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이별의 수업

인생수업 2

by 꽁스땅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그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살아있는 우리에게 강의 형식으로 전한다. 강의의 제목이자 책의 제목은 <인생수업>이다.


두 저자는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고 수업 시간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았는 한 수업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 이 학교의 과목들이라고 말한다.


오늘 카페 봉사를 가는 전철 안에서 읽은 부분은 상실과 이별의 수업이라는 챕터였다. 저자는 상실이라는 감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상실은 아주 복잡한 감정이며 한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상실에 대한 반응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슬픔은 아주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슬픔의 감정은 사람에 따라 격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깊숙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수업 p95>


상실 또는 상실의 가능성은 가족, 친구, 직장동료,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등 주면 모든 이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애완동물조차 상처를 받는다. 주위 모두가 상실감을 느낀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서로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각 다른 시기에 각각의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한단다.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그 감정들은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어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슬픔은 종종 우리가 준비가 되어 과거의 슬픔을 일깨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는 나중에 다른 상실을 경험할 때까지 현재의 상실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책에서 모린이라는 사람의 케이스가 소개된다. 1940년대에 흔했던 '전쟁 신부(전쟁터에 나간 군인과 결혼한 신부)'중 한 사람이었던 모린은 당시 병무청으로부터 남편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 망연자실했다. 학생 커플인 모린과 롤랜드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감행한 몇 주 뒤 롤랜드가 입대하기 직전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이 결혼하던 해에 롤랜드는 공군 훈련을 마치고 해외로 파병되었다. 그런데 사망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21세에 과부가 된 모린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곧바로 다른 주로 이사해 직장을 구하고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재혼을 했다. 그 후 세 딸을 낳았고 과거는 완전히 잊혔다. 새 남편은 모린의 전 남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세 딸이나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롤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집에 그의 사진을 걸지고 않았고 전의 시댁 식구들이나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중 어느 누구와도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50년이 지났고 두 번째 남편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사별한 두 남편을 향한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감정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거실에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두었다. 첫사랑과 두 번째 남편의 사진을. 그러면서 마침내 자신이 겪은 상실감과 슬픔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는 사람, 특히 뒤섞인 감정을 느낀 부모님을 잃었을 때 혼란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상실감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상실함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한 여성은 " 엄마는 내개 아주 심하게 대했어요. 말 그대로 폭군이었죠. 그런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왜 슬퍼해야 하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냉혹하게 대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진다면 슬퍼해야 합니다. 충분히 그 상실을 느끼고 슬퍼해야 하며 그들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들의 죽음이 무시되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생수업 p99>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상처로 남은 기억도 함께. 할머니는 친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셨다. 친정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나던 해에 첫 번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뒤로 새로 오신 할머니라고 했다. 할아버지 집은 옛날 한옥이었는데 마당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부부는 안거리에 우리 가족은 밖거리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곰방대에 담배를 잘 태우셨는데 담배 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고 혼자 마당과 밖거리를 오가며 혼자 놀고 있으면 안거리에서 나를 부르시고는 담배를 사 오라며 늘 담뱃값보다 넉넉하게 손에 쥐어주셨다. 그럼 나는 올레로 나가 담배를 사고 한 손에는 담배, 다른 손에는 거스름돈을 꼭 쥐고는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할아버지는 수고했다며 남은 거스름돈을 과자를 사 먹으라며 윙크를 하시며 마치 할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이란 듯이 내 두 손에 도로 쥐어주셨다.


신이 난 나는 부엌에서 일하고는 엄마에게 가서 자랑할 요량으로 밖거리로 통통거리며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할머니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할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이 들킬까 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뒤로 가져갔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에게 두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는 풀이 죽어 주먹 쥔 두 손을 내민다. 할머니는 꼭 쥔 주먹을 펴시고는 땀이 나서 촉촉해져 반짝이는 동전을 가지고 가신다. 너무 속이 상한 나는 엉엉 울며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고는 엄마품으로 달려갔다. 참 잔정이 없는 할머니셨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는 변함없이 나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셨고 할머니는 여지없이 어디선가 나타나 동전을 가져가셨다. 엄마는 이미 할머니의 성격을 파악하셨던 터라 꾹 참고 계시다가 할아버지께 더 이상 담배 심부름을 시키지 말고 할아버지가 직접 사시든지 엄마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은 더는없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봐온 할머니는 나에게는 늘 차갑게 느껴졌다. 자라면서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게 달갑지 않았고 어서 차례를 지내고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가 나이가 많아지시고 거동이 불편해지자 여러 가지 연유로 해서 엄마가 우리 집에 모셔왔다. 사회생활을 하며 집에 가면 작은방에 누워계신 할머니를 뵈었지만 형식적인 인사만 했던 것 같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나의 비밀, 담배를 사고 남은 거스름돈을 가로채간 할머니. 그 뒤로 다른 사촌들에게나 우리 부모님, 친척분들께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랑이 없는 할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에 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갔다. 절실한 불교신자여서 천주교인 엄마를 힘들게 하셨지만 무슨 일인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의 요청으로 세례를 받으셔서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미사를 드리는 날, 오랜 세월 할머니 곁에서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 곁을 지킨 엄마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미사 전례에 할머니관에 가족 모두 나가서 인사를 하는 순서가 있었다. 예전에 그렇게 무심한 할머니, 동전을 안 뺏기려고 두 손을 꼭 쥔 내 손을 할머니가 억지로 펴게 하고 동전을 가져가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사촌들 어느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나는 이상하게 너무 슬펐다. 할머니의 삶이 안타깝고 돌아가신 뒤 하늘에서는 사랑이 충만하시길 기도드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린 시절 마음속의 상처가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장례미사를 통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상실의 감정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치유할 것입니다.... 슬픔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느 한 지점에 묶여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치유될 것입니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것을 치유해냅니다. <인생수업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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