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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15. 2017

시차

과거에서 온 전화는 지금의 너에게 말한다

  지금 네가 있는 곳의 시간은 오후 12시 정각이다. 열두 시간 미래에 살고 있는 너는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너에게 전화를 건다. 과거에서 온 전화는 지금의 너에게 말한다.


  - 지금은 너를 사랑하는데, 아마 미래의 나는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해. 


  너는 말이 없다. 미래의 침묵은 시속 1,667km로 날아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꽂힌다. 


  -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헤어지자는 말은 적어도 만나서 해야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다시 침묵.


  첫 만남에도 그랬고, 연애할 때도 그랬다. 나는 이 연애가 끝난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왜냐면 네가 헤어짐을 말한 그 시간에 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까.


  시차 때문인 걸까. 이 헤어짐은.


  딱 열두 시간의 차이 속에서 자꾸 부딪힌다는 걸 느꼈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집 뒤의 수영장에서 몇 번 왕복을 할 때쯤이면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 저녁, 잔뜩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랑 하고 싶어. 너 안고 싶어. 보고싶어. 너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를 했고, 너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언제 돌아올거냐고 물었다. 


  24시간 내내 외국어 듣기 평가를 하는 기분으로 사는 삶은 생각보다 숨이 막혔다. 외국어에 노출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들리고 말하게 된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화를 해야했다. 자연스러운 대화는 카페 주문이나 기차역에서나 이루어질 뿐이었다. 혼자 새벽까지 울다 전화를 걸면 너는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지금 회의 중이야. 여긴 지금 오후 3시라고. 그만 울고 자.


  울면서 개새끼라고 욕을 내뱉었고, 너는 달래는 목소리로 다시 통화하자고 말했다.


  자전의 속도로 우리의 연애는 끝을 향해 갔다. 낮의 너는 우는 나를 달랠 겨를 조차 없었고, 밤의 너는 나를 안고 싶어했다. 낮의 나는 너를 안지 않았고, 밤의 나는 너를 안지 못해 울었다.


  낮의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 슬펐고, 밤의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못해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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