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나를 무엇으로 말할까. 늘 이 질문 앞에서 뜸을 들인다. 사회관계에서 소속이나 직함은 필수다. 하물며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 양식에도 직업을 표시해야 한다. 회사원일 때는 고민 없이 1초면 클릭하고 지난 가던 질문에 주부라고 써야 하나?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봉사한다고 쓰면 될까? 선택할 수 있는 문항이 주어지면 쭉 훑어보고 처음에는 기타 란을 표시하고 최대한 짧게 적었다. 공란일 경우 구차하게 설명이 길어진다. 퇴사 후 구차해진 설명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어찌나 없어 보이든지.
처음 씽큐 베이션 독서모임에 참가한 날. 아무런 생각 없이 완독 후 서평을 썼으니 편안하게 토론을 따라가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갔다. 리더분이 시작 전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는 거다. 어느 모임에나 초면에 벌어지는 당연한 절차인 것을 순간 당황했다. 만약 내가 회사원이었다면 한마디 하면 끝났을 것을. 10명 조금 넘는 인원이었는데 내가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그날 나는 그간의 경력을 구구절절 읊고 그만두고 커피를 배웠고 어학공부도 하며 봉사도 한다며 지루한 소개를 했다. 끝나고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렸는지. 집에 오는 길에 그 민망함을 잊을 수가 없다.
두 딸을 키우고 살림하고 내 생활도 열심히 하는 엄마이자 주부라는 두 글자로 나를 소개하면 왠지 초라해졌다. 회사 다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사는 나인데 참참.
처음 한 달 라이브톡을 할 때도 하는 일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의외로 육아를 하는 멋진 엄마들이 많았다. 그전에 이미 글로 만난 멤버들이었는데 직업 엄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글을 쓰고 말하는 분들을 뵈니 나도 모르게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회사 다녔을 때는 매일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책 한 장 볼 여력이 안되었다. 매일 회의를 쫓아다니고 부서장, 타 부서에서 요청한 일, 팀원들이 처리한 일을 확인하고 마무리하느라 야근은 기본이었다. 나만의 시간이라고는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거 외에 점심시간이나 가끔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때는 자기 계발이니 독서니, 글쓰기는 웬 말인가? 반복되는 일상에 그냥 흘러갔다.
가족들을 챙기고 살림을 하고 봉사도 하는 게 녹록지 않지만 엄마이자 주부로서 사는 요즘 짬짬이 내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보고 글도 쓰고 멤버들의 정성스런 글을 읽으며 새로운 분야를 접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것을 배우기도 한다. 게다가 한 달러들 덕분에 건강습관도 챙기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올바른 식습관에 관심을 두게 되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밀가루, 튀김, 설탕 등을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회사 다닐 때도 잘 안되던 시간관리. 내 시간을 내기 위해 집안일을 할 때면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을지 이것저것 몰아서 하기도 하고 매일 한 가지씩 정해서 하는 노하우도 생긴다.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가 나를 충만하게 한다.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의미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의미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12가지 인생 법칙> p290
일상이 빠르게 흘러간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가족들이 나간 뒤 어질러진 방을 청소한다. 건강한 식단을 위해 고민을 한다. 조그만 것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사는 게 마음먹기 나름이란 게 이런 걸 두고 말하나 보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의지가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마음만은 헐렁한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글을 쓸 궁리를 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한 나의 미래에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글이 너무 좋아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는 책에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으로 미래의 나의 모습을 꿈꿔본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거나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라고 권할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들을 보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쓰기의 말들>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