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토케미컬이 풍부해야
사회생활을 할 때 아이들이 어려서 상주하는 도우미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주말에 시장을 봐다 드리면 할머니는 식사 준비까지 해 주셨다. 다행히 할머니 음식은 간도 세지 않았고 채소 위주의 식단이라 두 아이도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었다. 전형적인 할머니표 토속음식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 후 아이들만의 공간이 필요하기도 또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키워주신 할머니가 나가셨다.
출퇴근하는 도우미 이모님이 오셨는데 아침저녁에만 마주치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먹거리와 방과 후 데리러 가는 부분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매일 주말 저녁이면 일주일 치 아이들 일정이랑 간식과 저녁 식단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였다. 아이들이 잘 먹는 반찬 위주로 짜는데 건강과 관련된 거라 학교 급식 식단과 겹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하느라 어떤 때는 30분 넘게 책상에서 머리를 쥐어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이모님이 내가 적어놓은 식단을 보시고는 이전 다른 집에서는 본인이 알아서 식단 고민을 해야 했는데 미리 알려주어 편하다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직접 만들어주지는 못하는 엄마로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고 한 일인데 만들어주시는 이모님이 만족하신다니 다행이지 뭔가. 이모님은 우리 집에 오셔서 콩자반도 처음 해 보셨다고 하셨지만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오랜 기간 주말에나 아이들을 챙기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내가 음식을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과 두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서 모처럼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겠구나 싶었다. 인터넷 검색, 서점가서도 요리책을 보며 어떤 걸 해주면 좋을까 오로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관심을 쏟았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하루에 두 끼만 챙기던 나는 어느새 하루에 세 끼를 챙겨야 하는 먹고 돌아서면 그다음 끼니를 고민하는 주부가 되어 있었다. 음식 하는 거에 조금씩 흥미가 떨어지자 장을 볼 때도 한 끼 정도는 가볍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냉동 곤드레 밥, 만두, 라면 같은 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가족들에게 소홀한가 싶으면 그간에 (우리 가족을 위한) 나만의 노하우가 된 육개장이나 불고기, 고추잡채, 닭백숙을 만들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둘째가 채소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식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불고기를 하더라도 고기만 쏙쏙 골라 먹고 떡만둣국에 애호박, 당근, 양파, 달걀지단을 넣으면 다 먹었다고 싱크대에 올려놓은 그릇에는 야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떡볶이를 할 때도 양배추 같은 야채를 넣어주면 떡이랑 어묵만 먹고 정성 들여 씻어서 넣은 야채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과일은 그나마 챙겨줘야 먹는다. 오늘 점심에도 비빔밥을 차려준다 하니 집에 사다 놓은 메밀소바에 만두를 달란다. 어렸을 때부터 야채를 즐겨하지 않는지 물으니 깻잎을 빼고는 그래도 먹는다며 후룩후룩 메밀소바를 드신다.
작년에 구에서 하는 동네 텃밭을 신청하셔 각종 야채를 재배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가지, 오이, 방울토마토, 상추, 쑥갓, 고추 등 씨를 뿌렸는데 신기하게도 매주 갈 때마다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미 토양이 구에서 전문가의 손길로 잘 조성되어서일까? 따로 약을 한 것도 아니고 물만 주었을 뿐인데 매주 싱싱한 야채를 한 봉지씩 들고 왔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비빔면이나 비빔밥을 해 먹으면 내 손으로 농사지은 야채가 그렇게 달 수 없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 상추 난 쑥갓, 고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싱싱함이 오래가고 맛이 좋았다. 가끔 고향에 계신 양가 부모님이 텃밭에서 키웠다며 파, 양파, 감자, 양배추를 보내주시는데 그것 또한 요리를 했을 때 마트에 파는 것보다 훨씬 맛나다.
다양한 피토케미컬을 함유해야 맛이 좋다.
