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며칠을 앓았다. 수시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정시에 집중하자고 다독였다.


수능날 아이를 들여보내고 성당에서 기도하면서 혹시나 아이가 중간에 포기하고 나오면, 몸이 안 좋으면, 긴장해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간절함이 배가 되었다. 시험이 끝날 즈음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아이를 픽업하고 함께 집으로 왔다. 저녁상을 다 차렸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답안지를 못 적고 왔다며 다시 출력해서 문제를 풀고 가채점하고 먹겠다고 했다. 아이가 좋아해서 사다 놓은 메밀전병을 덜어 방에 넣어주고 기다렸다. 가채점 후에 나와서는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이제 실기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수능 성적이 통지될 때까지 아이가 채점한 대로만 실수 없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다행히 우리의 바람대로 결과가 나왔다.


정시 원서를 접수하고 세 번의 실기시험을 치르기까지, 정확히는 수능이 끝나고 다군까지의 실기시험 후 발표하는 1월 중순까지 매일 디자인 실기 연습을 해야 했다. 물론 아이가 지원한 학교들 중에 1차 서류 통과(수능 성적 혹은 학생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음) 후에야 2차 실기 시험을 치를 기회가 주어지고 때에 따라서는 3차 면접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수능 후 실기시험 준비를 하면서 인생에서 커다란 관문 중 하나를 끝내서 인지 마음은 편안해 보였다. 다행히 1차 서류 통과 후 2차 4시간의 실기시험, 그리고 면접까지 마쳤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2020년 1월 14일. 합격자 발표가 있던 달. 오후 5시가 발표라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시계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일찍 퇴근한 남편은 4시 반부터 아이패드를, 난 책은 폈지만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째는 방에서 문을 닫은 채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아이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맞는 길로 이끌어 주소서' 거실 벽에 십자가를 보며 화살기도를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5시가 되자 우리 셋은 각자 남편은 아이패드, 나는 내 핸드폰, 아이는 노트북을 일제히 동일한 사이트로 로그인을 시도했다. 아이 수험번호와 이름을 치고 엔터키를 누르려는 데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 합격했어!" 남편과 나는 아이 방으로 가서 화면을 재확인했다. "다시 확인해보자. 수험번호 잘 친 거 맞지?" 세 사람이 노트북 앞에서 화면이 뚫어져라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쳐다봤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우와 대박. 진짜 합격이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던 아이의 바람대로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채로 한 해를 더 보내면서 맘고생한 아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오늘 첫째와 치과에 동행했다. 지난주에 사랑니를 발치하고 일주일 후 재 방문이었다.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두 번의 입시를 버텨내느라 생각이 많이 자랐다는 게 느껴졌다. 사이버 강의로 개강을 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전에 없이 에너지가 넘치고 얼굴이 빛나 보였다. 어렸을 때 친구 따라 태권도를 배웠는데 매일매일 신나는 얼굴로 적극적이던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단단해진 아이가 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겠지만 앞으로도 잘 견뎌낼 것이라 믿는다. 첫째의 입시를 경험하면서 나 역시 쪼금 더 성장한 엄마가 된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인간은 본디 강하다. 그래서 견뎌내는 것이다. 그런 견뎌냄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p64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함께 가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