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에 드라마틱한 클래식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by 꽁스땅스

저녁식사 후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 하는 일상. 가끔 정말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싱크대 앞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니 괜히 짜증이 나서 혼자 툴툴거린다. '이런 날 우렁각시라도 와서 해줬으면. 뭐 어쩌겠는가. 음악의 힘을 빌려보는 수밖에' 유튜브 영상을 찾다가 이거다 싶어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는다.고무장갑을 끼고 귓가에 들리는 음악에 집중하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D929 2악장.

피아노 트리오(3중주)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시작되고 이어서 묵직한 첼로 선율이 들어온다. 슈베르트는 어떻게 이런 멜로디를 만들었을까? 애잔하고 비장하기까지 한데 아름답다.그 순간 바이올린이 합세하니 점점 긴장모드로 전환되었다. 어느새 잔잔해진다. '이런 명곡이랑 설거지라니?' 짜증 났던 마음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https://youtu.be/skzjQ7 mZdJU


가곡의 왕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D.929]가 생전에 연주되었을 때 그에게 대중적 명성과 경제적 소득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이 곡을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처음으로 성사된 그 자신만을 위한 대중 콘서트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단다. 그 음악회는 1828년 3월 26일에 이루어졌고 이후 라이프치히에서 작품 번호 100번으로 출판되었단다. 그러나 이제 막 작곡가로 성공하려던 순간 건강 악화로 그 해 31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인 슈만 역시 이 작품을 "세계 음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작품"이라 칭하며 이전 작곡된 피아노 3중주에 비해 더 드라마틱하고 남성적인 힘으로 가득 차있다고 평했단다.


현악 4중주에 심혈을 기울였던 슈베르트는 피아노 3중주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에 찾아온 친구들 덕분에 피아노 3중주에 흥미를 갖게 된 슈베르트는 단숨에 두 곡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두 곡 모두 친구인 카를 마리아 폰 보클렛과 이그나츠 슈판 치히, 요제프 링케를 알게 된 후 작곡되었고 그들에 위해 연주되었다.


두 곡의 피아노 3 중주곡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D.929는 악장들 간에 긴밀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는 대작으로 특히 2악장이 유명하단다. 2악장을 여는 절름거리는 피아노의 리듬과 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첼로의 그윽한 선율은 한번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선율로 4악장 마지막에서 이 선율은 찬란하게 빛나는 장조로 나타나 감동을 안겨주며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 드라마틱 한 여정은 마치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단다.


미묘한 색채감을 뿜어내는 반복되는 리듬 패턴은 우수를 자아낸다. 작품 전체의 핵심이라 할만한 2악장의 주제 선율은 스웨덴 민요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스웨덴에서 온 젊은 테너 가수인 이자크 알베르트 베르크가 1827년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그는 [날이 저문다]라는 스웨덴 민요를 노래했는데 당시 슈베르트도 베르크의 노래를 들었다. 이 노래의 반복되는 피아노 반주 음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슈베르트는 이를 2악장에 도입해 지극히 매혹적인 주제를 완성했다고 한다.


명상적인 2악장이 조용히 마무리되면 3악장의 사랑스러운 캐논으로 이어진단다. 캐논이란 한 성부가 주제 성부를 몇 마디 뒤에서 똑같이 모방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돌림노래와 같다. 피아노의 뒤를 바짝 뒤쫓는 현악기들의 추격과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는 하이든의 음악을 닮았단다. 마지막 4악장(아래 영상 참조)은 처음의 주제가 계속 반복되며 여러 가지 음악이 다채롭게 전개되어 연주시간이 꽤 긴 편이란다.




찾아보니 아직 보지 못한 영화 [피아니스트]와 [배리 린든]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해피엔드]에도 삽입된 대중적인 음악이었다. 드라마틱한 긴장감, 우수에 젖은 듯 매혹적이라는 곡 해설을 찾다 보니 영화가 궁금해진다.


복잡한 고민거리가 있을 때 이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당돌한 멜로디(내가 느끼기에)의 2악장은 나처럼 하기 싫은 일을 순식간에 끝내기 위한 기분전환용이나 지루한 일상에 드라마틱한 뭔가가 필요할때 바로 재생 버튼을 누르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kJZOxqB-qk

매거진의 이전글휴식이 필요할 때 잔잔한 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