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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8. 2017

사랑을 사랑해

너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몰랐을 리가 없잖아.

  왜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냐고 하지 말아줄래? 지금부터 딱 3분만 내가 하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들어주면 되는 거야.


  사실 너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몰랐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몰랐어도 모르는 척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처음부터 눈에 띈 건 아닌데 처음 만날 그날의 너를 기억하는 건 네 셔츠에 내가 커피를 쏟았기 때문이야. 이미 식어버린 커피긴 했지만 너도 놀랐고, 나도 깜짝 놀랐지. 그런데 네가 말했어. 오늘 새 셔츠를 사서 갈아입으면 된다고.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가서 셔츠를 갈아입고 왔지. 미안해하는 내가 오히려 민망했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야. 난 그 인문학 강의에 처음 나간 날이었고, 넌 아니었잖아.


  앞으로 강의는 7주나 더 남았는데 나는 못 나올 수도 있다는 소심한 생각을 할 때쯤, 네가 나에게 캔커피를 하나 내밀었지.


  - 다음 주에는 그쪽이 사요.

라면서.


  나는 다음 주라는 말이 그렇게 긴 시간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시간이 참 가지 않는다거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말도 다음 주를 기다리면서 알 수 있었어. 다음 주는 나에게 다다르는 것인지, 내가 다음 주를 향해 나아가는 건인지- 모순적이라는 마음을 아무렇게나 접어두었을 때야 다음 주가 되더라. 네가 나에게 내밀었던 캔커피를 샀어. 


  사실 난 라떼를 좋아하지 않는데, 네가 나에게 준 커피가 맥심 티오피 라떼라서 그걸 두 캔 샀어. 네가 언제쯤 올까 기다렸는데, 그날 넌 커피를 들고 강연장으로 들어오더라. 맥심 티오피 라떼. 캔 두 개를 가방에 밀어넣었어. 뭔가 아쉬웠고 서운했어. 강의를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어. 그리고 강의가 끝날 때까지 나는 캔커피를 사서 들어갔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 프로이트의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하이데거의 숲길, 푸코의 감시와 처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그리고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까지. 초여름이었는데 처서를 앞두고 있더라. 그리고 난 이제 아메리카노보다 라떼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


  그런데 내가 다음 주가 될 때마다 알게 된 건데, 아무래도 그냥 단순히 호감이나 짝사랑이 아니라는 거였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 너랑 나도 있겠지. 그리고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이미 세상에서 너무 많이 이야기된 말일거야.


  하지만 너무 많이 이야기된 말이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에게 하려고해.


  “우리 연애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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