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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우리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있잖아, 윤아. 나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네가 수줍은 인사를 건네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아직 오지 않은 어떤 날에 다시 만난다면 네가 그때처럼 나에게 다시 인사를 건넬까,하는.
  우리에게 머물렀던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 어디에 도착을 했을까 고민하는 밤이다. 시간은 흐르고 너와 나는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지. 아마 너도 나도 돌아갈 수 없는 어느 지점에 대해 잘 알겠지. 하지만 나는 가끔 아무 것도 없는 책상에 엎드려 내 맨살로 옮겨오는 냉기를 느끼며 결국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결국 내 생이 마감된다고 생각하면 네가 정말 간절해진다.
  어느 장소에, 어느 시점에 나를 의탁하여 영영 떠나지 않고 머물고 싶어. 왜냐면 나는 너를 잊지 않으려하지만 느닷없이 네 눈동자의 색이 떠오르지 않고, 갑자기 너의 걸음걸이가 생각나지 않게 되어버리곤 해. 
  이별의 날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여전히 그날에 서성이는 내 감정과 다시 확인하고 싶은 미련의 무게 때문일거야. 
  너를 모두 잊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너를 향한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모든 시간에 대한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해도 나는 그 순간을 환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네가 말했지. 나를 향한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더 많은 언어를 배우고 있다고. 세상의 모든 언어를 배운다면 만약 그렇다면 지금 너에게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오롯히 전해질 수 있을까. 언어에 의탁하는 것보다 잠시 나에게 기대는 너에게서 전달되는 체온에서 나는 더 예민하게 사랑을 느끼곤 했어. 하지만 너와 체온을 나눌 수 없으니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고대의 언어를 찾아서 떠나고 싶어진다. 
  윤. 너의 깊은 눈동자에 어리는 나를 바라보며 너의 이름을 다시 불러볼 수 있을까. 네 이름을 부르는 그 짧은 순간에 생기는 분위기는 다른 이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의미들을 담고 있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었노라 생각해. 지금보다 더 먼 어느 날에 다다르면 네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떠오르지 않겠지. 내가 아무리 애써 너를 불러내도 너는 희미하고 서글픈 뒷모습만으로 내게 남을지 몰라.
  하지만 알고 있어. 너의 그 이름, 네 이름을 부를 때는 신조차 망각해버릴 만큼 나에게 의미있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이 밤이 내 곁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멀어지는 것처럼 너 또한 내게서 달아나고 있지만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어. 너의 입술에, 너의 얕은 배꼽에, 너의 작은 귓불에 입을 맞추던 내 입이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날 너와 내가 서로의 품에서 애틋하게 입을 맞추는 풍경이 그려지길.
   
  그동안 사랑한 시간보다 이별한 시간이 더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간도 결국은 사랑이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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