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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16

사랑이 아프니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본 후, 서너 달쯤 지났을까요. 제법 아프지 않았어요. 사실 그때부터 참고 있던 건지, 정말 아픔을 못 느꼈던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처음에는 그 사람이랑 갔던 카페, 음식점, 미용실, 영화관 다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는데, 이제는 카페에서 
  - 요즘 같이 오시는 거 보기 어렵네요.
라고 말하면 새로운 사람이랑 왔을 때 그런 이야기하면 곤란하다고 농을 던질 정도가 되었죠. 뭐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소개받거나 만날 정도가 된 건 아니에요.
  사실 휴대폰 번호도 지우지 않았고 – 지웠더라도 머리에선 지워내질 못했으니 그건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요 – SNS도 여전히 친구를 맺고 있죠. 하지만 서로 연락한 적이 없어요. 암묵적인 합의였죠. 헤어졌으니 보지 말자는.
  참 이상하죠.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내 인생에서 나의 가장 은밀한 곳을 모두 보여준 사람이었고, 나의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을 품어주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툭 멀어져버리는 것 말이에요. 정확하게 어떤 포옹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래서 완전하게 서로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거 과거에 머물게만 해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대법원에서 혼인을 뭐라고 판결 냈는지 아세요? ‘무릇 혼인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으로 성립되는 것’이래요. 하, 정말 웃기지 않아요? 결혼이 남녀 간에만 이루어져야하고, 육체적, 정신적 결합으로 성립되는 거라뇨. 사랑이라는 범주를 굉장히 한정 시켜놓는 발언이잖아요?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더 답이 안 나와요. 국립국어원에서 사랑의 정의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에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꿨어요.
  법은 규정이잖아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요. 그래요, 결혼이라는 건 하나의 제도니까 대법원이 내린 혼인에 대한 정의를 백번 양보해서 이해했다고 쳐요. 하지만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죠? 남녀 간에 생겨나는 그 마음만이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정의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그러니까 국립국어원이 정의내린 사랑이라는 건 그동안 사람들이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왔기에 그냥 사랑이라고 계속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사랑의 범주를 한정시키는 걸까요? 저는 우리가 사랑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고 믿어요. 사랑을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는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고 그 행위들의 잔상이 모여 결국 궁극에 다다르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꿈꾸는 어떤 날들이 결국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오라는 사랑은 여전히 어딘가에 숨어있고, 사랑니만 찾아왔네요.
  이상하네요, 정말. 저 사랑니 CT 사진말이에요. 저렇게 꼭 꼭 숨어있다가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어느 날 본 거울에서 하얀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평생 자취를 감추고 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이제 마지막 사랑니네요. 이미 발치한 세 개는 잇몸을 뚫고 나올 때에도 아프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이 사랑니는 아직 매복해있는데도 왜 이렇게 아프죠?
  마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 같다고 생각했어요. 통증이 잠잠해진 뒤, 이 통증이 무엇과 닮아있는지 혹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다시 아픔이 밀려왔죠.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치과에 오는 동안 표정이 없는 사람들을 지나쳐오며 그들은 몇 개의 사랑니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 숫자는 앞으로 찾아올 사랑의 수와 같을까, 아니면 지금까지 지나온 사랑의 수와 같을까 따위의 멜랑꼴리한 상상도 했죠.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오면서 그리고 간판을 보면서 며칠 째 잠도 못 들게 하는 이 사랑니에 대해 생각했어요. 사랑할 나이가 될 때 쯤 나는 게 사랑니라는데, 이제야 겨우 사랑을 하려고 이렇게 아플걸까,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뭘까,라고요. 제가 첫 사랑니를 뽑으러 여기에 왔을 때는 치과이름이 <사랑이 아프니>여서, 사랑이 어떻게 아플 수 있는지 의아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사랑도 아프고 사랑니도 아프네요, 아주 확실히요. 
  인생에서 사랑은 중요한데, 사랑니는 왜 뽑아야하는 걸까요. 심지어 지금 절 아프게 하는 하나 남은 저 사랑니는 수직 매복이라면서요. 똑바로 자라고 있는데 어째서 더 발치가 어려운 거죠? 제 사랑도 마찬가지였어요.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모두들 아플거라고 했거든요.
  죄송해요, 상담하면서 제가 말이 너무 많았죠? 사실 저에게 필요한 건 제가 지금 아프다는 걸 인지해야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아프지 않은 척했거든요. 계속.
     
  저 그런데 괜찮다면 설리반이 있는 1번 체어에서 뽑아주실 수 있나요? 거기에 쌍라이트와 웃음가스가 있기 때문은 아니에요. 제임스 설리반이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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