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자전거에 대한 흑역사

by 꽁스땅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방학 때였는데 오빠한테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집에 있던 성인용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골목길로 나갔다. 보호장비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오빠가 성인용 자전거를 조정해 주었지만 작은 체구의 나하고는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페달에 발이 가까스로 닿아 오빠가 붙잡아주어 조심스레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중학생 오빠의 리드 하에 의욕적으로 자전거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했다. 몇 번을 넘어지고서야 겨우 나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물론 양쪽 무릎이 까져 영광스러운 상처도 생겼다. 자전거를 처음 타 본 나의 소감은 '또 다른 나를 끌고 가는 버겁고 힘이 드는구나'였다.


그 뒤로 자전거를 탄 기억이 없다. 무릎에 생긴 상처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고나서의 힘들었던 때문인지 자전거를 끌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뒤로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자전거를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결혼 후 두 딸은 세발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자연스레 배웠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남편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르친 덕분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 3학년, 둘째가 7살. 성당에서 부부교육은 한다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덥석 신청을 했다. 두 아이가 곧잘 잘 노니 반나절 정도 다녀와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을 해뒀다. 토요일 오후 간식거리를 챙겨주고 5시쯤 끝나니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으라고 첫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남편과 성당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내용은 예상보다 부부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이 드신 부부들도 많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육아로 지친 젊은 부부들에게도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교육이었다.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남편과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출입문 쪽으로 보니 낯익은 자전거에 익숙한 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당시 두 발 자전거에 익숙해진 첫째에게 생일 선물로 주니어 용 자전거를 사주었고 첫째가 타던 두 발 자전거를 둘째가 물려받았다. 첫째는 방과 후나 시간만 나면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쌩쌩 달리는 걸 좋아했다. 제발 차 조심하고 엄마 아빠가 있을 때만 타라도 해도 막무가내였다. 집에서 성당까지는 걷기에는 좀 멀어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대략 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 그러니까 첫째가 새로 산 자전거에 둘째를 태우고 유유히 성당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거다! 세상에!! 남편이랑 너무 놀라서 아이들에게 달려갔고 첫째는 무사히 성당까지 왔다는 성취감인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 참참. 아무튼 두 아이와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갔다.


또 다른 나의 자전거에 대한 흑 역사의 기억도 있다. 회사에서 교육차 파리에 갔을 때다. 열흘 정도 교육일정 중에 토요일에 자전거 시내투어 일정이 있었다. 교육 준비를 하면서 미리 공유된 일정을 보면서 좀 걱정이 되었다. 가기 전에 주말에 남편에게 집 근처 공원에서 연습을 조금 했다. 평탄한 길은 무리 없었지만 한강 고수부지 자전거 대로에서 시도했을 때는 내리막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달리기도 하고 두려움이 생겼다. 게다가 쌩쌩 달려오는 자전거 부대를 피하려다 담벼락에 부딪히기까지 했다. 파리 시내투어는 자신이 없었고 다른 동료들에게 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 드디어 토요일. 집결 장소로 이동을 했다. 자전거 대여소에 가서 각자 본인한테 맞는 자전거를 골랐다. 20명 넘은 동료들 앞에서 난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타보고 처음 타보는 거라 어떨지 모르겠다고. 교육담당자가 여기서 한번 타보라고 했다. 어설프게 자전거에 올라앉아 페달을 밟았는데 불안정한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더니 동료들에게 "자전거가 익숙지 않은 동료가 있는데 혹시 누가 2인용 자전거로 함께 탈 사람 없나요?" 난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나만 빼고 다 자전거를 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거다. 리옹 프로덕션 사이트에 디렉터(교육 내내 내 옆자리에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분이 선뜻 손을 드셨다. 결국 그분과 함께 커플 자전거를 타고 그날 시내투어를 할 수 있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정말 고마웠던 동료분이었다.


이렇듯 자전거는 나에게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다. 언제 가는 남편과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예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목차 만들기를 한 적이 있다. 주제가 자전거였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자전거 타고 제주도 한 바퀴'라는 제목으로 여행 에세이를 상상하며 자전거 여행 계획을 짜서 목차를 꾸려보았다.


책 제목: 자전거 타고 제주도 한 바퀴

분야: 여행 에세이

타깃:자전거를 좋아하는 모든 연령

목차:


프롤로그: 제주 환상 자전거길 234km


1. 전설의 흑룡에서 소원을 빌며. 용담해안 용두암

2. 애월 해안로 따라 자연과 마주하며. 다락 쉼터 큰 바위 얼굴

3. 노을을 보며 사색에 잠기다. 해거름 마을공원

4. 일제 해안 동굴진지. 송악산

5. 해녀마을. 법환 바당

6.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 쇠소깍

7. 소나무 숲에서 쉬어가다. 표선해변

8. 거대한 성산에서 해돋이를. 성산일출봉

9. 코발트빛 바다에서. 김녕 성세기 해변

10.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어. 함덕 서우봉 해변


에필로그: 종주를 마치며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싶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쌩쌩 달리며 바닷바람과 멋진 풍경을 보며 속도도 느껴보고. 손잡이에서 두 손을 놓고 자유도 만끽하고 말이다. 오늘 카페 봉사를 가는 길에 책꽂이에 있던 김 훈의 <자전거 여행>을 가방에 넣고 나갔다. 전철 안에서 읽은 프롤로그에 문장이 예전 자전거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저자의 말처럼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복된, 신비로움 경험할 날을 고대해본다. 세상의 길들 중에 나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란 기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자전거 여행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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