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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16. 2017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

나의 영혼은 언제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영혼이 교감하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외거나 기록하지 않아도 기차 플랫폼에서 스쳐지나간 사람에게서 같은 향수의 향기를 맡는 일로, 작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로 기억하게 된다. 수고가 필요하거나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이 기억 속에서 나는 아주 자주 당신을 떠올린다.


  당신을 기억하는 일은 당신이 곁에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내 삶이라는 공간 속에서 안정적으로 나를 일깨워주었다.


  김선우, 내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 시켜주는 사람.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는 아주 헤픈 여자였다. 실제로 그랬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춤을 추러 다녔고, 그 다섯 번의 끝에는 늘 술에 만취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다. 처음 손을 잡은 남자와 포옹을 하기도 전에 침대에 쓰러졌고, 키스는 손을 잡는 일보다 훨씬 더 쉬웠다. 입술의 감촉이나 혀의 볼륨이 낮은 남자와 입을 맞출 때면 이 사람과 사귈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속옷 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손을 빼낼 때면 그 남자의 아쉬운 눈동자에 비친 내가 슬퍼보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키스를 하면서도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은 키스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손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페니스도 평균 사이즈보다 작았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당신이 생각났다. 낮은 목소리의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는 깨어있는 상태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 그래서 그날 뭐했는데?

  - 그냥. 술 마시고 들어갔지.

  - 술만 마신거야?


  애써 참고 있는 당신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장난스럽게 답한다.


  - 아니. 술만 마실 리 없잖아.

  - 그러면?

  - 잤냐고 묻고 싶은 거야? 그럴 리 없잖아, 바보야. 술 마시고 안주 먹고 그랬지.


  불안은 언제나 우리를 엄습해온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도,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불안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이상하리만치 불안해져갔다. 잊고 있던 사소한 잘못과 실수들이 떠올랐고 그것은 먼지처럼 우리 주변을 배회하다 작은 불꽃 하나에 폭발해버리곤 했다.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사랑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과의 연애를 통해 알았다.


  - 이상하지, 정말.


  당신은 내 손을 꼭 붙잡고 불안한 듯 말했다. 나를 잡은 당신의 손이 슬퍼졌다.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금방 이 손을 놓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날 것만 같았다.


  - 힘들면 헤어질까?


  내 물음에 당신은 말이 없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도 믿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그것이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다는 사실이다.


  나의 영혼은 언제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만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귀여운 아이도 두세 명 낳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남자와 더 깊은 애정을 유지하고 만족스러운 가정을 꾸릴 수도 있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렇겠지.


  당신을 사랑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나를 온전한 나로 만들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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