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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1. 2017

나의 쓸쓸한 당신

오늘 밤 당신이랑 별을 따고 싶은데, 당신은 별을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잃어버렸는지 잊어버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나의 것이었는지 조차 희미해지는 그런 물건이었죠. 그런데 보는 순간 떠올라버린 거예요. 전부가요.


  그냥 그때는 정말 이상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해서 재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웠어요. 평소에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앉는 것조차 싫어했던 제가 말이에요. 불도 켜지 않아서 그런지 조그만 오피스텔 안은 금방 어둠으로 가득 찼어요. 창밖으로 하나둘 켜진 불이 침대까지 길게 늘어졌을 때 뜬금없지만 당신이랑 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당장 내 곁에 당신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죠. 왜 당신이 내 옆에 누워있지 않은 건지 속상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빨리 당신을 안고 싶었어요.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아니면 아래에서 위로 하는 그런 애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당신과 내가 이 밤에 젖어들었으면 했어요.


  정말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고요. 사실 그 전에는 엄청 강렬하게 섹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물론 합이 잘 맞는 남자를 만날 때면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섹스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뭐랄까. 좀 맥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죠. 발기가 되기나 할까라는 고민을 한 게 아니었어요. 섹스를 할 줄 알긴 아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상 체위 외의 다른 체위를 하자고 하면 나를 경멸하는 걸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어요. 나보다 어린 것도 아니고 나이도 한참 많았는데도. 심지어 매일 운동을 하는 덕분에 허벅지가 탄탄했지만 내가 나쁜 물을 들이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연애를 해보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를 몰랐죠. 그렇다고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기에는 너무 힘에 부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신과의 관계를 그쯤에서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때였는데 뜬금없이 당신이랑 섹스를 하고 싶어진 거예요. 지금 당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내가 무슨 동에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당신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 지금 뭐해요?


  내 물음에 당신의 대답은 정말 예상의 범주 밖에 있었어요.


  밤 11시가 넘었으니

  - 자려고 누웠어요.

라는 말을 하거나


  금요일 밤이니

  - 친구들과 술 한 잔 해요.

라고 하지도 않았죠.


  본가가 지방이니

  - 지금 광주에 내려가는 중이에요.

라는 대답도 아니었어요.



  당신의 대답은 아주 명료했어요.


  - 별을 보고 있어요.


  나는 오늘 밤 당신이랑 별을 따고 싶은데, 당신은 별을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 별이요?

  - 네, 별이요. 희연씨는 별자리가 뭐예요?

  - 제 별자리는 왜요?

  - 궁금해서요.

  - 지금 제 잠자리는 안 궁금해요?

  - 네?

  - 나 지금 추파 던진 거예요.

  - 술 마셨어요?

  - 술은 안 마셨는데, 왠지 한 시간 뒤에 당신이랑 마실 것 같아요.

  - 제가 희연씨 집 쪽으로 갈게요.


  메시지로 집 주소를 보내고 난 후 꼭 한 시간 뒤, 소주 몇 병을 든 당신이 왔죠. 인터폰에 당신의 얼굴이 보이는데도 믿을 수가 없더군요. 소주를 세 병쯤 마셨을까, 당신이 병뚜껑으로 반지를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내 손에 끼워줬죠.


  - 희연씨가 쓸쓸해보여서요.

라는 짧은 말 후에 잔에 조용히 소주를 따르는 당신을 보며 나는 말했어요.


  - 서로의 손이 허전할 때는 반지를 끼워주는 게 아니에요.


  소주잔을 털어 넣고 꼴깍 삼키는 당신이 귀여웠어요.


  - 그럼요?

  - 이렇게 잡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처음 당신의 손을 잡았고


  - 이렇게 만질 수도 있어요.


  그렇게 처음 당신의 얼굴을 만졌고


  - 그리고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처음 당신과.


  그날 받은 소주병뚜껑 반지. 참, 이상하죠. 그때도 별 거 아니었고, 지금도 별 거 아닌데 어째서 지금 이렇게 슬픔을 끌어올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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