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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6. 2017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당신의 미지를, 미지의 당신과 나는 오늘도 할 듯 말 듯.

  사실 나는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의 첫 만남이라던가, 당신이 건넨 이슬이 맺힌 코카콜라, 당신에게 빌렸던 노란 색 책 한 권 그리고 그 책을 내가 한참 뒤에야 돌려주었을 때 당신에 나에게 했던 짧은 농담까지.


  당신은 나의

  - 그냥 세븐업이나 펩시도 괜찮아요.

라는 말에 굳이 나가서 코카콜라를 사왔죠.


  출장 때문에 이제야 돌려준다며 책을 돌려주니 당신은

  - 이거 받으러 지구 끝까지라도 가려고 했어요.

라며 장난스럽게 웃었죠.


  하지만 내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은 것처럼 말했던 이유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관심이 있는데 없는 척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어요. 확신이 없었어요.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요. 틀림없다고 믿을 때 사랑을 시작할 만큼 조바심을 내는 사람도 아닌데 나는 필요했어요. 


  그건 아마 당신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름과 나이까지도 거짓말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차분하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스치듯 하는 묵직한 농담에, 독립영화의 한 장면을 오래 기억하는 것에 괜히 당신이 좋아져버렸죠. 


  마음이 보일 듯 말 듯 한 사람, 진심이 들릴 듯 말 듯 한 사람이라서 도통 알 듯 말 듯 한 사람. 당신의 미지를, 미지의 당신과 나는 오늘도 할 듯 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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