책 <영양이 비밀>의 저자 프레드 프로벤자는 신선한 작물일수록 다양한 피토케미컬을 함유하며 맛도 좋다고 했다. 피토케미컬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농사지은 채소에서 경험한 그 단맛이 이 피토케미컬이라는 성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토케미컬 >
식물 속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로 식물 자체에서는 경쟁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거나, 각종 미생물·해충 등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 등을 한다. 또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항산화 물질 하나 세포 손상을 억제하는 작용을 해 건강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는데,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아스피린, 말라리아 특효약 퀴닌, 발암물질 생성을 억제하는 플라보노이드, 카로티노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이들이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저자는 농업의 발전으로 지난 두 세기에 걸쳐 작물 수확량이 두 배에서 세배 정도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수확량의 증가는 풍부한 피토케미컬을 희생한 대가여서 지난 40년 사이에 43종에 달하는 과일과 채소 및 곡물의 피토케미컬이 5퍼센트에서 40퍼센트까지 감소했다는 거다.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단다.
1. 작물을 재배하는 이들이 질보다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예전보다 피토케미컬이 덜 함유된 품종을 선택한다.
2. 관개시설의 발달과 질소, 인, 칼륨 등의 비료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방식 또한 풍부한 피토케미컬을 포기하는 대가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3. 작물이 완전히 자라 피토케미컬을 충분히 함유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설익은 채로 수확해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 수확 이후에는 피토케미컬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어떤 과일과 채소의 경우는 그 속도다 다른 것보다 훨씬 빠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게에서 사는 브로콜리는 대개 수확 후 열흘에서 2주 정도가 지난 것들인데 건강에 유익한 피토케미컬이 75에서 80퍼센트, 비타민 C의 50퍼센트 그리고 당분과 산화 방지 성분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수확 후의 호흡작용 때문에 당분이 사라지면 맛이 크게 떨어진다.
4. 마지막으로 대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증가한 탓에 거의 모든 작물은 질소(단백질)의 농도가 감소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잎이나 줄기는 물론 뿌리, 덩이줄기, 씨앗, 곡물에서 단백질 함유량이 떨어지고 이는 사람들의 영양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산화탄소 증가는 목초의 아연과 철분의 감소와도 연관된다.
이산화탄소의 변화는 사람과 초식동물,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의 영양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경우 단백질이 감소하고 탄수화물이 증가함으로써 고혈압과 고지혈증, 관상동맥 심장질환의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피토케미컬을 희생하는 현상은 사람들이 채소와 과일을 열심히 먹으려 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단다.
2013년 미국 성인 중 채소와 과일을 권장량만큼 섭취하는 이들의 비율은 아주 낮은 편이다.(각각 8.9퍼센트와 13.1퍼센트), 아이들도 대부분 먹어 본 경험이 부족하고 맛이 없다는 이유로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집 고등학생 둘째도 이런 이유에서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채소와 과일에 친해지려면
저자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을 반복해서 채소에 노출하면 장기적으로 채소 섭취량을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음식 속에 채소를 숨겨놓거나 다양한 채소를 푸짐하게 늘어놓아 아이들에게 채소에 관한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도 조언한다. 농촌지역의 고등학생들은 채소에 향신료를 첨가함으로써 채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채소에 포도당이나 자당을 첨가해 단맛을 더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경우도 있단다. 새로운 음식에 익숙한 맛을 첨가하는 식으로 낯선 음식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도 추천했다.
육개장에 시래기나물, 고사리, 숙주나물을 듬뿍 넣어 고기와 함께 한 그릇 떠주면 둘째는 남기지 않고 잘 먹는다. 카레에 각종 야채를 넣어주면 평소에 안 먹는 당근, 호박, 양파, 감자도 아무 소리 없이 한 그릇 뚝딱한다. 닭백숙 한 그릇에 부추를 송송 썰어 넣어주면 닭고기랑 함께 그래도 남김없이 먹는다. 우리 집 채소 속 숨겨놓기가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준비해야 하나? 올바른 식습관을 위한 엄마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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