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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0. 2017

하지만 계속해줄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 계속의 의미를.

  K는 트렁크를 열어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싣고 그녀의 손에 있던 잡다한 쇼핑백까지 싣고 나서야 트렁크 문을 닫았다. 그녀는 차 뒷좌석에 타야할지, K의 옆에 타야할지 망설였다. 뒤에 타자니 K를 운전사 취급하는 기분이었고, 옆 자리는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몸에 맞게 조정되어있을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마음을 몹시 어렵게 했다.


  - 타요.


  K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K의 그런 행동과 말로 그녀는 약간의 죄책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K의 애인에게 맞춰졌을 자리가 전혀 불편함이 없기에 그녀는 괜히 시큰해졌다. 그녀를 위해 맞춰놓았을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공항을 빠져나와 천천히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3년만에 돌아온 한국이 낯설기만 했다. K가 켜놓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도, 딱딱한 시트도, 창밖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풍경도. 그리고 무엇보다 K의 옆모습이.


  3년 전, 그녀가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K를 만나는 것이, 그가 가방을 들어주는 것이, 그의 옆자리에 앉는 것이, K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일이 되어버릴 거란 걸.


  - 어땠어요? 스페인은?

  - 좋았어요, 여기 다시 오기 싫을 만큼.


  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떨어진다.


  - 오랜만에 한국 오니 어때요? 좀 바뀐 것 같아요?

  - 네, 너무 많이요.

  - 뭐가 바뀐 것 같아요?


  그녀는 속으로


  - 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 그냥, 전부 다요. 공기부터 모든 게 어색해요.


  그녀의 말에 K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K의 시선을 느끼지만 외면해버렸다. 그녀는 K가 자신과 있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 내심 서운해지지만, K는 그녀가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는 것 같아서 내심 서운해졌다.


  - 이제, 나도 어색해진 거예요?


  K가 용기를 내어묻는다.


  - 제가 어색하니까 계속 존댓말 쓰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녀가 K를 바라보며 물었다. K는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빠르게 차를 몰 뿐.


  - 이제는 존댓말 써야할 것 같아서요.


  K의 대답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에 음악만 천천히 흘러갔다. 도심에 가까워지자 K가 골목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녀는 말이 없다. K의 차가 공터에 다다르자 그는 조용히 시동을 껐다.


  - 둘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거야.

  - 나도 알고 있어.


  K가 안전벨트를 풀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천천히 시트를 뒤로 넘겼다. 그의 혀가 격하게 그녀의 얼굴과 목, 가슴까지 핥으며 내려갔고 그녀는 K의 스커트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 키스하고 싶었어.


  K의 말에 그녀는 그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 나도. 아까부터.


  멀리 축구공을 차며 아이들이 놀고 있었지만 검게 선팅이 된 차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K의 혀를 가만히 물고 생각했다. 이대로 앞니로 톡, 잘라서 가져가고 싶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 하, 나 결혼하지 말까.


  K가 그녀를 깊이 빨며 말했다.


  그녀는 신음을 참으며


  - 해. 네가 결혼 안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라고 대답하곤 진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 있잖아, 계속 해도 돼?


  K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 계속의 의미를. K의 길고 섬세한 혀놀림에 그녀의 골반 근처가 움찔하자, K는 더 멋대로 굴었다. 그녀는 아프기도 했고 흥분하기도 했다. 그저 위로라고 생각했다. 오래 떨어져있던 시간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더 오래 만날 수 없을 시간에 대해.


  계속되는 것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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