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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7. 2017

종이 울리면

너는 쉬는 시간, 딱 그 십 분을 이용해서 내게 왔다

  종이 울리면 네가 내가 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는 딱 십 분 간의 그 시간은 오롯이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나의 그 시간을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피아노로 정확하게 그 종소리의 음계를 칠 수 있을 만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 매점 갈까?

  - 체육복 빌려줘.

  - 오늘 야자하지 말고 영화 보러 갈까?

  - 등나무에서 봐.


  요즘은 등교를 하면 휴대폰을 모두 교무실에 제출한다던데,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휴대폰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일도 없었다. 문자를 보내면 충분한 일에도 너는 쉬는 시간, 딱 그 십 분을 이용해서 내게 왔다.


  너는 친구가 적은 것도 아니었고, 나 또한 반에 친한 친구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십 분의 조각마다 함께 했다. 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너는 내게 달려왔고 다시 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너는 내게서 달아났다.


  - 우리는 어떻게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 한 번도 안 되었을까? 그래도 중학교 때는 삼 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졸업식 예행연습을 위해 강당으로 가면서 너는 말했다. 강당에 들어서서 나는 1반으로 너는 8반으로 멀어졌다.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종종 상을 타오던 네가 학업우수상을 대표로 받기 위해 강단에 올랐다. 개근상조차도 받지 못한 나는 너를 가만히 보며 오래 박수를 칠뿐이었다. 너는 인사를 하고, 상장을 받는 시늉을 하고, 뒤를 돌아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 너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식 날도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꽃은 건네지 못한 채 집에 들고 왔다. 


  대학은 종이 울리지 않았고, 너는 내게 달려오지 않았다. 그냥 너를 좋아할 수 있어서 나는 그 십 분을 아주 좋아했다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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