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붙들어라

니체의 삶 4

by 꽁스땅스

고대 그리스어 가운데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크로노스 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기도 한데 머리가 하얀 늙은 남자의 이미지로 그려진다고 한다. 책 <에센셜 리즘>의 저자 그렉 맥커운은 그리스어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 측정 가능한 시간의 의미를 갖는다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할 때의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카이로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을 뜻한다. '카이로스'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이는 '특정한 때'를 가리킨단다. 크로노스가 정량적이라면 카이로스는 정성적이라는 거다. 그리고 카이로스는 우리가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집중해야 경험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 달 건강습관을 지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미션 중에 수면시간(7~8.5시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변명을 해보자면 대면 수업을 위해 학교 간 새내기 대학생 첫째나 학원에 간 둘째가 귀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코로나로 늦춰진 방학식으로 수행평가 과제를 늦게까지 하는 아이 옆에서 함께 해주느라 취침시간이 늦어진다. 아침 시간에는 일찍 나가는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 4시 50분에는 일어나야 하기도 하다. 이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또 있다. 갑자기 아이가 간식으로 뭘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미리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할 걸 사기 위해 함께 외출할 일도 생긴다. 민망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책을 읽다가도 미래에 대한 것이나 괜히 오늘 내가 계획한 걸 다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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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셜 리스트는 현재에 집중한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에센셜 리스트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한다. <에센셜 리즘 p285>


이와 반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들도 있다.(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들) 내가 계획하거나, 엄마나 아내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 이른 아침 시간이나 낮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미리 책을 읽고 나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놓는 것. 그래서 글쓰기의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짬짬이 설거지, 세탁기, 청소기 돌리기 등의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 일주일 치 식단을 미리 짜서 갑작스레 장 보러 마트에 달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에센셜 리즘> 이란 책을 읽고도 참 나라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는 거에 그냥 머무른다. 그러다 저녁때가 되면 시간에 쫓기고 낮 동안 내지 못한 속도를 내느라 노트북은 내 차지다. 퇴근 후 넷플릭스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남편은 은근 내 눈치를 보며 둘째에게 과제 안 하면 아빠가 노트북 봐도 되겠냐며 아쉬운 소리를 한다. 어제도 그랬다. 그 전날 과제하는 둘째 옆에서 졸면서 책을 읽느라 자정이 되기 30분 전에야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남편 밥만 챙겨주고는 부족한 수면을 보충해야 했다. 하루 종일 하랑 봉사를 하고 외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전철에서 읽는 책으로 서평을 쓰느라 전속력을 내야 했다. 끝나자마자 욕심부려 신청한 자기 발견 프로그램을 위한 글쓰기를 하느라 역시나 자정이 되어서야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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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날이 많아져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진 니체는 스위스의 실스 마리아 Sils-Maria에서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실바 폴리나 호숫가에서 그가 나중에 '자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 유명한 '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 낸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영원 인간 존재의 모든 고리에는 항상 가장 강력한 생각 즉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좀 더 읽어봐야 이해가 될 듯하다). 자신에게 찾아온 생각에 대해 남긴 기록 중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순간을 붙들어라. 왜냐하면 이 순간은 이미 몇 번이고 존재했고 지금처럼 배분된 모든 힘을 다해 지금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삶 p320>


책 <니체의 삶>에서 니체는 나라는 사람을 아는 건지 이 순간을 붙들라고 한다. 과거에 내가 어떻게 보냈느냐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에너지를 배분한 대로 미래의 내가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니체는 모든 역량을 당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쏟아냈다. 과거나 미래에 힘을 분산하지 않았다. 힘을 분산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지고 힘을 집중하면 일이 쉬워진다는 점을 인지한 진정한 에센셜 리스트였나 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HoOi7cEO4E


세계 최고의 초밥 장인이 자 다큐멘터리 영화 <지로, 초밥을 꿈꾸다 Jiro Dreams ofSushi>의 주인공 지로 오노는 여든여섯 살이 될 때까지 초밥을 만들어 손님들을 접대했다. 그에게 있어 초밥을 만드는 일은 하나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에센셜 리스트>의 저자는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내용은 그가 어떤 과정과 경험을 거쳐 장인의 경지에 올랐느냐 하는 점만이 아니라고 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현재에 완전히 몰입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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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에센셜 리즘>의 저자의 조언대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라고 묻는다. 바로 지금 시점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쉽게 판단이 안 선다면 지금 해야 하는 많을 일들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한다. 그런 다음 덜 중요한 일부터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다. 서평을 마무리하고 요즘 게을러져서 쓰기를 미루는 데일리 리포트를 다시 적어가야겠다. 한 번에 여러 가지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리하여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그것이 이제부터 내 사랑이 되게 하라! 나는 추함과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에게 유일한 부정의 표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 가는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중략)... 오히려 인간을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이 되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어떤 성향이 있다면 그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것이고 이는 반복될 것이다. 만약 삶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긴 선이고 인간이 이 선의 어느 한 지점에 있다면 그가 거기 있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따라서 이성이 있는 인간은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를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니체의 삶 p37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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